책 : 글쓰기 최전선

by 천진의 하루

글을 쓰고 책을 내겠다고 공공연히 떠들어 대고 있다. 막연한 글쓰기에 도전하는 중이고 하루에 한 꼭지라도 매일 쓰겠다는 다짐을 하고 시간 날 때마다 메모지를 펼친다. 글을 쓰다 보면 무엇을 쓰려고 했었는지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중언부언하다가 미완성으로 맺을 때가 더 많다.


내가 무슨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기에 브런치에 올라오는 작가님들의 글을 펼쳐서 읽는 일을 자주 하는 편이다. 자신의 삶에서 발생하는 일들에서 어떻게 글감을 얻어내고 풀어가는지 배우고 길잡이를 얻고 싶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글쓰기에 관한 글 중 많은 작가님들이 은유작가님의 책을 포스팅했다.


이 책을 2024년 5월에 한 번 읽었던 책이다. 당시는 글을 쓰는 마음이 그런 거구나 하는 정도로 읽었던 것 같다. 내가 읽었던 대부분의 글쓰기 책과 다른 마음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2019년 책 읽기에 빠지고 매년 책 읽기 목표를 설정하고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그간 읽은 책들을 돌아보니 제법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으나 나의 글쓰기는 2020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들이 없는 느낌이었다.


다독은 우습게도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고 짧지만 두서없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2년 남은 퇴직 전에는 책을 한 권 내고 싶다는 마음도 가지게 되었고 그간의 글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난 한 주 동안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분류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브런치에서 은유 작가님의 글쓰기 메타포럼을 참가했던 작가님의 포스팅을 보고 은유 작가님의 책 세 권을 주문했다.


그 첫 번째 책이며 글쓰기 학인들과의 교감과 글을 기록한 '글쓰기 최전선'이다. 다시 책을 꺼내어 읽으며 처음 읽을 때 밑줄을 그어두었던 내용을 만날 때마다 왜 밑줄을 그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택스트를 따라 읽으며 '아하!' 하는 정도의 무책임함이 있었던 것 같다.


은유작가님은 크게 다섯 단락으로 글을 쓰는 이유와 자세에 관해 전하고 있다고 느꼈다. 글을 쓰는 많은 동기와 마음가짐 그리고 행동을 말하고 있다. 글을 두 번 읽으며 여러 군데 밑줄을 그었다. 머릿속에 맴도는 말들과 나를 질책하는 말들에 대한 다그침이 여러 군데 있었다. 아직도 그 밑줄에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다만,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질지 모른다는 기대에 대한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 글에 왜 밑줄을 그었는지 이유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내가 그었던 밑줄은 이것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혼란스러운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지, 덮어두거나 제거하는 일이 아님을 말이다.

실패는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거해 주었습니다.
저는 실패한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저의 모든 열정을 가장 소중한 한 가지 일에 쏟아붓게 되었습니다.

두려워했던 실패를 경험했기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다.

글쓰기는 글 보는 눈을 길러주며, 글 보는 안목은 곧 세상을 보는 관점을 길러준다.
아울러 남의 말을 알아듣는 만큼 타인의 삶에 대해 구체적 감각이 생긴다.

이 감각, 마음 쏠림이 또 다른 글쓰기를 자극한다.

좋은 글은 울림을 갖는다.한편의 글이 메아리처럼 또 다른 글을 불러온다.

글을 매개로 남의 의견을 듣고 삶을 관찰하다 보면 세상에는 나와 무관한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삶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균형감각이 발달한다.

이는 삶에 이롭다. 인간은 아는 만큼 덜 예속된다.

글쓰기에서 문장을 바르게 쓰는 것과 글의 짜임을 배우고 주제를 담아내는 기술은 물론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글을 쓸 것인가'하는 물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탄탄한 문장력은 그다음이다.

모든 배움은 인내와의 싸움이다.마르크스의 말대로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으며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파른 오솔길을 올라야 한다.

글쓰기는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동작이다.
낫이 아니라 낫질이다.
혼자서 자문자답의 노동을 반복하다가 우리는 잠시 친구로 만나는 것이다.

글쓰기는 '나'와 '삶'의 한계를 흔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삶'은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의 지루한 반복이다.
기쁨과 슬픔을 자아냈던 대소사의 나열은 삶의 극히 일부분이다.

일단 내 앞에 있는 조잡한 도구로 시작하라.시작을 해야 능력의 확장이 일어난다.
남들이 당신을 설명하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또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남들이 말하게 하지 마라 - 마사 킨더

나를 열어두고 나를 실험하면 또 다른 나를 발견할 기회가 주어진다.

글을 쓸 때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신 어떻게 어느 만큼까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지 알려고 해야 한다.

모든 글에는 하나의 메세지, 하나의 질문이 담겨 있어야 한다.

나는 글재주가 없다. 개성이 없다고 말하는 데 많이 써보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

나의 삶을 숙고하고 나의 경험을 나의 언어로 말하는 훈련을 반복하기 전에는 '글재주'와 '고유성'은 드러나지 않고 드러날 수도 없다.

좋은 산문을 쓰는 작업에는 세 단계가 있다.구성을 생각하는 음악적 단계, 조립하는 건축적 단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짜 맞추는 직물적 단계다.

"나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더 못 쓸 수도 없다."는 말은 잘 쓰고 싶은 욕심에 눈앞이 흐려져서 문장이 한 줄도 나아가지 못할 때 특효약이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이는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 - 니체

2차독에 따른 밑줄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행간에 머무르고 거주하는 것이다. - 발터 벤야민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거의 다' 좋은 책을 읽었다. 일기와 쓰기는 다른 행위지만 내용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책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여 저자의 의도에 맞추려 낑낑대지 말고 자기 삶의 구체적인 정황을 떠올리고 접목시키면서 '주관적'으로 읽어달라고 했다.

그대가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화폐는 할 수 있다.화폐는 욕구와 대상, 인간의 생활과 생활 수단 사이의 뚜쟁이다. - 마르크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추락할 것이 두려워 경직된 듯 서 있을게 아니라 도덕을 넘어 떠다니며 유희할 수 있어야 한다. - 니체

평균적인 삶도 정해진 도덕률도 없다.
천 개의 삶이 있다면 도덕도 천 개여야 한다.
자기의 좋음을 각자 질문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게 중요하다.

무엇을 경험하느냐가 아니라 경험한 것을 통해 무엇을 느끼느냐이다.

글쓰기가 자기 경험의 줄거리를 구체적으로 친절하게 풀어내는 작업이라고 했지만 일상적 경험을 기록한다고 해서 전부 글이 되지는 않는다.

에세이, 컬럼, 논문 등 모든 글에는 하나의 메세지, 하나의 질문이 담겨 있어야 한다.
문제의식이 없는 글은 요란한 빈수레와 다름없다.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심신을 혹사시키곤 한다.

어떤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자기 욕망과 능력을 알아가면서 자기만의 행복을 만들어가기보다 행복이라고 이미 규정된 사회적 모델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면 정말 크나큰 피로가 덮친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아름답지 않은 것에 사랑을 느끼는 법이 없다.
모든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부터 출발한다. - 이외수

세상에는 아름다운 글이 많다. 아름다운 글만이 마음을 흔든다.
아니다. 마음을 흔드는 글이 아름다운 글이다.

왠지 지나쳐지지 않는 일, 나와 불화하는 감정이나 사건은 모두 좋은 글감이다.

사소할 수 있는 일상의 오가는 말들을 글감으로 상정하고 사유하고 발언하는 것,누구나 자기 감정에 충실하고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자기 존엄을 지켜갈 수 있게 하는 방편으로서의 글쓰기 말이다.

내 글이 누구에게 가닿길 바라는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먼저 걸어가고 느낀 자로서 무슨 이야기를 건넬까.

나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못 쓸 수도 없다는 말은 희망적이다.
적어도 뿌린 대로 거둘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살아가면서 투입 대비 산출이 정확한 일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글은 삶의 거울이다.
글은 삶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것이 글 쓰는 사람에게는 좌절의 지점이기도 하고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참 많은 곳에 밑줄을 그었다.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자세와 방향과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나로써는 모두가 소중한 가르침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글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과 무엇을 남기려고 하는 가의 물음이 내게 필요하다고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다.

무작정이라는 말?

누군가는 무모함이라고 말하는 그 단어가 어쩌면 글을 시작하는 사람의 용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은유작가님은 어찌됐든 시작하고 지속해야한다고 얘기한다.

그 지속하는 힘이 자신의 글을 만들어 갈 것이라 나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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