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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Dec 02. 2021

왜 결혼 안 하냐는 그 질문, 무지개 반사

문답이 필요한 인생관

30대가 되면서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면 자동 완성되는 대화가 있다.


“결혼은 안 해요?”

“아, 전 비혼주의자라서요.”

“어머, 남자친구도 알아요?”

“네. 처음부터 얘기했어요^^”

“아니 근데 왜 결혼을 안 하고 싶어요?”

“제 생각에 결혼은…”


이 대화는 10대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었고 30살 평생 내내 대답해온 인생의 질문이나 다름없다.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해오다가 최근 문득, 이 질문 자체가 좀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20년이 지나도 똑같이 반복되는 질문이라니.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되는 인생의 문답이 고작 이런 거라니.


초등학생부터 비혼주의였던 사람으로서 나도 기혼자들에게 묻고 싶다. “왜 결혼을 하고 싶어요?” “결혼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나요?” “그 추구하는 것이 반드시 결혼을 해야 충족된다고 생각하나요?” 실제로 주변의 기혼자들에게 술자리 배틀처럼 토론을 신청하던 시기도 있었다. 매번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하고 거의 비슷한 이야기들만 반복하다가 그만두었지만.

지금까지 이야기를 나눴던 결혼한 사람들의 답변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왜 결혼을 하고 싶은지? : 안정감을 갖고 싶어서 / 연애가 지겨워서 / 할 때가 되어서 / 상대가 좋아서 / 상대가 하자고 해서

결혼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는지? : 평생 내 편이 되어줄 사람 / 연애의 종결 / 안정감

그건 오직 결혼으로만 가능한 걸까? : 아마도?


하지만 이건 대답을 해준 한 두명의 이야기이고 10명에게 물었을 때 8명은 똑같이 대답한다. “생각해본 적 없는데.” 결혼에 대해서는 ‘왜’라는 질문이 아예 없다시피 하기에 한 번도 왜 결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와 결혼은 당연히 하는 걸로 생각했고 시기는 지금쯤으로 여겨왔기에 하게 됐다는 사람이, 기혼자의 90% 일 것이다. 왜 결혼을 하냐는 질문을 평생 받아보지 못한 사람 역시 90%가 넘을 것이라고, 치킨 한 마리를 두고 장담할 수 있다.


통념적인 삶이란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굉장히 중요하다. 아직까지도 삶의 형태에 있어서는 적당한 나이에 적절한 수순으로 사는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생각하니까. 그런 삶에는 질문이 없다. 타인이 던지는 질문도 없지만 본인이 스스로에게 묻는 과정도 없다.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할 때 이 선택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왜 하고 싶은지, 하고 싶은 게 맞는지 정도는 생각하게 마련인데도. 취업, 연애, 결혼처럼 사회에서 당연시되는 선택지에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인 걸까?


대신 그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질문 폭탄을 던지기로 다 같이 약속한 것 같다. ‘왜 연애를 안 해?’ ‘왜 결혼을 안 해?’ ‘왜 애를 안 가져?’ ‘왜 옷을 그렇게 이상하게 입어?’ ‘왜 채식해?’ ‘왜 동성을 좋아해?’ ‘왜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 왜 묻는지도 모른 채 투척하는 이 수많은 ‘왜’라는 질문들은, 답을 들어도 끝나지 않는다. 이유가 궁금해서 ‘왜’를 묻는 게 아니기 때문. 상대가 자신과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이상한지 확인하고 싶어서 묻는 질문이다. 교묘한 비꼼, 대놓고 하는 비웃음,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조언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아직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해서 그럴 거야’. ‘그런 애가 가장 먼저 결혼하더라?’ ‘내 주변에 결혼 안 한 사람들은 다 불행하던데.’ ‘늙어서 외로워서 어떡해ㅠㅠ’ ‘그럼 연애는 왜 하니?’ 이 조언들도 질문만큼 지겨운 건 마찬가지다.


사람의 외로움은 결혼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의 외로움은 튼튼한 자존감과 연애로 충분히 채울 수 있다. 혼자 사는 것도 너무 좋고 언젠가 동거인이 필요하다면 반려동물을 데려오고 싶다. 남자친구와 동거를 할 수도 있겠지. 집에 누군가를 들여서 물리적인 외로움을 충족하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다는 게 나에겐 이해되지 않는 선택지다. 결혼으로 상대가 영원히 내 것이 된다는 믿음도 괴상하다. 사람의 마음과 인생이 서류의 도장으로 결정되지 않는데 왜 결혼은 확신이 되는 걸까? 헤어지기 힘들도록 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일 뿐 결혼은 사랑과 미래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해주지 않는다.

나에게 결혼이라는 제도는 오직 두 가지, 법적 보호자로서의 의미와 서로를 묶어두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작용한다. 그 외에 결혼이 필요한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 두 가지 결혼의 의미는 나에게는 필요 없는 것들이다. 아직은 가족들이 법적 보호자로 건재하고, 애정 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묶어두는 연애가 더 사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나에게 효용가치가 없는 낡은 장치다. 이게 내가 비혼을 결심한 이유다.


질문을 던지고 대답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꼭 필요한 대화 요소들이다. 다만 대답을 들어도 귓등으로 흘릴 생각이라면, 질문 자체가 서로 간의 벽을 세우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 편이 낫다. 평생 비혼의 이유에 대해 질문받아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앞으로도 몇십 년은 계속 그 질문에 답변해야 할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정말 궁금한 게 아니라면 왜 결혼하지 않냐고 묻지 말자. 그 질문을 할 시간에 왜 당신은 결혼하고 싶은지부터 한번 되물어보자. 거기서부터 우리의 진짜 재밌는 대화가 시작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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