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비전은 없다

기독교인의 흔한 오해 2

by 야생올리브

*당신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기독교가 현지화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각 지역마다 중요시하는 가치가 다르고, 사람들의 수요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집권적 가톨릭과 달리) 일종의 개인사업자(?)라고 볼 수 있는 개신교 교회는 현지 특성에 발 빠르게 맞추어 적응해 나간다. 그런 기민함이 개신교회의 광범위한 성장을 도운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여기에 맹점이 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본질적 가치가 현지에서 우선되는 가치에 밀려나거나, 그 둘이 묘하게 섞여버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한국 교회의 로컬라이징에는 성공론이 가장 두드러진다. 유교의 '입신양명'이 칼뱅의 '직업소명론'과 기이하게 혼합되었다. 실제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으로서의 직업이 존재하고, 그 직업을 통해 사회에서 출세하면 비전을 성취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청소년들을 상대로 비전 캠프를 진행하거나,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장래희망을 되새기도록 한다. '꿈꾸는 자' 요셉과 다니엘은 성공하는 신앙인의 표본이며 설교의 단골 소재이다.


그런데 실제로 성경이 직업과 비전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노아, 아브라함, 야곱, 요셉, 다윗과 같은 구약시대의 인물은 물론, 신약의 세례 요한, 베드로, 사도 요한, 바울, 바나바 등 누구의 삶을 살펴봐도 직업과 사회적 성공에 대한 비전은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굳이 굳이 끼워 넣자면 아브라함, 야곱에게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창출하는 번성의 비전을, 요셉에게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흉년의 위기에서 구원해 내는 지위를 갖는 비전을, 다윗에게서는 '왕(이걸 현대적 의미의 직업을 볼 수 있을까...?)'으로서의 기름 부으심을 발견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마저도 현대 한국 교회에서 추구하는 사회적 성공과 출세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심지어 사도바울은 장막을 만드며 자비량으로 선교를 했고, 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라는 직업 아닌 직업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쳤다.


잘 칼뱅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직업 인식 또한 입신양명과는 거리가 멀다. 종교개혁자들의 직업 인식은 일차적으로 성직자와 사제에 대한 독점되어 있었던 비전을 만인에게 가져오는 데에 초점이 있다. 성직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많은 직업이 모두 하나님의 소명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평등에의 선언이었다는 것이다. 만인이 제사장 될 수 있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역과 비전 또한 만인에게 공유될 수 있음을 드러냈을 뿐이다. 어떤 직업을 가져서 사회적으로 성공해야만 하나님의 뜻과 성취를 이룬다는 취지가 아니었다.




*그럼 내가 기도하면서 본 그 비전은 뭘까?

초기 단계의 신앙에 있는 사람에게는 다소 충격일 수 있지만, 당신의 기도는 욕망의 결과물일 확률이 농후하다. 기도를 하는 중에 무엇이 보이거나 들린다고 해서 하나님 뜻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기도에 투영되기 때문에 반드시 검증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확인하면 된다. 물론 그 이전에 전적인 회개의 과정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자아를 거슬러 말씀에 자신을 비추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도자 또한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 예수님조차 매일매일 기도로 성부 하나님과 소통하셨고, 겟세마네에서 육체의 욕망을 거스르며 십자가에 대한 '아버지의 원'을 구하셨음을 기억하면 위로가 될 것이다.



*혹시 하나님은 없는 건가요? 내가 만난 하나님은 모두 가짜인가요?

자신이 이미 기도를 통해 본 '비전' 비스무리한 것들 때문에 절망하거나 혼란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 앞에 내가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이 가졌던 욕망을 통해서도 섭리를 만들어가실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다. 욕망의 구름이 걷히면 우상은 사라지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심을 더욱 선명히 알 수 있다.


다만 더 좋은 것을 추구하면 된다. 지금까지 쌓아왔던 '나를 위한' 욕망을, '공동체를 위한' 하나님의 비전으로 바꿔내고 그 안에서 개인의 비전 또한 발견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 나라의 보편성에 함몰되지 않고, 오히려 어우러져 빛나는 당신의 존재 또한 감각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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