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서 예배하는 이유
아름다움 대한 경탄은 매우 주관적인 감정임에도 모두에게 공유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예를 들어, 길에서 연예인 같은 미모의 대상을 보게 된다면 친구들과 "야 너두? 야 나두!" 봤다고 자연스럽게 너스레를 떨게 된다.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세상을 다르게 인식했던 이들이 아름다움 앞에서는 함께 멈춰서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확신하게 된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미감을 다른 사람도 느끼고 있음을.
그래서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공유는 곧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근간이기도 하다. 고독한 개별 존재들의 주관성이 미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 엮이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파편화된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그런 공통분모가 절실하면서도 놀라운 기적이다.
현대적 예배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대인인 우리는 왜 굳이 모여서 예배를 드릴까? 검색엔진뿐만 아니라 AI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신학 정보를 탐색할 수 있고, 어느 누구에게도 박해받지 않고 어디서나 기도드릴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그것은 예배가 하나의 미학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각자' 하나님을 만나면서 그분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목도하지만, 이에 갖는 감정을 '공동체' 가운데 공유되는 종류로 승화시킨다.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는 찬양을 부른다거나, 그분의 아름다움에 탄복하는 고백을 담아 기도한다. 분명 개별로 하나님과 만나면서도 모두가 같은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는 이유는, 그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마주하며 느끼는 그 감정을 자신뿐만이 아니라 같이 예배를 드리는 사람 모두가 경험하고 있음을 예배와 찬양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각자 개별로 존재하면서도 함께하는 그 감각, 그 놀라운 미학의 경험이 예배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든다. 또 그 경험의 연속이 우리의 예배를 다같이 모이는 집회의 형식으로 유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스토리텔링 한나 아렌트⟫, 사이먼 스위프트, 앨비 130 - 143
칸트의 아렌트의 미학 이해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