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쭤보는 신앙

by 야생올리브

*하나님께 반문해도 될까?


권력을 대하는 아랫사람의 상징은 침묵이다. 정말 높은 지위에 있거나 추앙받는 사람들을 만나면 감히 먼저 질문할 수 없다. 그저 상대방이 묻는 말에 '예 또는 아니오'라고 짧게 대답해야 한다. 요청을 받을 경우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일 수는 있지만, 그마저도 과해지면 상대방과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더군다나 권위자의 말에 반문하는 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의 아버지라거나 남편 또는 친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권위를 드러내야 하는 공적 예식에 있어서는 존중을 보여야 하나, 사적인 자리에서는 얼마든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그 관계성이 너무나 강력하기에 때로는 공적인 자리에서조차 일부 허용되기까지 한다.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가서 묻고, 되물을 수 있다. 자녀, 아내, 친구로서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좋은 신앙의 상징이다. 여쭙고, 듣고, 고백하고, 속삭이는 그 모든 대화가 신자를 신자답게 만든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가 형성된 상태라면 반문하는 것 또한 허용될 수 있다. 아브라함, 다윗, 요나, 욥처럼 하나님이 이미 정하신 사안에 대해서조차 다시 여쭤볼 수 있게 된다. 그건 묻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인격적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안타까워하시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이를 말리는 중보자가 되었다. 다윗은 모든 사안에 대해 하나님께 여쭤본다. 허사를 경영하는 세상의 군왕들을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기름부은 사울의 반항을 인내하는 그분의 심정을 함께 해나간다. 교만해진 자신에게 징벌을 내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쓰라린 마음까지 헤아렸던 그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는 호칭을 얻기에 이른다. 요나는 니느웨 백성조차 살리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 잘 이해했기에 하나님께 불평불만할 수 있었고, 욥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알았기에 자기 고통의 이유에 대해서 물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스스로 아버지, 남편, 친구로서 우리와의 관계성을 형성하신다. 유일무이의 절대자 개개인과 인격적 교류를 한다는 그 독특성이 기독교를 기독교답게 했다. 삶에 감사의 제목이 넘친다면 찬양으로 사랑의 고백을 올려드리자. 세상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평안과 충만함이 답으로 돌아올 것이다. 혹시 오늘 신앙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하나님께 터놓고 마음의 중심으로 기도해 보자. 이미 우리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는 하나님께서 위로와 담대함을 모두 허락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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