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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을 좋아하세요?

- 제주도에서 한 생각 #2

by 꽃부리

A 씨: "어떤 여행을 좋아하세요?"

나: "아... 네? 음.... 그러게요 잘 모르겠네요"


여행의 첫날.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받은 질문.

상대의 입장에서는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간단하게 물어본 질문이었겠지만, 그 주제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던 나는 미처 대답하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도착 당일의 제주공항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뵌, A 씨. 입실하면서 잠깐 인사차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졸업을 앞둔 그분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제주도에 왔다고 했고, 이야기를 하던 도중 예전의 내 모습이 투영되어 진로나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2시간 뒤 딱새우를 사 와 먹으면서까지도 이어졌다.


그리고 거기서 내게 고민을 준 "여행"관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몇 년 전의 나였다면 그 질문을 대충 둘러대고 넘어갔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불분명한 내용을 정리하지 않고 일을 하니 너무 많은 오해가 생기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애매한 것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정의'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묘하게 거슬리는 이 질문도 나에게는 정리의 대상이었다.


먼저 단어의 정의를 사전을 통해 확인했다.

여행 >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에 방문하는

내용이 틀린 건 아니지만 저 정의는 적어도 나의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최소한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정의를 내가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답이 없는 일이었기에, 며칠 동안 "나는 여기에 와서 뭘 하고 싶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역시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고 생각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일단 나는 고민을 마음속에 넣어둔 채 여행에 집중하는 것을 선택했다.


나의 제주 여행은 즉흥이었다.

올레길로 걷다가 갑자기 오는 폭우 때문에 처마로 도망치기도 했고 낮시간에 도민처럼 여유롭게 영화를 보기도 했으며,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과 같이 밥을 먹고 생각을 공유했다. 홀로 있으되 외롭지 않았다.

게하 사람들과 함께 (방역 준수를 위해 사장님께서 4명씩 찍어 합성한 사진입니다)


그중에서도 타인과의 얽힘으로 인해 나는 즐거움을 느꼈고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 세계는 더 넓은 곳으로 확장되었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내 여행은 사람들로 빼곡했다.


만약 퇴사하고 집안에 홀로 있었다면, 나는 좁은 시선으로 세계를 재단했을 것이다.

비바람이 몰아칠 때는 따뜻한 집안에서 우두커니 집 밖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고 편한 것만 하고 아는 것만 하다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는 " 때는 말이야"라고 모든 것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건 세계의 종말과 같았다.


게하에서 처음 뵌 분의 생일 파티 (방역을 준수하였으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모자이크 처리)


하지만 여기서 사람들을 만났기에 나는 생각지도 못하던 고민을 할 수 있었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타인이 추천한 장소를 가보며, 스스로를 인내할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불편함은 재미있었고 유쾌했으며 나의 꽉 막힌 생각을 돌아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것이 내가 제주에 목적임을 알게 되었다.


만약 다시 첫날로 돌아가 똑같은 질문을 듣는다면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A 씨: "어떤 여행을 좋아하세요?"

나: "아, 저는 사람과 얽히는 여행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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