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원 Jan 11. 2023

나는 물려받은 대로 살지 않을 것이다

살아지는 대로 살아서는 결코 내 부모의 행복을 넘어서지 못한다



부모의 불행한 부부 관계 속에서 상처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도피처를 찾아 결혼을 선택하곤 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이곳보다는 내가 선택한 저곳이 나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고 새로운 가정을 만든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 내 결핍을 충족해 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부부라는 낯선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결혼을 통해 내 부모가 가 닿지 못한 곳에 이르고 싶어 하지만 생각만으로는 그곳에 이를 수 없음을 곧 깨닫게 된다. 그곳은 내 부모와는 다른 방식으로 새롭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내 부모와 같은 방식으로는 내 부모와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다.


부모와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일과의 관계, 신과의 관계... 우리 삶은 온통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 보이는 것과의 관계이든 보이지 않는 것과의 관계이든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힘과 방식이 우리 삶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방법을 부모로부터 배운다. 사랑을 주는 방법도 사랑을 받는 방법도 부모를 통해 습득한다. 우리 모두의 첫사랑은 부모이다. 자신의 사랑이 부모를 향한 고통스러운 짝사랑이었다고 해도 아이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는다. 경험을 통해 세상을 처음 인식하는 어린아이는 부모가 나를 대했던 방식을 ‘사랑’이라고 배운다. 그리고 그 사랑을 몸과 무의식에 새기고 평생을 살아간다. 채워지기 위해 사람을 찾고 사랑을 하지만 사랑할수록 목이 마르고 배가 고프다. 부모와의 사랑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래서 첫 배움은 중요하다.   

   

자라면서 학교와 사회로부터 새롭게 사랑의 개념을 배운다 해도 아이는 몸과 마음에 새겨진 익숙한 사랑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배운 지식대로 살지 못하고, 몸에 새겨진 대로 살아간다. 특히 7세 이전에 새겨진 몸의 기억은 전 생애동안 내 삶을 지배한다.   

   

부모와 다르게 살고 싶다면, 부모가 경험하지 못한 관계의 행복을 경험하고 싶다면, 물려받은 관계방식대로 살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내 몸 밖의 부모가 아니라 내 몸과 무의식에 새겨진 내 안의 부모를 넘어서야만 한다. 익숙한 나를 넘어서야만 한다.


      



몸과 무의식에 새겨진 어린 시절은 중력만큼 강력하다. 그래서 부모의 행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중력을 넘어서는 간절함이 필요하다. 이렇게 살다 죽고 싶지는 않아. 이렇게 살다 죽지는 않을 거야. 반드시 한 번쯤은 행복하게 살다 갈 거야.

     

살아지는 대로 살아서는 내가 가 본 적 없는 곳에 결코 가닿을 수 없다. 내가 경험한 적 없는 삶을 시작하고 싶다면, 몸에 밴 익숙한 삶을 깨는 망치질을 시작해야만 한다. 내 부모와도 다르고 내가 살아온 것과도 다른 새로운 삶에 대한 간절함이 내 안에 가득 찰 때 우리는 질문을 시작한다.


나는 누구인가.

왜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

나는 어떻게 나를 넘어설 수 있는가.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집요한 질문이야말로  익숙하고 견고한 껍질을 스스로 깨부수는 망치질이다. 우리는 질문 없이는 익숙한 것과 스스로 이별할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딸아, 너는 너에게 시비 걸지 말아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