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길게 비치는 오후, 내 마음도 길어진다.

어린 왕자

by 천진의 하루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청소년 시절이었다. 첫 장에 나오는 보아 뱀과 모자 그림을 가지고 어른들에게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서 이상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책에서 얻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택스트를 읽는 것은 똑같은 것 같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면 끝까지 책을 읽지도 못했던 것 같다. 다시 책을 읽을 때, 기억이 새롭고 새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것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얼마 전 다른 책에서 어린 왕자의 책 속에 있는 구절을 통해 관계와 삶의 영향에 관한 부분을 떠올리게 했다는 글을 보면서 내가 놓친 것들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읽었다.


어린 왕자에 관한 내용은 낯설지는 않은 편이다. 어린 시절 티브이에서 만화 등으로 만들어 방영되고 이를 테마로 드라마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것이 때론 아무것도 얻거나 깨닫지 못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익숙하기에 스치고 지나가게 만들고 신경 써 받아들이려 하지 않게 된다.


어린 왕자는 도시마다 석양을 바라보는 곳이면 테마를 만들고 모형을 세워 관광객을 유치하는 방법으로 쓰이고도 한다. 우리는 그런 어린 왕자에 열광한다. 그 이유는 잘 모르지만 천진난만하던 어린 시절과 순수함으로 회귀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어린 완자는 내게도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궁금증 가득하던 시절, 알아야 할 것이 많았던 시절, 세상은 점점 궁금해하지 말고 시키는 것만 잘하면 된다고 다그쳤다. 궁금증을 해결하는 것은 뒷전으로 밀렸고 주어진 지문에서 누군가 답이라 정해 놓은 것을 찾아야 하는 삶으로 변했다. 남들이 갔던 길, 정답이라 말하는 삶이 목표가 되고 그 기준에 미달하면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며 자존감이 무너져 내렸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가 돼서도 지친 몸을 이끌고 넋 놓고 멍하니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지금의 자신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재테크를 통해 부를 얻었다는 사람, 아첨을 통해 자리를 얻었다는 사람 등 주변에서 들리는 말들은 지금 너는 잘못 살고 있는 중이야라고 야단치는 것 같았다.


바쁘고 성실하게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 계발서의 저자들은 일정한 루틴을 설정하고 남들보다 일찍 그리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이 맞을까 고민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의 일상은 규칙이 없고 주어지는 데로 그때그때에 맞게 선택되고 있었다.


그건 규칙의 문제야. 아침에 세수를 하고 나면, 자신의 별도 꼼꼼히 청소해줘야 해. 어릴 때는 장미와 너무 비슷하게 생겼지만, 바오밥나무라는 걸 구분할 정도가 되면 규칙적으로 뽑아주어야 해. 꽤 귀찮은 일이지만 참 쉬운 일이기도 하지.

어린 왕자의 첫 밑줄의 문장은 그 루틴에 관한 것이다. 아침에 세수하고 자신의 별을 청소하는 일은 아주 단순하고 쉬운 일이지만 대부분 실천하지 못하는 일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다섯 가지 습관이라고 말하는 첫 번째가 일어나 잠자리를 정돈하는 것이다. 그게 뭐 대수라고 성공한 사람이 되려면 해야 하는 일이라 말할까 생각했는데 실천해 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텍쥐 베리는 그 사소한 일을 매일 해야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된다고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규칙적으로 실천하게 되면 성취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 성취감이 자존감을 키워주고 나아가 다른 것을 해낼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다. 나를 바꾸기 위한 시도를 시작한 지 벌써 육 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의 내가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수치로 나타낼 수는 없지만, 느껴지기는 한다.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은 어느덧 오백일을 넘었고 읽은 책도 천 권에 육박해가고 있으며 블로그에 써놓은 글들도 이 천 개에 다다른다. 변한 것이 없다며 낙심하고는 하지만 묵묵하고 꾸준하게 해내간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 느껴진다. 처음 시작한 그때보다 생각의 크기도 넓어졌을 것이다. 쉽게 내던 화를 참을 수 있게 된 것을 보면 대견하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이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이 쌓이면 습관이 되며 좋은 습관이 계속되면 삶의 태도와 방향이 바뀐다고 한다. 작심삼일로 포기하고 낙심하기만 했던 루저가 지금은 천 일을 넘어 이 천일, 삼 천일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정답을 선택하던 사람에서 자신이 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믿음으로 발전했고 어린 왕자의 궁금증을 되찾아가는 중이기도 하다.


매일 새벽 알람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을 만들어 지켜나가고 있다. 오래도록 멈추지 않고 만들어 둔 규칙을 지키다 보니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 같다. 피곤하고 지친 날 새벽 알람을 듣지 못하고 지나쳤다고 낙담하고 포기하지 않게 된다. 그것이 실패가 아니며 자신의 부족함도 아니라는 것을 배운 것이다. 오히려 실패의 욕망을 부 축이는 달콤한 유혹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도 하루의 루틴은 가르쳐 준다.


그건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껍데기일 뿐이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눈으로는 볼 수 없어. 마음으로 찾아야지.

삶은 많은 변수를 통해 성장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지금은 오후의 따스한 햇살 아래 멈춰 선 듯 하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가는 중일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의 모습에 어떤 것을 하더라도 불안해하며 흔들리곤 한다. 하고 있는 것들이 원하는 목적지에 데려다줄 수 없을 것이란 불안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게 만들기도 한다.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해야 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구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미래는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며 믿는 데로 보이는 것이라 말하는 듯하다. 불확실하기에 흔들리며 포기하는 일이 많았다. 하는 일의 방향이 목적지에 가는 것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보이는 것을 쫓을 수 없기에 낙심하고 비하했고 처음부터 안 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성공한 사람의 조건은 그저 보이는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 것들 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찾아 나가야 하는 것들이었다. 책들에서 보여주는 조건들 속에 숨은 진실은 마음으로 봐야 하는 것들이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런 능력이 충분하다는 자존감, 하는 모든 것이 옳다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자신감, 자존감, 믿음, 용기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야말로 중요한 것들이다.


내 안에서 발견하고 찾아야 하는 것들은 마음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토요일 연재
이전 15화생각에도 근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