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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an 27. 2023

열심히 살았는데 여전히 불행의 늪에 빠져 있다면

해방의 길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20년 전 상담공부를 막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수업 시간에 강사선생님이 던진 한 마디에 나는 낯선 세계로 밀려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맛본 적 없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입 안의 모래알처럼 서걱거렸고, 애쓰지 않아도 수시로 떠오르는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니라 기억들 속을 헤집어 애써 찾아내야 하는 생경함이 몹시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날 나는 결국  ‘행복’이라는 단어와 맞물리는 어떤 기억도 찾아내지 못했다.

나는 내가 어떤 행복한 기억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왜 나는 그 수많은 시간 중에 단 한순간도 행복하지 못했을까? 행복했던 순간을 내가 까맣게 잊은 걸까?  왜 잊었지? 정말 행복한 게 아니었던 걸까? 행복이라는 게 뭐지? 기억을 떠올릴 때 어떤 느낌이 들면 행복한 기억인 걸까?


내 몸에는 어린 시절의 어떤 장소도, 학창 시절의 어느 순간도, 결혼 생활의 어떤 날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힘이 나는 어떤 장면도 찾아내지 못했다.


슬픔과 분노를 깊은 곳에 꼭꼭 숨기면서 기쁨과 행복도 같이 묻어 버린 게 분명했다. 슬픔과 분노를 느낄 수 없도록 닫혀버린 감각이 기쁨과 환희를 느낄 리는 만무했다. 상처는 내 몸에 갑옷처럼 입혀져서 나는 행복을 향해 몸도 마음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즈음의 나는 이미  불행에 온몸이 절어 있었다.

치유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상처는 지치는 법도 없이 수시로 나를 공격해 왔고, 시부모는 죽이고 싶도록 미웠으며,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매일 버려지는 기분이었고, 세 아이를 돌보는 일은 무겁고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 와중에 갑작스레 닥친 아버지의 죽음은 나를 혼란과 우울과 불행의 밑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불행에 절은 내가 낯설지는 않았다. 불행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내 운명이었다. 나는 불행을 팔자라고 믿는, 단 한 방울의 행복도 스며들지 못할 만큼 불행에 푹 절여진 ‘불행 전문 인간’이었다.


나의 불행을 납득하기 위해 불행은 내 팔자라고 생각해야 했을 뿐, 실은 간절히 아주 간절히 행복해지고 싶었다. 불행했던 만큼 행복해지고 싶었고 받지 못했던 것만큼 넘치게 받고 싶었다. 있는 것이 열심히 사는 밖에 없었다. 보고 배우고 아는 것이 방법 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행복이 어떤 느낌인지 몰랐으니 행복하기 위해 열심히 산 것이 아니라 불행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는 것이 타당하다. 버림받기 싫어서 열심히 살았고, 사랑받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고, 초라해지기 싫어서 열심히 살았고, 미움받기 싫어서 열심히 살았다. 그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도 동동거리며 살았었다. 버려지지 않으려고, 쓸모 있는 아이가 되려고, 사랑받는 아이가 되려고.



painted by Haewon

수십 년을 착한 아이처럼 열심히 살았지만, 나는 익숙한 불행의 늪에서 한 발자국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오히려 열심히 살수록 고통은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결국은 숨을 쉬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열심히 하면 뭐든 이루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학교와 세상이 어린 나에게 가르쳤던  새빨간 거짓말 중 하나였다.
















나는 잘못 알고 있었다. 살아온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살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의 길이 바깥에 있는 줄 알았다. 부모와 세상의 잣대에 나를 맞추면, 물려받은 규범을 착한 아이처럼 따라 살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내가 풀어야 할 것이, 내가 이뤄야 할 것이, 내가 정성을 들여야 할 것이 밖에 있는 줄 알았다.


고통의 이유도, 괴로움을 벗어날 열쇠도 밖에 있다고 믿었다. 엄마가 나를 고통 속에 가두었고 아버지가 나를 결박했고 세상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인정받고 사랑받아야 하고, 나를 저울질하는 시선에 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면 행복해질 줄 알았다.  

    

나는 숨쉬기 힘들 만큼 고통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나서야 열심히 사는 것을 멈추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도 이렇게 애쓰며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 길은 해방의 길이 아닌 거다. 나는 30년 넘는 시간 동안 옆도 안 돌아보고 온몸을 뒹굴며 가던 길을 멈추었다.  


  



                      

열심히 사는 것을 멈추었던 그 때로부터 20년이 흘렀다, 나는 내가 원했던 행복과 자유를 얻었다. 해방된 나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여한 없이 하고,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맘껏 느끼며 살아간다.  


가장  아팠던 어린 시절의 상처는 나의 가장 큰 힘이 되었고, 거리낌 없이 시부모를 온몸으로 안을 수 있으며, 남편과는 서로의 상처를 가장 깊이 이해하고 쓰다듬는 사이가 되었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듯 내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들도 나의 사랑을 알고 느끼고 기뻐한다.


상처와 불행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엄마를 붙잡고 있었던 것도 나였고, 버려지고 사랑받지 못했으니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던 것도 나였다. 쓸모 있는 사람, 똑똑한 사람, 좋은 사람, 착한 딸, 좋은 아내, 사랑받는 며느리, 헌신적인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나를 몰아세운 것도 나였다.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나는 행복하지 않아도 남을 행복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통스러워도 열심히 살아야 되는 줄 알았다. 그것이 내 생의 의미이고 삶의 목적인 줄 알았다.   

   

결박도 철창도 갑옷도 내 안에 있었다. 밖으로 향하는 문을 닫고 매일매일 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묶여 있는 내 안의 어린 시절을 풀어주고, 갇혀있는 내 안의 감정들을 해방시키고, 내 몸이 되어버린 갑옷을 한 겹 한 겹 벗겨내면서 나는 조금씩 더 자유로워졌다.


부모와 사회가 만들고 내가 붙잡고 있었던 ‘나라고 믿었던 내가 아닌 나’를 부수고 버리며 가야 하는 고통의 길이었지만 더없이 황홀하고 매력적인 여정이었다. 익숙하고 오래된 자아를 깡그리 불태워 재만 남은 자리에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천지창조의 길이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내가 해방되어야 내 앞에 해방된 세상이 펼쳐진다. 내가 사는 세상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나인 줄 알고 살았던 거짓 자아를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긴 여정 끝에서 나는 마침내 잊고 살았던 ‘본래의 나’를 만났다. 버려질 수도 없고 훼손될 수도 없고 오염될 수도 없는, 언제나 내 안에서 빛나고 있었던, 생생하고 자유롭고 온전하고 완전한 '진짜 나'가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본디 그런 존재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리고 당신도 그러하다.

 

painted by Hae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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