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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Sep 06. 2023

인사팀 없는 회사가 제일 나쁜 회사

남은 사람도 불태워버리는 퇴사율의 불꽃

팀원이 면담 신청을 하더니 요즘 너무 자괴감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사람이 여러 명 나갔고, 아직 충원은 더디고, 버티고 있는 인력들은 죽어 나가는 요즘이었다. 시기는 하필 1년 중 가장 중요한 타이밍이어서 위에서는 매출 압박과 챙겨야 할 미션을 잔뜩 던지는데 그걸 실행할 사람은 몇 명이나 줄었다. 아직 인수인계받고 있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친구도 요즘 표정이 안 좋다. 그래도 같이 힘내보자는 말을 하면서, 이 팀원의 기분이 내가 3년 동안 느껴왔던 불안과 막막함의 정체임을 깨달았다.


성희롱하는 상사가 있고 매일 회식을 하고 월급이 밀리는 회사만 나쁜 건 아니다. 인사팀 없는 회사가 가장 나쁘다. 인사팀이 없다는 건 인사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관리 체계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을 뽑고 살피는 데에 힘을 싣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쁜 사람이 있는 회사보다 나쁜 회사가 더 나쁘다.


퇴사자가 생겼을 때 제때 사람을 뽑지 못하는 건 생각보다 큰 문제다. 내 회사는 잡플래닛 평가도 나쁜 편이고 복지나 처우에 대한 불만으로 퇴사가 잦다. 그래도 내가 팀장을 맡은 뒤 우리 팀의 퇴사율은 현저히 떨어져서 1년 이상 근무자가 많다는 게 나의 조용한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은 간혹 나가고, 새로운 사업도 맡게 되며 사람을 뽑아야 할 때의 충원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인재풀도 협소하고 만족스럽지 않다. 지원자 중 어느 누구도 관련 경력이 없는 경우도 많고 연봉 협상에 실패해 뽑지 못한 면접 합격자도 많았다.


그렇게 팀의 빈자리는 오래 비어있게 된다. 업무는 남은 사람들이 쳐내면서 조그매지고 너덜해지다가 허술해지고 잊힌다. 남은 이들은 모두 지쳐가다가 점점 무감각해진다. 방향을 잃어버린 업무는 정상화하는 게 쉽지 않고 구하지 못한 인력의 자리까지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회사가 보기엔 사람이 없어도 은근 굴러가는 것 같으니 인건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참 구인을 하다가 간신히 적당한 인재를 발견해서 결재를 올리니 이 인력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라는 미션도 있었다.


이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 번아웃되지 않도록 케어하고, 빈자리를 채우는 빠르고 정확한 구인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복지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몇 번이나 건의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예전에 복지를 받아먹고도 배신하거나 그만둔 사람들이 괘씸해서였는데 무논리에는 통할 논리가 없다. 헤드헌터를 썼다가 수수료가 아까워 합격자를 탈락시킨 적도 있었는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역대급 회사생활 에피소드였다.


이번에 면담 신청한 팀원은 나간 사람들의 업무를 남아서 쳐내고 있는 입장이었는데 넓게 보는 눈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일 하는 능력도 떨어진 것 같고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 기분이 든다며, 후배들도 걱정되고 스스로에 대한 회의가 든다며. 거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일단 업무를 후배에게 임시적으로라도 넘기라는 말 뿐이었다. 그러지 않고 이 공백기를 버틸 방법은 없다. 업무와 역할을 제대로 정해서 일을 하기엔 구멍이 이미 너무 많다. 손에 잡히는 대로 본인이 대충 쳐내거나 누군가에게 쥐어주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난 그다음을 알고 있다. 간신히 사람이 들어와서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시기를 몇 달쯤 지나면 또 누군가가 퇴사를 할 것이다. 그럼 다시 이 사태가 반복되고 남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와 일에 대한 부담, 에너지의 소진을 경험하며 마음이 깎여나간다. 그렇게 점점 작아지는 역량을 느끼다가 어느 날 매일 하던 일조차 곱절의 힘을 들여야 함을 발견한다. 퇴사율이 높다는 것은 이렇게 회사와 구성원을 모두 망친다.


그래도 오늘의 면담 덕분에 이런 소모적인 과정을 거치면 누구나 같은 상황이 된다는 것에 씁쓸한 위안을 얻었다. 나는 내가 무르고 쉽게 지치는 사람인 것은 아닌지 걱정하던 차였다. 팀원에게 조금이라도 더 버닝되기 전에 나가는 것이 좋을 거라는 조언을 하기에 나는 좀 더 이기적이었다. 조금만 이 공백기를 버텨보자고 그를 위로하며, 내가 한 달 뒤에 나가기로 이미 회사에 얘기했다는 걸 알면 뭐라 할지 죄책감이 들었다. 한 달 뒤면 지금 당장의 인원 공백은 채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미 힘이 빠질 대로 빠진 면담 팀원이 다음 차례일지도 몰랐다. 그 과정을 더 이상 견딜 힘이 나에게 남아있지 않다. 그가 나간다고 할 때 붙잡을 말도 나는 갖고 있지 않았다.


이번 회사를 그만두며 블랙리스트에 ‘인사팀이 없는 회사’를 추가했다. 20대에 첫 회사를 그만두면서는 ‘연차 없는 회사’를 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고,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면서 ’가족 회사는 절대 안된다‘를 가훈으로 새겼다. 블랙리스트를 퇴사할 때 팀원들에게 쥐어주고 싶지만 부디 이 글을 읽기를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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