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
책의 이름을 ⟪욕망의 바다⟫로 지었다. 보다 친절한 설명식 제목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제목의 명료함보다는 이미지에 대한 감각성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욕망은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몸의 감각을 통해 실감해야 한다. 내 투박한 말들이 다 이해되지는 않더라도 그림으로는 그려질 수 있기를 바란다. 애초에 이 글은 논리적 설득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논문이 아닌 에세이의 형식을 택한 이유도 이러한 취지다.
바다의 이미지를 욕망과 연결시킨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바다의 충만한 그 감각 때문이다. 거대한 쓰나미가 몰아치거나, 망망대해 한복판에 있다면 바다의 충만함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석가모니가 고통이 가득한 세상을 바다에 비유하듯이, 한국 사회에 충만한 욕망 한가운데서 느끼는 그 감각을 나 또한 바다에 비유한다. 둘째는 바닷물이 주는 갈증 때문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거의 무한에 가깝게 널려있지만, 바닷물은 아무리 마셔도 결코 갈증을 해소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마실수록 더 목마를 뿐이다. 욕망의 특성과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바다가 갖는 모순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바다는 탄생과 죽음의 공간이라는 두 개의 모순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욕망은 삶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면서 또 한편으로 우리를 망가뜨리는 주범이기도 하다. 욕망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의 양방향성을 생각할 때도 바다는 적합한 이미지였다.
가능한 '바다' 같은 욕망들만 쓰려고 노력했다. 사회에 있는 욕망의 종류는 끝이 없겠지만 그중에서 분명 바다처럼 느껴지는 욕망들이 있었다. 먹는 욕망, 보는 욕망, 자랑하려는 욕망이 여기 해당되어 가장 먼저 썼다. 이는 모두 한국에 살아가는 우리들 곁에 충만한 욕망들이다. 시시각각 찾아볼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다. 끊임없이 추구되면서도 쉽사리 채워지지 않고, 우리를 들었다 놓았다 한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욕망들은 분명 더 있다. 그러나 이미 분량이 길어진 관계로 2권에서 이어가려 한다.
2. 시각과 미디어
보는 감각은 이 책 전반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한다. 그것은 시각이 가장 높은 비중의 감각인 이유도 있지만, '질주하는 특성' 때문에 그렇다. 한나 아렌트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분석한 그녀의 박사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각은 단순히 아름다운 것에 매료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유혹에 빠질 염려가 있다는 점에서 다른 감각들과 구별된다. 눈은 즐거움과 상반되는 것도 보고 싶어 한다. 보는 욕망은 다른 어떤 감각에 대한 욕망보가 강렬하다.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만져지는 것은 불쾌함을 그 즉시 피하지만, 보는 것은 멈출 수 없다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한나아렌트, 서유경 역
한국 사회 전반에 깔린 욕망에서 드러나는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멈추지 못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갈증을 유발하는 바닷물처럼, 만족시키려 하면 할수록 욕망이 배가 된다. 시각은 이러한 욕망의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허기질 줄 알면서도 먹고, 불행할 줄 알면서도 달려가는 그 심리와 견줄 수 있다.
미디어가 시각을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음도 여기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활자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영상으로 발전해 가는 미디어가 보는 감각의 확대를 불러오고 있다. 이에 맞춰 우리의 욕망이 점점 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시각과 질주의 연관 관계는 더욱 강화된다.
3. 내면에 대한 응시
보는 감각에 대해서 쓰기도 하였지만, 이 글 또한 기본적으로 나의 내면을 보고 꺼낸 이야기다. 이 글을 쓰는 동안은 가능한 다른 글을 읽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남들의 의견과 확립된 지식에 기대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감각 날 것을 꺼내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욕망의 본질에 다가가기에 더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신기한 점은 이런 내면에의 응시 또한 보는 감각의 속성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한 번 보면 좀처럼 멈출 수가 없었고, 내 안의 불쾌한 찌꺼기들과도 그대로 마주해야 했다. 그래서 이 글도 어쩌면 보려는 욕망을 원동력으로 삼아 쓰인 글이다.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족한 용기와 필력으로 심연에 이르지는 못했으니 독자가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4. 렌즈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평론에는 반드시 렌즈가 있기 마련이다.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이 책에서는 선악과의 알레고리에서 모티브를 얻어 신학적 렌즈를 차용하였다. 욕망이야말로 현실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영적인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이 렌즈를 선택했다. 개별 욕망들에 대한 분석을 마무리한 후 2권에서 정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