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과 신앙적인 사람을 혼돈해서는 안 된다. 성경이 지시하는 침묵이나 용서는 궂은소리를 들어도 못 들은 척 넘기라거나, 남이 나를 무시해도 헤벌레 하고 있으란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태생이 착한 사람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 같은 성질배기는 그렇게 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착함은 인격에서 유래하고, 신앙적 침묵은 믿음에 근거를 둔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어느 정도의 착함 또한 자연스럽게 따라와야 하는 것은 맞으나, 착함 자체가 신앙의 지표가 되지는 못한다. 신앙적 침묵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판단하실 것이라는 신뢰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이 '판단'은 꽤나 적극적인 양상을 띤다. 그저 옳고 그름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에 하나님이 직접 보응하실 것이라는 예견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남을 자기 입으로 비판하지 않아도 후련할 수 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진짜 신앙'이 요구된다.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믿음, 그리고 호소하는 사람에게 응답하신다는 믿음 없이는 절대 침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침묵이 꼭 냉정한 합리성을 통하지는 않는다. 기독교인은 자신의 감정을 사람 앞에서만 침묵할 뿐, 하나님 앞에서는 적극적으로 토로할 수 있다. 자신의 대적들을 놓고 격한 감정을 쏟아내며 기도했던 다윗처럼 얼마든지 호소해도 된다.
특히 하나님께 착한 모습만 보이려는 실수는 절대 안 된다. 치미는 화와 짜증, 불합리 대한 감각을 혼자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억누르며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까지 그렇게 거룩하고 순결한 사람인 척 기도하면, 바로 그 착하지 않은 모습에는 하나님의 의가 임하지 못한다. 자기 어둠을 기꺼이 빛으로 가져와야 환히 밝아지기 마련이다. 신앙은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세워가야 한다. 내 인격에 의존하면 나의 의를 자랑할 뿐이다.
오늘 속상했던 일이 있었다면 하나님께 나아와 토로하자. 하나님께서 듣고 위로해 주실 것이다. 나를 무고히 공격했던 사람에게 솟아난 분노도 기꺼이 고백하자. 하나님께서 판단하여 주실 것이다. 다른 누구에게도 말고 하나님께만 실컷 쏟아놓으면 된다. 그렇게 마음을 나누고 또 하나님의 응답을 듣기도 하자.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을 일러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