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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 Feb 21. 2023

종로 귀금속 상가에서 보석 반지 구입하기_1탄

생애 처음 귀금속 구입하며 배운 것들

서울에서 15년 이상을 혼자 살아도, 여전히 가보기 두려운 곳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종로 귀금속 상가. 결혼 예물 같은 삐까뻔쩍한 귀금속만 취급할 것 같고, 한번 가면 돈 천만 원은 가뿐히 써야 손님으로 인정받을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평소 패션 주얼리를 좋아하지만 대부분 실버 주얼리였고, 비싸봤자 10만 원대의 18K 목걸이 정도를 착용해 왔던지라 종로까지 가서 발품 팔아 살 일도 없었다. 하지만 역시 30대가 되니, 친구들이 슬슬 비싼 주얼리를 구입할 일이 생기더라. 오랜 친구가 다이아 박힌 주얼리를 구입한다고 해서 같이 종로에 방문했는데 이런 신세계가 있었다니? 여기서 알바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 재밌는 공간인 것!


대놓고 팔진 않진 않지만, 저는 안 살거지만,
명품 카피도 팔아요

정품은 300만 원 하는 FRED 브랜드의 포스텐 윈치 링, 종로에서는 그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 가능하다. 어떻게? 스윽 물어봐서. 전화로 문의하면 미리 가격을 알려주기도 하고 직접 가서 OO 구입 가능하냐고 물어보면 상품을 스윽 꺼내준다. 가격은 업체마다 조금씩 다른데 몇 군데에 물어보면 대략 시세를 알 수 있더라. 그 브랜드의 상품명을 검색하면 종로 귀금속 업체에서 올린 판매글까지도 나온다. 즉 공공연한 비밀인 것. 소재도 명품은 스틸 소재인걸 종로에서는 화이트골드로 바꾸는 등 업그레이드도 가능하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가격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명품 정품을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그 높은 가격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카피 제품을 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워낙 가격 차이가 있다 보니 주얼리 카피 시장이 꽤 종로에서 크게 형성되어 있는 것 같더라. 카피 상품 판매는 개인 윤리의 문제를 떠나 당연히 불법인 점을 기억하자. 그러나 구경하는 사람으로서 흥미진진한 현상인 건 분명했다.



이곳의 거래는 무조건 현금가 기준.
이체도 안되니 돈뭉치로 준비하기

카드 결제라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세상이었다. 동대문은 그래도 10% 부가세를 더 내면 카드로 결제한다는 옵션이 있는데, 여기는 금액 단위가 커서 그런지 그냥 무조건 현금가 기준이다. 카드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볼 분위기가 아니다.


현금이라도 나는 당연히 길거리 계란빵 사듯 계좌이체할 생각으로 갔는데 이체는 카드결제와 똑같다고 해서 또 한 번 신기했다. 역시 금액이 커서 이체하면 기록이 남아서일까? 무조건 돈을 현금으로 뽑아와야 한다. 게다가 요즘은 100만 원 이상을 이체하면 지연출금제도라고 해서 30분 동안 돈을 못 뽑는다.. 출금할 카드도 안 들고 가서 친구에게 이체하고 출금을 부탁하려 했다가 30분을 카페에서 기다려야 했다. 이런 걸 생전 해봤어야지.



생각보다 호객이 심하지 않다.
부담 없이 쇼핑 가능

종로 귀금속 상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구경이 수월한 곳이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공간이 재미있었는데, 상상했던 부담스러운 상황은 거의 발생하지 않으면서 생전 처음 보는 고가의 반짝거리는 물품을 구경할 수 있는 것. 물론 '뭐 보러 왔어요?' '일단 와봐 보여줄게' 이런 정도로는 계속 말을 걸긴 하는데 쪼렙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착용만 해봐도 괜찮다.
전혀 살 생각 없는 가격&아이템도
껴보기 가능

생각보다 제품을 착용해 보는 것에 대해서도 아주 관대했다. 매대에서 상품을 꺼내 껴보게 하는 것이 귀찮을 법도 한데, 30대 여성이 절대 사지 않을&살 수도 없을 고가의 아이템도 껴보고 싶다고 하면 흔쾌히 꺼내준다. 다이아 같은 건 구매할 수 있다 쳐도 무지개색 보석이 10개쯤 박힌, 인피니티스톤 모음집 같은 반지는 누가 봐도 호기심에 껴보겠다 하는 게 분명한데도 웃으며 내줬다. 모든 상인들에겐 '우리 반지 예쁘지?' 하는 뿌듯함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아 귀엽기도 했다. 껴보기만 하고 '둘러보고 올게요' 해도 그리 아쉬움 없이 쿨하게 넹- 하신다. 구매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다시 오라며 명함을 건네는 정도.


그런데 그렇게 재미 삼아 이것저것 껴보다 보니 정말 뜬금없이 사고 싶은 게 생기기도 했다. 어쩌면 이건 귀여울 것이 아니라 견물생심을 활용한 고도의 상술일지도 모른다! 자고로 보석이라는 것은 사람을 현혹하도록 생겨먹은 것이고, 그걸 한번 손가락에 착용해 보면 일단 그 반짝임과 색깔에 매료되기 마련. 그렇게 전혀 뭔가를 살 생각이 없던 내가 종로에서 고가의 옥반지를 사게 되었지. 어쩌면 종로의 상인들은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지나가는 손님에게 일단 손가락에 뭔가를 끼워보게 만들면 분명 사고 싶은 마음이 샘솟게 된다는 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세와 물정 파악은 필수

특정한 디자인의 금 제품을 구매한 친구와, 막연히 예쁜 옥반지를 구매한 나, 둘 다 들러본 가게마다 시세는 정말 천차만별로 달랐다. 가격도 다르고 각 업체에서 주장하는 장점도 달랐다. 단순한 금반지이거나 특정한 디자인이 있는 금 제품이라면 가격만으로 비교해서 구매하면 될 것이다. 디자인부터 고를 생각이거나, 나처럼 보석 원석 제품을 구입할 경우는 발품을 팔아 금액과 품질을 비교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보석은 합성석인지 천연인지, 원산지가 어디인지, 등급이 무엇인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랐다. 나는 게다가 지금은 비인기 보석인 비취를 사겠다고 맘먹은지라 구매가 더 어려웠다.




친구는 이미 전화로 여러 업체에 견적을 문의한 상태라 거의 구매할 곳을 맘에 정하고 가서 바로 구입했는데, 정작 그 과정에서 비취반지의 존재에 홀려버린 나는 그다음 날 거의 반나절을 돌아다녀서 간신히 반지를 구매했다. 금 제품과 보석은 또 다른 세계라는 생각이 들었고, 둘 다 너무 재밌는 구매 과정이었다. 내 비취반지 구매기는 2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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