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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영수 Sep 12. 2024

담력시험

“얼굴에 이 분장하고 어딜 가, 어디 뭐 집에라도 간 줄 알았어? 거기 계속 있다가 잠깐 딴 데 갔었어. 아 걱정했어? 아니 길 잃어버린 건 아니고 그 자리에 계속 있었는데 거미줄이 자꾸 얼굴에 걸려서 옆으로 좀 갔지. 근데 아까 말이야. 3조 끝나고 4조 올 때까지 시간이 있잖아. 아 4조는 없고 3조까지야? 일단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근데 그때 거기서 뭔가를 본 것 같아. 아니 누구를 봤어. 정확히 말하면 누가 뭘 하는 걸 봤는데, 그게 뭔가 좀 심상치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일단 처음에는 소리만 들렸거든. 땅파는 소리 같은 거. 추슉 촤자작 추슉 그런 소리. 듣자마자 어? 이거 삽으로 땅파는 소린데? 싶었지. 근데 저녁에 누가 땅을 파. 그리고 만약 팔 일이 있다고 해도 뭐 불을 켜놓고 작업을 하던가 할 거 아냐. 근데 주위는 다 깜깜했거든. 그래서 내가 어디서 소리가 나는지 찾아보려고 약간 움직였거든. 그러니까 내 발에 나뭇잎이 밟혀서 사부작 소리가 날 거 아냐. 실제로도 났어. 근데 그게 그렇게 크지도 않았거든 그 사부작 소리가. 커봤자 사부작 일거아냐. 근데 그 소리가 나자마자 그 땅파는 소리가 딱 멈춰. 그 순간 나도 약간 뭔가 낌새가 이상해. 나도 바로 멈췄지. 순식간에 긴장되더라고.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거 누가 되게 조심스럽게 땅을 파고 있다, 그것도 이 시간에. 왜보다 먼저 생각난게 대체 뭘 하려고 이 시간에 삽질을 하는거지? 최근에 그런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자꾸 막 오싹해지더라고. 


 그리고 한 30초 있었나. 진짜 침도 안 삼키고 있었던 것 같애. 그러니까 다시 땅파는 소리 나더라고. 그 사람들 경계도 30초 정도 였나봐. 그 다음에 나도 이제는 집중해서 그 소리 들으려고 하니까 대충 위치를 알겠어. 살짝 왼쪽 둔덕 너머. 그렇게 안 먼 것 같애. 그 다음에는 궁금하잖아. 그래서 진짜 소리 안나게 최대한 신경쓰면서 조금 더 가봤다? 그러니까 보여. 거기 맞아. 그래서 나무 뒤에 숨어서 봤거든. 남자 두명. 근데 남자인지는 몰라. 한명은 확실히 남자. 군대 갔다 온 것 같더라고. 삽질하는 폼이 엄청 좋더라. 뭐 그런 생각하면서. 다른 한 사람은 그냥 서 있었는데 삽을 들고 있지도 않은 것 같았어. 그냥 서서 파는거 보고 있더라고. 그 사람이 담배 안피고 있었으면 못 봤을 수도 있어. 근데 신기하잖아. 무슨 저녁에 불도 하나 안켜고 땅을 파. 요즘 핸드폰으로 후레쉬 다 킬 수 있는데. 옆에 서 있는 사람 삽도 안들고 있는데 조명같은거 켜 줄 수도 있을텐데,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서 있었다니까. 삽질하는 사람은 계속 삽질만 하고. 근데 엄청 팠어. 진짜 엄청 팠어. 그리고 나서 그 그냥 서 있던 사람이 담배 한 대 더 피려고 라이터 켜는 순간에 옆에 뭐가 놓여있어. 사실 자세히는 못봤어. 좀 컸어. 사람? 몰라 사람일 수도 있지. 근데 진짜 자세히는 못봤어. 근데 뭔가 있었긴 했거든. 보면서 나는 아 저걸 묻으려고 하나보다. 근데 뭐길래 지금 묻어. 모르지. 나도 너무 궁금해서 이안시 뭐 그런거 있잖아 군대 야간사격할 때 배우는거는 개뿔 하나도 안보여 진짜로. 어두운데 초점 없이 봤다가. 다시 봤다가. 그래도 안보이더라. 


 여튼 그러고나서 좀 무섭기도하고 다시 돌아가야겠다 싶어서 움직이려는데 또 나뭇잎 소리 났어. 진짜 작게 났어 근데 진짜 조그맣게. 그러니까 그 서있던 남자가. 야 있어봐. 이러더라고. 그러니까 삽질하는 사람도 멈추고. 나도 멈췄어. 뭔가 무섭잖아. 뒤돌아서 봤는데 그때 내 느낌에 뭔가 눈이 마주친 것 같애. 진짜 마주친지는 모르지. 진짜 어두웠다니까. 근데 그냥 느낌이 있잖아. 원래 뭔가 찾으려면 이게 시선이 옆으로 스르륵 흘러가는 느낌으로 고개가 돌아가야될거 아냐 카메라 팬 되듯이. 그 사람 입장에선 소리나는 쪽을 찾아야되니까. 근데 그 고개가 내가 있는 거기서 멈췄다니까. 딱 멈췄어  그냥. 그래서 그때 들었던 생각이 어, 저 사람 나 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그 사람이 보이니까 그 사람도 뭐 나 봤을 수도 있지 나무 뒤에 있었긴 했는데도. 봤을거야. 아마 봤었던 것 같애. 근데 그 사람이 거기 누굽니까 라던가 어이 뭐야 라던가 뭐 아니면 안녕하세요 라던가 뭐라고 말을 할 법 하잖아. 근데 아무 말도 안하고 그 삽질하는 사람을 툭툭 쳐. 그 다음에 왠지 느낌에, 그냥 내 느낌에 내 쪽을 가리키면서 뭐라고 할 것 같은거야. 그래서 그거 안보고 그 순간에 그냥 여기로 냅다 뛰어온거야. 아니 그렇게 행동한 건 아니고 그 사람이, 내가 보진 못했다니까. 딱 툭툭 칠 때 그때 그냥 도망왔어. 근데 이 얘기를 사실 너희 무서울까봐 안 하려고 했는데 내가 여기로 뛰어오면서 든 생각이, 근처에 불 켜진 곳이 지금 여기 펜션밖에 없어. 이 근처에 펜션 하나도 없어. 다 불 꺼져있고 손님 없나봐. 만약에 그 남자들, 남자들인지 아닌지는 모르고 여튼 그 뭐 파서 묻으려던 사람이 찾아오려고 마음 먹으면 왠지 찾아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그래서 말하는거야. 우리 잠깐 불 꺼둘까?”     


그때였다.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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