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살린다.
문학의 회복적 힘
역사는 승자의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고 소설은 패자의 억울함을 해악 속에 숨긴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가 존재하고 그것을 어떻게 서술하는 가에 따라 읽는 사람의 마음을 좌우하게 되는 것 같다.
책을 읽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소설책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았던 첫 번째 기억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호기심 가득하고 성적 욕구가 넘쳤던 시절이었고 여자 친구를 만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이후로 남녀가 구별된 학교를 다녔고 남녀가 사귀는 것이 제재를 받았었다.
여자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는 시기였고 통학 버스나 학교 외의 장소에서 만나는 여자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마음에 설레기만 했었다. 선생님과 부모님 몰래 여자 친구를 사귀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무용담처럼 퍼졌고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마음에 두었던 여자아이에게 용기 내 말을 걸었으나 여지없이 거절을 당하기도 했다. 짝사랑, 첫사랑, 두근거림 등의 단어들이 생각과 가슴에 가득 차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었다. 그런 나에게 애정소설(당시에는 로맨스 소설을 그렇게 불렀다.)을 읽으며 위안을 받기도 했다.
좋아하는 여자를 마음에 두고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주인공이 다른 사람과의 사랑에 안타까워하며 상처를 받는 여자를 위해 친구가 되어주고 묵묵히 뒤에서 지지자의 역할을 하며 문제를 해결해 주는 내용의 소설을 읽으며 그런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해결되지 않는 호기심과 욕망은 소설의 주인공을 통해 이입되고 방법을 찾은 듯 기뻐했던 적도 있었다.
소설은 복잡한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이야기는 안타까워 가슴을 울리고 애처로워 눈물을 흘리게 만들기도 한다. 가슴에 와닿게 읽은 책의 내용에 이입돼 마치 나의 이야기인 듯 스스로 소설을 썼던 적도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 앞에 비련의 주인공처럼 소설의 내용을 현실인 것처럼 연기하며 눈물을 함께 쏟아 낸 기억도 있다.
고민이 생기거나 답답한 상황을 마주하면 비슷한 이야기의 소설을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그가 풀어 나가는 문제들의 방법을 스스로에게 무의식적으로 반영해 왔던 것 같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시간이 지나며 해결된 것은 어쩌면 그런 이유가 반영돼 있었을지 모르겠다.
많은 책을 읽는 편이지만 기억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래도 기억에 잊히지 않는 구절들은 위기 때면 불쑥 튀어나와 방향을 잡아주기도 한다. 문학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대부분 내가 어려울 때 위로를 주던 것들이다. 다른 친구에 비해 연애를 잘 못했던 사람이다 보니 자존감이 많이 낮았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만든 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문제를 찾고 해결책을 찾아야 했는데 그 문제는 타고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 위로를 주던 것들은 자신처럼 못났다고 생각하고 뒤로 용기 내지 못하는 주인공이 소심하게 그녀의 곁에서 친구로서, 조언자로서 있으며 마지막에 그녀의 사랑을 얻게 되는 소설을 읽고 동경했었다.
그런 소설들이 흔들렸던 청소년기를 매끄럽게 벗어날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책 제목과 저자도 기억이 나지 않는 소설을 밤새 읽었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녀가 그의 사랑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알게 될 듯 말 듯하는 순간을 읽으며 궁금증을 참지 못해 밤을 새워 마지막 장까지 읽었다. 그녀가 오랜 시간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준 사람이 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떠나는 그를 쫓아와 사랑을 고백하는 마지막 장에서 눈물이 쏟아지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었다.
그 감정은 오랜 시간 잔상으로 남아 나를 지배했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랑을 꿈꾸며 살았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후에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삶에 지치고 아등바등 살아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신을 바꾸는 자기 계발서를 탐독하기도 했고 점점 책은 손에서 멀어져 갔다. 흐르는 시간에 의미 없이 맞추어 사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은 책을 읽겠다고 다짐했던 2019년으로 독서를 몸에 붙일 수 있을지를 가늠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도전했던 장편 소설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였다. 스무 권이 넘는 책을 한 주에 네 권씩을 목표로 읽어 나갔다. 조선시대 말부터 일본으로부터 독립할 때까지의 기간 동안 주인공 최 서희의 역경과 극복 그리고 조선인의 삶을 그린 대작이다.
그 소설을 읽을 때의 나는 독서의 한계점을 넘어서는 목표가 존재했다. 소설의 내용이 흥미롭고 궁금한 것보다 한 권의 책을 끝내는 것을 넘어 끈기 있게 읽어야 하는 장편을 넘어설 수 있는가에 방점이 있었다. 내용이 기억에 남는 것은 그다음이었다. 매번 작심삼일로 흔들리는 습관을 이번에는 고착화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가 시급했던 것이다.
소설의 내용이 읽히지 않고 진도가 나가지 않으며 포기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넉 달의 시간에 거쳐 소설의 마지막 장을 끝냈을 때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이후 책 읽기는 습관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소설 속 최서희는 포기하지 않았었다. 부모가 어릴 때 죽고 친척이 재산을 빼돌리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이겨 냈고 세월이 흘러 빼앗긴 것을 되찾아 온다.
소설의 마지막 장은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됐다는 소식을 듣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주인공 최서희도 우리나라도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우뚝 선다는 결말인 것이다. 나의 긴 여정도 그렇게 우뚝 서게 될 것이란 기대를 품게 해 주었다. 실패를 반복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지하 끝까지 함몰된 자존감에 불씨를 붙여 준 것이다.
지금도 매일 책을 읽는 일을 거르지 않고 있다. 이제는 읽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의 삶을 살게 된 것이 '토지'라는 장편 소설을 읽어낸 승리감에 기인한다. 내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최서희, 김길상 등 많은 등장인물의 삶이 고달프지만 딛고 일어서려는 노력들이 깔려 있다. 소설의 숨은 에너지들은 잠재의식 속에 숨어 나를 무너지지 않게 밀어준 것 같다.
그 밖에 많은 소설 속 이야기들은 기억 속 깊이 숨어 있다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 앞에 어찌할 수 없을 때면 마법처럼 실낱같은 희망의 끈이 되어 나타나곤 한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 같이 이야기는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때론 나의 이야기 일 때도 있었고 나를 대변하는 것 같은 구절들도 있었다. 나에게만 생기는 일이 아니며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마음을 갖도록 해준 것이 이야기의 힘일 것이다.
앞서 간 사람,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위로를 받고 살아갈 기준을 세운다면 조금은 수월하고 살만한 세상이 될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세상에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