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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올리브 Oct 27. 2024

아이돌과 대상화

아마 미디어와 섹슈얼리티 관련하여 가장 언급하기 어려운 분야는 아이돌일 것이다. 흔히 건들면 안 되는 주제로 정치와 종교를 들곤 하는데, 둘 다 설득보다는 신념의 영역이어서 그렇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돌에 관한 의견 개진도 분명 금단을 건드리는 지점이 있다. 아이돌판은 논리와 이성의 토론장이 아니고 팬심으로 돌아가는 욕망의 생태계이다. 아무리 산업 전반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해도 어떤 팬에게는 자기 아이돌을 공격하는 일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추상화의 수위를 높여야 한다. 특히 포토 카드 구매나 팬사인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팬들로부터 "머글"로 불릴만한 사람이 아이돌 문화에 대해서 왈가왈부한다면 더욱 경계하리라. 


하나하나 그 자체로 민감한 주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도 한몫한다. 성 상품화, 성적 대상화, 유사 연애 감정 등 섹슈얼리티의 경계에 있는 주제들이 있고, 자본집약적 성격과 이익 배분 구조의 문제도 있다. 예술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아티스트와 제작자의 고민까지 더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아이돌 산업만큼 욕망의 난립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없을 것이다.


아이돌(idol)이라는 명칭부터 너무 절묘하다. 가수도 아니고, 단순 엔터테이너도 아니다. 사랑과 찬양의 대상으로서 '우상(idol)'이다. "카리나는 신이에요"라는 주접 댓글은 아이돌이라는 명칭의 본의를 기막히게 재현한다. 이렇게 온갖 아양을 떨며 "숭배해야만" 진정한 아이돌 대접이다. 영화배우의 팬과 비교하면 그 농도부터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코어팬들은 자체 콘텐츠와 라이브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엄청난 양의 포카앨범을 구매한 끝에 팬사인회에 참석하며, 콘서트에 꾸준히 가서 몇 시간이고 거뜬히 소리를 지른다. 어지간한 체력과 열정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 팬심이다. 열광의 도가니에 빠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이 그런 열정을 가능하게 할까? 여기에는 아이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분히 종교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종교성은 기성 종교와 같이 규격화된 모듈을 추구하는 고요한 형태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2002 월드컵에서 서울광장을 빼곡히 메웠던 한국인들의 엑스터시에 가깝다. 의자에 앉아 가만히 묵상을 하기보다 찬양을 부르며 방방 뛰어대는 그 모습, 어쩌면 무속신앙의 굿이나 살풀이와 더 유사해 보일 그 종교성 말이다. 사실 교의에 얽매이기보다는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리라. 다만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영성'의 용례가 통일되지 않은 측면이 있어 이 장에선 종교성이라는 단어로 갈음한다.


아이돌에 대한 맹목적 사랑이 그런 종교성 때문이라면, 이 종교의 정체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모든 종교는 초월적 대상을 바탕으로 한다. 초월적 존재가 선사하는 더 나은 가치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신도가 되기를 선택한다. 아이돌은 어떤 면에서 초월적 존재일까? 외모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분명 그게 다가 아니다. 팬들에게는 그저 잘생기고, 예쁜 외모 이상형 이상의 의미를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세상 누구보다 유쾌하지만 본업에 들어가서 반전의 카리스마를 뿜뿜한다면 이를 보고 덕통사고를 당할 수 있다. 우연히 발견한 라이브 클립에서 이가 상할 것 같은 달달함이 묻어나는 말투로 팬들에게 플러팅을 날린다면 그날부터는 영혼이라도 내어줄 수 있게 된다. 여러 가지 사례를 묶어서 이야기한다면 결국 '끼' 또는 '매력'이라고 표현해 볼 수 있다. 평소 흠모하던 매력을 가진 이상형을 마주했을 때는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가 없다. 보는 순간 숨이 턱턱 막히고 벽이 느껴진다, '완벽'이. 주변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매력의 소유자가 세상 다정하게 나라는 존재를 챙겨줄 때 느끼는 황홀감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화신(化身) 역할을 한다는 맥락에서 비슷한 존재가 있다. 네팔의 "쿠마리"이다. 네팔에서는 어린 여자아이를 살아 있는 여신으로 섬기는 전통이 있다. 그렇게 섬겨지는 아이들을 "쿠마리"라고 부른다. 이 관습은 불교와 힌두교를 융화하는 시스템으로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친다. 특히, 카트만두 지역의 쿠마리는 "로열 쿠마리"로 불리며 더욱 혹독한 선발 과정을 겪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아이돌 연습생들이 대중들에게 익숙한 자리에 서기까지 기획사 아래서 거의 모든 세부적 사항을 간섭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작부터 유사하다. 정확한 외모 기준에는 논란이 있는 편이지만, 마치 인형 스케치를 구성하듯 이목구비와 신체 하나하나를 평가한다는 건 사실이다. 


외모 기준을 통과한 쿠마리는 힌두 축제 '다샤인'에서 그녀의 영적인 자질을 보여야 한다. 어떤 두려움 없이 도축된 제물과 함께 홀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이를 통과한 쿠마리는 몇몇 의례를 거쳐 신의 현현으로 인정받고, 그 이후에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도들에 의해 종교적으로 해석된다. 아이돌 또한 모종의 의식을 거쳐 데뷔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TV 음악 방송을 중심으로 무대를 수행했지만, 현재는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다채널이 있다. 댄스 챌린지가 바이럴 될 수도, 예능에서 히트를 칠 수도 있기에 일률적인 루트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노력과 기간을 따지자면 쿠마리보다 국내 아이돌이 훨씬 더 지독한 동굴을 지나야 한다. 노래, 춤, 랩, 프로듀싱, 연기 등등 각종 자질을 키우기 위해 기약 없이 시간을 들여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일단 성공적으로 데뷔를 마치면 어느 정도 노선에 오를 수 있다. 큰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아이돌의 행동 하나하나가 사랑스럽고 퍼뜨릴만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쿠마리와 아이돌은 서로 다른 성질을 띤다. 전자는 힌두신의 특질을 담았고, 후자는 매력의 인간화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쿠마리에게 종교적 권위를, 아이돌에게는 매력의 발현을 욕망한다. 매력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대상을 사랑하게 하는 성질이 있다. 한 번 아이돌로서 이미지가 정립되면 꼭 거창하고 대단한 언행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애정을 받게 된다.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건 양자 모두가 마찬가지이지만, 쿠마리는 감정표출을 절제해야 하는 반면 아이돌은 보다 세련되게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다.


쿠마리와 아이돌은 각각 종교적 권위와 매력의 현현이다. 이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범주는 섹슈얼리티라고 할 수 있다. 섹슈얼리티는 매력의 일종이기에 아이돌에게 당연히 갖춰야 될 자질 중의 하나로 인식된다. 남자 아이돌과 여자 아이돌에게 나타나는 양상의 차이는 있다. 주된 수요자의 욕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별과 조합 불문 아무리 청량미, 청순미를 추구하는 그룹도 그 안에 나름의 방식으로 섹슈얼리티를 녹여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공식이다. 미소년 컨셉으로 데뷔한 그룹도 소녀들에게 섹슈얼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컨셉을 취하는 것이다. 신체에서부터 선호는 확실히 반영된다. "남자병"이 오기 전 아이돌이 (특히 서구적 관점에서) 남성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더라도 흔히 갖추고 있는 요소가 있다. 좋은 비율, 복근, 잔근육 등등. 어찌 됐든 상대방의 욕망을 자극할만한 요소가 포함된다. 여자 아이돌에도 분명 적나라한 수요가 있다. 적당히 마른 몸, 넓은 골반과 큰 가슴, 예쁜 다리 등이 하나하나 칭찬거리다. 여자든 남자든 여돌에 대한 칭찬에는 반드시 그런 목록이 들어간다. 팬이라면 아이돌의 품위를 위해 이를 저급한 방식으로 드러내지는 않겠지만, 섹슈얼한 신체를 동경의 대상으로서 보는 시선은 변함이 없다. 매력을 발산하는 의식의 일종인 '무대'에서는 섹슈얼리티가 비교적 자유롭게 허락된다. 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는다거나, 관능적인 안무를 추는 것도 당연히 무대적 허용으로 넘어갈 수 있다. 아이돌이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점차 농후한(?) 컨셉을 취해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섹슈얼리티를 배제한 채 무대를 구성하여 성공한 메이저 아이돌은 "뉴진스"를 제외하고는 거의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이러한 경향은 일반적이다.


반면 쿠마리의 경우, 섹슈얼리티는 엄격하게 배제된다. 애초에 선발을 3~6세의 어린아이로 한정 짓기 때문에 섹슈얼리티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혹여 강림한 신이 성인 여성의 모습을 취해 일반 남성과 성적인 교류를 한다면 문제시될 소지가 많았으리라. 더해서 쿠마리는 초경이 시작되면 지위를 잃는다. 2차 성징과 직접적으로 관련되기보다 피에 대한 금기에서 이 교리가 유래하기는 한다. 하지만 은퇴한 이후 결혼 대상으로서 기피되는 것을 보면 한 번 쿠마리가 된 사람의 인생에서 섹슈얼리티가 자리 잡기 어렵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종교적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의식을 수행하는 역할에 몰두해야 하고, 신의 대행자라는 지위와는 결이 다른 인격적 유대는 지양된다. 의례 자체도 성적인 요소가 결여되었다는 점이 고대 종교와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아이돌의 섹슈얼리티는 조금 이중적인 부분이 있다. 분명 매력의 현신으로서 섹슈얼리티를 드러낼 자유를 요구받지만, 특정 부문에서는 쿠마리와 마찬가지로 섹슈얼리티에 제약을 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아이돌의 연애 금지라는 불문율이다. 아이돌이 팬이 아닌 다른 1인에게 섹슈얼리티를 공유한다면 평소 팬들이 가져왔던 애정의 정도에 버금가는 공격을 받는다. 기사와 악플이 도배되고 주가가 휘청이기도 하며, 심한 경우 해당 아이돌이나 상대방에게 협박과 테러가 발생하기도 한다. 도덕적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광기지만 아이돌이라는 신앙에 몰입했던 팬들은 십분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욕망이라는 토대 위에 쌓아 올린 인기이기 때문이다. 욕망을 채워주던 신이 사라진다면 그 거대하던 욕망만큼 빈칸이 생긴다. 또 의존했던 자기 자신보다 의존당한 상대방을 탓하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 만약 유사연애 감정을 통해 섹슈얼리티를 만족하는 게 아니라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해 왔던 팬이라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의 예술적 표현 또한 억압되기도 한다. 자타공인 K-pop 아이돌 리사가 누드쇼 참가를 공언했을 때 팬들의 각종 반응이 터져 나왔다. 한국 문화 자체가 의상이나 노출에 대해 보수적인 탓도 있지만 아이돌 그룹이었다는 명분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작품 활동을 위해 베드신도 수 차례 연기하는 배우들에 대한 태도와 비교해 보면 유별나게 느껴지기도 하다. 그래도 이 금기가 항상 비판적인 방향으로 작동하지는 않는. 팬들은 자신들이 아닌 불특정 다수에게 아이돌이 섹슈얼리티의 대상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결사대가 되어준다. 특정 부위를 강조하는 움짤이 만들어진다거나, 지나친 노출 복장을 입게 될 경우 "절대 지켜"를 시전하기도 한다.


이런 팬들의 행동에는 스타 개인의 의도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나름의 기준이 있어 보인다. 위의 예시에서 아티스트의 의도는 당연히 누군가와 연애를 하고, 누드쇼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의지에 반대하는 팬들이 존재하였다. 무대의상의 노출 수위에 대한 걱정도 아티스트의 명시적 의사표현을 거들기보다 먼저 설레발을 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섹슈얼리티에 대한 제한을 암묵적으로 요청하는 팬들의 잣대가 있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섹슈얼리티에 있어서 아이돌이 갖는 이중적 지위는 아이돌이 매력의 현현인 동시에 종교성의 대상, 즉 신성의 존재라는 데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매력교'의 교주이기 때문에 교리나 권위보다는 매력의 발산으로 팬들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역할을 감당한다. 다만 그 또한 신성한 존재이므로 속세와 섞이지 않는 독자적인 영역에 한해 매력을 표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돌의 섹슈얼리티가 본업에 한정되는 것으로 가정하면 여러 가지 제한이 설명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아이돌은 팬들에게만 연애의 감정을 일으켜야 한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팬과 스타의 관계성이 전제된다. 라이브나 팬사인회에 등에서 마치 일대일의 애정관계를 형성하는 것 같은 느낌은 줄 수 있지만, 그런 특권을 몇 명에게 지속적으로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 어떤 팬이든 일정한 조건을 만족시켰을 때 그 자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다. 전체 팬이 아닌, 특별한 대상에게 독점적으로 매력을 제공한다면 본업을 소홀히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사람 대 사람 간의 애정과 아이돌과 팬 간의 사랑은 별개의 종류라는 인식이 원칙적으로는 맞으나, 매력의 화신인 아이돌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그 양자를 구별하지 못할 사람들도 많이 있기에 이런 법칙이 생겼을 것이다.


아이돌의 몸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타의 몸선이 드러나는 현장은 한정된다. 무대나 예능 등 매력을 구현하는 본업을 수행하지 않는 공간에서 드러나는 몸은 환영받지 못한다. 팬들의 요청이 없는 장소에서 노출이 이루어지려면 납득할만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동일하게 팬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사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돌을 쫓아다닌다거나, 촬영하여 사진을 유포하는 사람은 사생으로 취급받기 마련이다. 더해서 무대에서 드러나는 아이돌의 섹슈얼리티를 접하는 사람도 이미 팬이거나, 앞으로 팬이 될 수 있는 후보여야 한다. 성적 매력이 드러나는 아이돌의 몸을 그 아이돌을 모르는 사람들이 '불건전한' 의도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일부 팬은 자기 최애가 안무를 통해 뿜어내는 섹슈얼리티를 보고 음흉한 생각 또한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용납할만한 일이 된다. 왜냐하면 팬이 스타에 대해서 갖는 복합적인 사랑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연인 간의 사랑에도 섹슈얼리티뿐 아니라 애정 표현이나 추억에서 오는 여러 가지 감정이 있듯이, 아이돌에게 갖는 팬의 감정도 다층적일 수 있을 뿐으로 여겨진다. 반면 지나가는 사람 1이 보고 느끼는 감정은 오로지 신체에 대한 욕망으로 간주될 것이다.


여기 이르면 아이돌 문화에 대한 두 가지 이해가 가능하다. 앞의 글에서 디지털 미디어의 구조는 현실 인격과 유리되는 신체를 재현함으로써 대상화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서술하였다. 그런데 아이돌 문화는 이런 대상화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대중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 신체를 하나하나 나누고 미시적으로 관리하지만, 그 각 신체의 매력을 따로따로 소비되도록 놓아두지는 않는다. 관리된 신체가 아이돌의 캐릭터와 별개로 세상에 떠돌지 않고, 바로 '그 아이돌'의 매력으로 포섭된다. "좋은 몸매를 가지고 있어서 그 아이돌을 좋아한다"라고 말하기보다, "그 아이돌이 섹시한 몸매까지 가지고 있어서 더 매력적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몸선과 섹슈얼리티라는 한정된 속성으로만 매력이 측정되도록 놔두지 않고, 얼굴, 성격, 노래 실력, 끼 등 다양한 조합으로 스타성을 견인한다. 실제로 아이돌 산업 전반도 신체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소를 매력의 일환으로 포괄하기 위해 콘텐츠의 확장을 거듭해 왔다. 자체 콘텐츠를 통해서는 멤버들 간의 관계성을, 예능을 통해서는 숨겨진 유머감각과 끼를, 라이브를 통해서는 인간적인 면모와 소통 능력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매력의 층위를 다양화하고 모세혈관처럼 스며들게 하는 전략은 실제로도 통하였고, 더욱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다수 대 대상이라는 관계성보다는 훨씬 더 인격적 교류를 촉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비판적으로 검토하면 그렇게 형성되는 매력 또한 하나의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이 관점 하에서 아이돌은 꿈같은 이상의 매력을 현실처럼 구현하는 메타버스에 가까울 수 있다. 특히 이 가상현실은 자본과 경쟁의 시스템 하에서 배양된다. 매력을 무기로 삼은 아이돌 산업이 완전히 흥행했고 세계 곳곳에도 수출되고 있지만 이 매력은 사실 대상화되고 상업화된 '또 하나의 신체', 즉 '캐릭터'이기도 하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몸이 대상화된 신체로 분할되어 소비할 수 있는 이미지로 재생산지만, 아이돌 산업에서는 '어떤 매력'이 '캐릭터'로 대상화되어 소비되는 것이다. 청량함, 치명적, 키치, 걸크러쉬 등등의 매력 카테고리에 맞춰 연습생들을 빚어내고 그에 맞춰 팬층을 확보한다. 


이렇게 대상화된 캐릭터는 기존의 대상화된 신체와 같은 문제를 겪는다. 우선은 현실의 인격과 별개로 욕망을 위해 소비된다는 것이다. 아이돌은 데뷔 이후 마치 로열 쿠마리처럼 모든 일상에 제약을 받는다. 특히 그가 상업화된 매력의 현신이기 때문에 개인의 인격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어려워지고 소비될 수 있는 상품으로 거듭나게 된다. 따라서 대중의 욕망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 - '체중 조절'에 실패할 정도로 음식을 먹거나, 연애를 하거나, 기타 '매력'에 반하는 모든 행위를 차단하거나 숨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잃어간다는 감각으로 괴로워하는 스타들이 많다는 사실을 보면 이러한 제약이 결코 가벼운 짐은 아닐 것이다. 이토록 혹독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티스트의 바람과는 전혀 관련 없는 방향으로 오로지 팬들의 욕망을 위해 소비되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팬픽 문화를 들 수 있다. 팬픽에 등장하는 관계성이나 동성애 모티브는 실제 사실과는 관계없는 상상의 산물이다. 보통 현실의 인물에 관한 글을 쓰고자 하면 그 사람의 인생이나 가치관에 대해 밀도 있는 조사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팬픽의 대상이 되는 아이돌에 대한 정보는 만들어진 신화가 주를 이루기에 실체적 자료수집은 어렵다. 또 팬픽을 쓰고 읽는 사람이 바라는 스토리나 캐릭터도 아티스트의 인간으로서의 생애와는 별 관계가 없다. 자기 욕망을 충족시켜 줄 가상의 존재가 서술의 대상이 되며 이에 따라 아이돌의 캐릭터를 본인의 인격과는 분리된 방식으로 소비하게 된다.


대체가능성 또한 피할 수 없다. 비록 아이돌의 신체는 캐릭터 안에 포함시켜 하나의 정체성으로 구성했지만,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자체는 언젠가 대체된다. 아이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실제 인격과 분리되는 시점이 올 것이다. 본연의 인격을 아이돌 이미지로도 활용한 케이스가 아예 없지는 않으리다만, 그 본연의 인격이라는 것도 결국 아이돌 판에서 '훈련된' 것이다. 미처 훈련되지 않은 인간성 자체까지 사랑하는 소수의 팬들 외에 한 아이돌에 열광적 애정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여기 어느 팬의 최애가 있다. 강아지상의 둥글둥글한 이목구비, 설레는 키차이, 다정다감한 성격과 세심한 배려, 메인 보컬로서의 실력 등에 반해 덕질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술자리서 줄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이 공개 돼버렸다. 흡연이 결코 죄는 아니지만, 자신이 가져왔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은 팬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식은 애정을 되살리려 어떤 노력을 할 필요 없이, 다시 비슷한 느낌의 최애가 등장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아이돌과 미디어의 관계성,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섹슈얼리티는 여전히 되돌아볼 지점이 많다. 지난 시간 동안 아이돌 산업계에서 발생했던 끊임없이 발생했던 대형 사건의 기저에는 이러한 난점들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다르게 보면 아직 더 도약할 여지가 많이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K-pop 아이돌이 유례없는 세계적 전성기를 맞았으나 동시에 위기론도 맞이하고 지금, 현상의 표면보다는 본질에 대한 반성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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