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는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천명했지만, 한국 사회를 규정하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 이 새로운 손은 자원을 배분하는 '가격'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규정하고 움직이게 하는 '관념'이다. 그런데 이 구조가 판옵티콘과 매우 유사하기에 '관념의 판옵티콘'이라고 부를만하다.
판옵티콘(Panopticon)은 영국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고안한 감시형 건축 구조로 중앙 감시탑의 간수는 모든 수감자를 볼 수 있지만 수감자들은 언제 감시당할지 알 수 없는 비대칭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수감자는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게 되는데, 푸코는 이를 권력의 시선을 내부화하는 기제로 본다.
나와 친구들에게 나타났던 행동 양상은 수감자들의 그것과 퍽 비슷하다. 마치 누가 쫓아오는 듯한 중압감을 시시각각으로 느끼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짓누르지 않았으면 그렇게 열심히 살 수도, 그렇게 지칠 수도 없었다. 중앙에서 미지의 대상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무엇인지도, 언제 훌쩍 와서 보고 있는지도 알 길이 없었지만 말이다.
누가 나를 감시하는 존재였는지는 상상할수록 아리송했다. 삶에서 만나는 멋있는 사람들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한 적도 있었지만 사실 간수라기에는 그들은 많이 어설펐다. 아무리 진정성 있는 멘토라고 해도 마주치는 시기와 상황은 한정적이었으니 말이다. 귀한 시간 내어 고심하고 선량한 조언을 해주는 게 정말 감사할만한 일이었지만, 결국 내 인생을 책임져줄 순 없었다. 그 사실을 잘 아는 나를 어느 한 사람의 영향력이 긴 시간 동안 짓누른다고 하기에는 턱도 없었다. 권위적인 부모를 만났더라면 사람에게서도 직접 그런 감정을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았기에 특정인에게 주체성을 위협받는 기분은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나를 지도했던 사람들의 생각을 하나로 정리해 보니 특별한 점이 보였다. 그 모든 말들이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학교와 학원의 선생님, 부모님, 큰아버지를 비롯한 친척들, 멘토님, 어르신들이 하는 이야기들이 모두 비슷했다. 구체적인 양상이 다를 뿐 종합하면 분명 내가 잘 되기 위해서 어떤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 성공의 상은 어느 한 선을 따라갔다. 최선을 다해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가고, 멋들어진 직장에 취직하고, 돈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고, 비슷한 조건의 착한 배우자를 만나고, 뭐 그런 것들. 개별 언어들을 하나로 모아보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관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관념들이라면? 개별 인간의 영향력은 크지 않았지만, 수없이 반복해서 듣느라 고착된 상은 분명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끔 들리는 성가신 잔소리의 수준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나의 생각을 잠식하는 틀로써 말이다. 그렇게 간수의 정체에 대해서 조금씩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한국의 판옵티콘 한복판에는 우리를 감시하는 관념들이 있었던 것이다.
현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존재의 향방이 분명하다. 그들이 나를 감시하는지 않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관념은 그렇지 않았다. 관념은 형성되기도 하고, 부정되기도 한다. 실제로 형성된 관념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상에 불과한지 알 길이 없다. 사람들 안에서 공인되고 나를 압박하는 기준이 나타나기도 한 반면, 나의 피해망상과 트라우마로 인해 있지도 않은 오지랖을 탓하는 경우도 있다. 그 불투명성이 문제였다. 나를 억누르는 대상이 있는지 없는지 몰라서 적으로 삼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항할 수도 없었다. 무기력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쉐도우 복싱을 날리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지 외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그 많은 사람들은 뭘까? 그들은 왜 관념의 전달자가 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분명히 나의 인생을 더 좋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왜 그 정해진 상을 그대로 전해주기만 하였던 것일까? 어릴 때는 어른들이 우리를 길들이고자 자기들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사회를 알아갈수록 나에게 담론을 전달한 그 모든 사람들도 관념에 종속된 수감자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때때로 감시탑을 채우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들도 결국 관념의 치리를 받는 수감자일 가능성이 있던 것이었다. 이런 이해의 바탕에서 판옵티콘은 중첩된 구조를 가진다. 중앙의 한 점을 둘러싸고 원형의 수감공간이 퍼져있었는데, 그 수감 공간을 둘러싼 또 하나의 바깥 수감공간이 있다. 안쪽의 수감자들은 바깥의 수감자들에게 간수가 있다고 소리친다.
이강백의 ⟪파수꾼⟫처럼 그들이 실상 보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 소리치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실제로 간수가 보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니들은 살아봤냐? 난 살아봤다". 한 할아버지가 자랑스럽게 외치던 쇼츠의 멘트가 생각난다. 들을 때마다 오글거림을 참을 수 없지만 경험자의 지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살아 숨 쉬는 이리떼를 보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더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저 노선을 따라가야 하는 게 맞다고 철저히 믿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말을 따라야 하는지는 비판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정확히 이름이 기억은 나지 않지만) 유명 푸코 연구자 밑에서 수학하셨던 함재봉 박사님에게 들은 강의 중 여전히 생생한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서양에서 근대 기성복이 도입되기 이전, 귀족들은 맞춤복을 입었지만 평민들은 그냥 되는대로 옷을 입었다고 한다. 다들 프리사이즈를 택했기에 '옷 사이즈'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맞고 안 맞고 좀 크고 작고가 있는 정도였기에, "이 정도면 대략 100사이즈니깐 평균 성인 남성이 입을 수 있어" 또는 "저 친구는 좀 말랐으니깐 스몰 사이즈 85 정도 되겠네"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근데 기성복이 도입되고 나니 각자 자신의 '사이즈'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게 되었다. 현대에는 기성복이 맞춤복과는 다르게 개인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으로 흔히 생각된다. 하지만 기성복 도입 이전에 자기 자신의 사이즈 개념이 없었던 평민들에게는, 기성복의 도입이 자기의 '사이즈'라는 고유한 개성을 살려주는 역할을 했다. 없던 범주가 생겨나서 자기의 특성을 설명할 재료가 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르다. ENTP라는 특성은 유형 모음에 불과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없었던 개념이기에 개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이런 기성복에 대한 근대와 현대의 관점 차이가 우리의 판옵티콘 인식 차에 상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기성세대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수많은 '관념'들은 기성복의 '사이즈'와 같다. 전쟁, 빈곤, 독재라는 제로베이스부터 지금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낸 세대이기에, 관념에서 지시하는 모든 대상은 그 이전까지 없었던 것들이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세계적으로 유망한 대기업에서 연봉을 보장받는 것도, 법조인이나 의사가 돼서 사회적으로 대접받는 것도, 그 세대에 처음 있는 일이다. 아무리 넓게 잡아도 자기 부모 세대에서부터나 시작된 새로운 현상인 것이다. 따라서 윗 세대 입장에서는 그런 '범주(카테고리)'들이 자기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어디 대학교 출신, 대기업, 직업 등등은 무조건적으로 갖추어야 될 '사이즈'이다.
그리고 이 범주는 대부분 집단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기성복 방식이 대규모 인원의 군대에 효과적으로 군복을 도입하기 위해 실시된 것처럼, 기성세대의 범주는 모두 집단 소속감의 일부로 기능한다. 학벌, 회사, 지연 등등. 그래서 이 장의 이름을 '벌(閥)'이라고 썼다. 학벌, 문벌, 족벌, 파벌 등 여러 집단에 소속되려는 그 욕망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집단 소속감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는다면 상승의 욕구를 만족시킬 성공의 조건은 더 뛰어난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다. 옷 사이즈 'L, M, S"에는 가치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지만, 기성세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집단 카테고리에는 가치가 부여되어 있다. 정말 뛰어난 그룹, 적당히 뛰어난 그룹, 평범한 그룹, 패배자 그룹. 마치 입시 성적표에 우열을 부여하듯이 말이다.
반면 지금 다가오는 한국의 새로운 세대는 기성복의 사이즈를 원하지 않는다. 태어나자마자 기성복을 입고 자랐기 때문이다. 내가 라지 사이즈를 입고 있다는 사실이 내 고유성에 관해서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어떤 집단 카테고리에 소속되어 있다는 게 내 개성과는 큰 상관이 없어지고 있다. 남들도 다 대학을 나오고 회사를 간다. 그 안에서 성공하면 그냥 좋은 대학 나온 사람, 좋은 회사 다니는 사람 정도는 될 수 있지만 그것으로는 절대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나'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범주화가 있던지, 아니면 나 개인만 가지고 있는 무기가 있어야 된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끊임없이 그 문제를 고민한다. 아무리 좋은 회사에 들어가도 퇴사 고민 한 번 안 하는 사람 없으며,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 이후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근심이 끝이 없다. 수도 없는 '벌(閥)'의 의미가 희미해지고 개인이 더 중요해지는 세대가 오고 있다. 아니 이미 왔을지도 모른다.
아마 나를 비롯한 90년대생은 정확히 그 과도기를 지나는 세대인 것 같다. 인터넷 보급이나 스마트폰 발달 등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라는 기술 발전의 박자도 함께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그 기술을 통해 나타나는 욕구의 발현이 달라지고 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성적의 사다리도, 단 하나의 연장선도 점점 옅어지길 바란다. 나는 이제야 멈춰서 이 변화를 목격하고 있지만, 자라는 아이들은 그 변화 속에서 차근차근 자라나길. 더 이상 관념의 판옵티콘에 구속되지 않고 문 밖으로 전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