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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May 13. 2020

저 외근 있어요, 면접 좀 보고 올게요

절 찾지 마세요

이직을 확고하게 결심한 지 2주, 면접을 보러 가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없는 열정을 지어내야 한다는 거였어요. 이직하려는 사람은 현재 회사에서 행복한 상태는 아니잖아요? 뜨거운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업무를 하고 있을 턱이 없잖아요. 회사를 신뢰하며 다 함께 열심히 해보고 싶은 마음 같은 건, 당연히 없잖아요 지금. 그런데 지원자로서는 그런 마음을 꼭 보여줘야 하니 참 아이러니하더라고요. 좀비인데 화장으로 혈색을 꾸며낸 느낌이랄까요.


중소기업 이직 면접 자리에서는 경력자에게 많은 것을 묻지 않아요. 전 회사에서 퇴사하려는 이유, 어떤 업무를 어떻게 해왔는지, 사람들과 둥글둥글 잘 지낼 수 있을지가 가장 관건이죠. 첫 번째가 제일 중요한데 지금 다니는 회사를 욕해서도 안되고 이직 의지는 확실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해요. 적응 못해서 퇴사하고 싶은 걸로도, 미적지근 간 보는 걸로도 보이면 안 돼요. 사실 이건 정답이 없어요. 뭐든 답이 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모든 게 오답이에요. 퇴사하고 싶은 이유가 그 무엇이든 간에 꼬투리를 잡힐 수 있거든요.


Q. 지금 회사는 왜 그만두려 해요?

1. 상사와의 불화가 있어요 : 여기서도 불화가 생길 수 있는데 어떻게 버티려고? 사회성 안 좋은 거 아냐?

2. 야근이 많아서요 : 여기도 야근해야 할 때가 있는데? 매일 칼퇴하려는 꾀쟁이구만?

3. 제 열정을 회사가 뒷받침해주지 못합니다 : 꿈만 많은 친구구만? 현실감각이 없으면 안 되지 쯧쯧

4.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서요 : 그럼 여기서도 익숙해지면 떠나려고?


그래서 전 솔직함 대신 애정을 빙자하기로 마음먹었어요. 다른 곳은 몰라도 여기라서 옮기고 싶다고요. 이직을 원하는 게 아니라 이 회사를 원한다고요. 하지만 솔직히 제가 원한 건 그 무엇보다도 이직이었어요.


이외에도 곤란한 질문은 많아요. 거래처를 데려올 수 있냐,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할 사람을 찾고 있다 등등. 그럴 땐 빙의했다 생각하세요. 머리는 경력직으로 그대로 둔 채 마음만 신입으로 빙의하면 됩니다. 당장 다음 달 월급이 없다 상상해보세요. 같은 일을 하는데 돈을 두배로 받는 상상도 좋아요. 빙의가 좀 더 쉬워질 거예요.


그렇게 열정에 불을 지피다 보면 이직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 엄청 기쁘진 않아요. 어차피 일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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