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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May 27. 2020

처음듣는 얘기지만 죄송합니다

이직 한달째 사과의 달인

새로운 회사에 들어온 뒤 한 달, 가장 많이 한 말은 '죄송합니다'와 '깜빡했어요'예요. 같은 시기에 이직한 동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둘 다 사과만 종일 하다가 하루가 간 경우도 있었죠. 어디서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적은 없는데, 입사 후 1-2주쯤 되면 어느 정도 업무가 정리되곤 했는데, 여긴 대체 왜 이럴까. 한 달 내내 한 시간 이상 야근을 했고 과반수 이상은 12시간씩 일했어요. 이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바빴고 그래서 더 많은 실수를 했죠. 솔직히 좀 억울하기도 했어요. 대체 인간이 이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하라는 말이야?


오늘도 12시간 30분 동안의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며 진지하게 '때려치울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오늘 하루만 해도 '왜 이걸 확인 안 했어요?', '왜 아직도 파일을 안 줘요?' 등등 수많은 질타를 받았죠. 이젠 좀 무뎌지기도 했어요. 누가 나를 나무라면 아 예- 죄송합니다- 하고 무감정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네요.


사과는 이직자의 덕목과도 같은 걸지도 몰라요. 너무 잘하려 노력하고, 절대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 노력하다가는 댕강 부러지기 쉬우니까요. 사고도 차라리 초반에 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면 맘이 잠시 편해졌어요.


무엇보다도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들면 동시에 '기왕 그만둘 거면 편한 맘으로 좀 더 다녀볼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게 어깨에 힘을 빼고 출근했다가 산더미 같은 일에 다시 돌덩이처럼 열두 시간 일을 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한 달이 지났네요. 기왕 그만둘 거라면 욕심을 좀 버리고 월급이라도 벌어보자, 그런 생각으로 버티고 있어요.


대부분 회사의 수습기간은 3개월이죠. 그 기간 동안은 회사가 새로운 직원을 아직 배우는 단계로 인식하겠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현실에선 3개월은 무슨, 당장 3일 만에 모든 일을 다 해내길 바라요. 경력직은 더하고요.


수습기간이라는 건 회사에게도 필요하지만, 일하는 사람에게도 의미 있는 시간이에요. 내가 결정한 회사를 살펴보고, 감을 잡아가는 시간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수습기간이니까 괜찮다는 자기 위안이 가능하잖아요. 수습이니까 당연히 잘 모르고, 사고도 치는 거겠죠.


그렇게 버티다 보니, 한 달이 딱 지나고 나니 갑자기 숨이 좀 쉬어지네요. 아직 행복하진 않지만 숨은 쉴 수 있게 된 기분. 여전히 제 앞엔 수많은 사과가 기다리고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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