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지 않는 신앙

by 야생올리브

말, 말, 말. 사실 교회처럼 말이 많은 곳도 몇 없다. 해외 한인 교회 같이 자그마한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하는 곳부터 초대형 메가 처치까지 온갖 종류의 가십과 뒷담화가 넘쳐난다. 한동안 교회를 열심히 다닌 사람도 급작스럽게 떠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이 바로 비판의 언어이다.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들은 말들만 모아보면 여기가 예배의 공간보다는 사탄의 소굴에 더 가까워 보이기까지 한다.


신앙이 좋기로 유명한 사람들도, 어려서부터 교회의 터줏대감으로 활동하는 이들도 유독 이 문제에 대해서는 둔감한 것 같다. 비대해진 자아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경우도 많다. 물론 교회 시스템을 잘 아는 직분자와 열심히 경건 생활을 한 신자들이 가하는 비판에 아주 일리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때로는 옳고 합당해 보이는 말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침묵해야 한다. 아주 이례적으로 비판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가 합리화하는 거의 모든 순간들은 여기 해당되지 않는다. 비판의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올 때, 더 단단히 침묵해야 한다. 어떤 비판의 말도 입에 담지 말고 감히 선악을 분별하는 자리에 서지 않는, 그런 지독한 훈련이 필요하다.


이는 사람 앞에서 침묵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도 침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잠잠히 기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와 욕망을 스스로 주관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죄를 참지 못하고 자기 주관으로 고발한 사람이, 어떻게 스스로의 죄만 쏙 빼서 하나님께 맡길 수 있겠는가. 침묵은 공동체를 위한 훈련이기 앞서 자기 자신을 위한 훈련이다.


다른 누군가를 비판하는 순간,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게 투사되는 자기 자신 또한 비판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양쪽 모두를 지으신 하나님에 대한 비판이 되기도 한다. 비판이 신학적 맥락에서는 당사자 간의 문제가 아닌 이유가 여기 있다. 작품을 욕하면 곧 작품을 만든 장인을 욕하게 된다. 아이의 행동이 못마땅하면 곧 그 아이의 부모를 떠올리게 되듯이 말이다. 하나님의 피조물을 비판하면 곧 하나님의 통치 질서에 대한 반란에 가담하게 된다.


그럼 참기만 하다가 화병나서 죽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유일한 재판관이 있다. 그분께 모든 것을 터놓으면 된다. 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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