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찍 눈이 떠졌다. 기상 알람이 울리기 직전에 일어나 알람을 끄고 침대에 앉아 잠시 고민했다. 창밖에서 후드득 빗소리가 세차게 들려왔고, 열어둔 창문으로 찬 바람이 스며들었다. 제법 굵은 빗줄기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스탠드를 켠 뒤 책을 꺼내 들었다. 이제는 몸에 밴 습관처럼 책을 읽고 필사를 한다. 필사 중인 『중용』도 이제 한 편만 남았다. 『채근담』으로 시작해 『심경』, 그리고 『대학·중용』까지 매일 한 페이지씩 써 내려왔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묵묵히 쌓여가는 시간의 적금을 믿으며 이어가고 있다.
세 권 모두 고전의 명작으로, 인생에서 지켜야 할 군자의 도리와 바른 길을 말하고 있다. 지금은 그저 옮겨 쓰는 정도인지, 가슴 깊이 새겨지는 말이 많지는 않다. 수백 줄을 써 내려왔지만 단 한 줄도 또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어왔다는 사실이 나름의 자긍심을 준다.
책에서 말하는 가르침대로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삶의 난관 앞에서는 그 말들이 잠재의식 속에서 불쑥 떠올라 길을 선택하게 한다. 삶의 모든 순간은 선택에서 비롯되고,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증명한다. 그 과정에서 책의 가르침이 내 안에 하나의 판단 기준으로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도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믿게 해주는 힘은 아마 그 책들의 가르침일 것이다. 비가 내려 마루와 산책을 나갈 수 없으니, 헬스장으로 향하기로 한 것도 수많은 유혹 속에서 고른 바른 선택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무도 없는 헬스장. 첫눈 내린 아침, 하얀 도화지에 첫 획을 긋는 기분이 들었다.
빠르게 걷는 것 외에는 대단한 운동을 하는 건 아니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이 좋았다. 앞으로도 마루와의 아침 산책이 대부분이겠지만,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엔 헬스장으로 향할 것이다. 짧게는 삼십 분 정도의 걷기를 마치고, 하나둘 헬스장을 채워가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의 시작이 내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 줄 몰랐다. 예전엔 어머니의 부르는 소리에 허둥지둥 뛰어나가던 것이 내 아침의 전부였다. 이제는 하루를 준비하고 가늠하며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편안하고 감사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