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 낸 가상현실 속에 살고 있다
우리의 경험은 신념과 감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신념과 감각은 우리의 자아 이미지, 자아 정체성을 형성한다.
당신은 어떤 경험을 했는가? 그 경험으로 인해 어떤 신념과 감각(감정)을 가진 사람이 되었는가?
과거 경험으로 만들어진 당신의 자아는 진짜 당신일까?
태어날 때는 없었는데 태어난 아후의 경험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진짜일까?
다른 경험에 의해 재구성 될 수 있는 자아이미지가 과연 진짜 나일까?
부정적 경험은 더 많이 더 깊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에 각인된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부정적 경험이 자아 이미지와 인격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 경험을 안전한 환경에서 아이가 남김없이 표현하고, 온전히 느끼도록 허용받고, 충분히 이해받고 공감받는 긍정적인 경험을 하면 감정은 제로 상태가 된다. 더 이상 아이의 자아와 인격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러니 모든 부정적 사건은 상처로 남는다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사건은 원래 의미도 감정이 없다. 사건에 감정과 의미를 덧붙여 상처로 남게 하는 부정적인 환경이 있을 뿐이다.
아이의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가정에서는 공통적으로 아이의 감정과 욕구 표현을 비난하고 통제하고 체벌한다.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사건을 경험했다 하더라도, 아이의 감정과 생각과 욕구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아이의 몸 안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그 사건은 아이의 부정적 자아상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와 미래에 갇혀 현재를 잃는다
과거의 상처는 현재를 보고 느끼는 필터로 작동한다. 과거의 결핍 때문에 현재를 보지 못한다.
더 이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 없는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모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애를 쓰고, 부모의 사랑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어린아이처럼 배우자(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배우자에게 부모를 투사한다)의 사랑을 갈망한다. 나는 사랑받지 못한 존재이고 환영받지 못한 좀재이니 네가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서 내 존재를 채워야 한다는 망상 속에 산다.
남편이나 아내의 말한 마디에 버려진 아이의 신념과 감정이 올라오고, 나를 불행하게 하는 배우자의 행동과 감정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나의 쓸모없음과 결핍을 채우기 위해 자녀들에게 과도한 성취를 요구하기도 한다.
과거의 신념과 감각에 갇히면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뭔가를 더 가져야 하고 뭔가를 더 이루어야 어린 시절의 결핍과 상실이 충족될 것이라는 망상 속에서 결코 삶의 만족이나 행복은 없다. 늘 과거를 되씹고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는 생각 속에서 길을 잃는다.
내면아이 치유의 목적은 과거의 사건이 만들어 낸 가상현실들을 하나씩 부수는 것이다
만들어진 것은 해체할 수 있다.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게 되면 어떻게 해체할 수 있는지도 드러난다.
치유는 상처로 남은 과거 경험에 대해 나의 관점에서 남김없이 이야기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그 감정을 느끼고, 그때 그 아이의 욕구를 충분히 이해받을 때 일어난다.
내면아이치유의 핵심은 과거가 만든 허상의 신념과 감각(감정)의 껍질을 내 손으로 찢고 내 발로 걸어 나와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니 신념을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 감각은 내가 세상과 만나는 첫 관문이니 닫힌 문을 열고 왜곡된 감각을 회복할 일이다.
가상현실들을 하나씩 벗기고 부술 때마다 나를 비난하고 평가하고 혐오하던 나의 생각은 줄어들고 '진정한 나'의 느낌인 자연스러움과 편안함은 점점 커진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신념도 어떤 왜곡된 감각도 없이 태어났다. 그 상태가 우리의 원래 존재이다.
지금의 나는 어떤 부모를 만나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사건을 경험하는가에 의해 만들어진 껍데기이다.
지금의 나는 결코 본연의 내가 아니다. 만들어진 것이니 해체할 수도 있고 새롭게 만들면 그만이다.
온 몸으로 걸어가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내가 나를 새롭게 만들며 가는 신나는 길이다.
나는 이보다 더 좋은 길을 걸어본 적이 없다. 그 길 위로 당신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