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떼굴 Mar 14. 2024

인정받지 못한 병

우울증의  시작

 

아이 없이 혼자된 언니는 외로웠고 외로움은 통증이 되었다. 독거의 외로움을 잊기 위해 정신 팔 곳이 필요했다. 언니가 찾은 길은 소비였다. 물건값을 지불할 때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언니의 새벽에 일어나 설거지나 청소 등 허드레 일로 돈을 벌었다. 다이소는 언니의 쉼터였다. 체력을 갈아 넣은 대가로 번 작은 돈이 그곳에서 외로움을 소비하는 용도로 쓰였다. 언니는 쓰지도 않을, 한 번 쓰고 버릴 물건을 충동적으로 사들였다. 소박한 소비가 모여 방탕이 되었다. 물건이 집안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언니의 방탕을 걱정했다. 그러나 언니의 소비가 외로움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우리 중 누구도 외로움이 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알려하지 않았다.


소비가 자주 언니의 수입을 넘었고 나름 과소비로 분류될 해당행위에는 크고 작은 돈 사고가 뒤따랐다. 사고를 해결하는 과정에 엄마가 끌려 들어갔다. 안 그래도 언니가 미웠던 엄마는 눈을 바로 뜨지 않았다. 그즈음 엄마는 곁에 누가 있거나 말거나를 상관하지 않고 혀를 끌끌 찼다. 혀를 끌끌 차는 그 무렵 언니는 엄마 집에서 자고 가는 날이 많았다. 카드사 직원이 언니의 행방을 쫓아 엄마 집까지 찾아왔다. 그 바람에, 엄마가 언니의 카드 빚을 대신 갚게 된 것이다. 엄마는 확성기를 틀어 다른 자식들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엄마는 그렇게 아픈 손가락을 품는 대신 공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언니의 이상행동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스스로 멈출 수 없는 소비 전차에 올라탄 모습이었다. 집안을 쓰레기더미로 채운 언니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심지어 돈 버는 일이 제일 쉽다고 큰 소리를 쳤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언니는 돈을 많이 벌어 자신을 무시하는 엄마와 형제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마침 거주 중인 집의 전세 기간이 만료되고 있었다. 언니는 전세금을 빼 신축 빌라 두 채와 상가 두 곳을 계약했다. 액수가 크지 않지만 전세금은 언니의 전 재산이었다.


하필이면 그때 언니 기분이 상승세였다. 그날 언니는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를 봤다고 했다. 뜻한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 드디어 자신의 세상이 오고 있다고 생각한 언니는 한시가 급했다. 한 살이라도 더 늙기 전에 임대업과 장사를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빌라 건축주는 영악한 노인이었다. 그는 언니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사고가 터지고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하러 찾아갔을 때 그는 계약금을 돌려주겠다고 나를 안심시켰었다. 그러나 그건 소송을 피하기 위한 그의 작전이었다. 언니는 차일피일 상황을 미뤄 시간을 번 노인의 뜻대로 전셋집마저 잃게 되었다.


집을 잃고 언니는 말을 잃었다. 잃은 건지 끊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이웃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언니의 거처는 형편없었다. 그곳에서 언니는 가족을 외면했다. 얼굴빛은 계약사고를 칠 때와 정 반대였다. 세상을 다 가진 사람의 거리낌 없던 모습은 오간데 없고 주인에게 버림받아 겁먹은 강아지처럼 애처로워 보였다. 언니의 끈질긴 외면에 우리는 몇 번이고 되돌아섰다. 그렇게 10분, 그러다 1시간, 언니 곁에 머무는 시간을 천천히 늘려 나갔다. 그 소식을 들은 엄마가 따라나섰다. 엄마를 마주한 언니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관자놀이에선 금방이라도 터질 듯 시퍼런 핏대가 솟았다. 발작 같은 화는 의식을 잃을 것처럼 위태로웠다. 결국 엄마는 돌아서야만 했다.


우리 세 자매가 교대로 언니를 보살폈다. 나는 내가 못 보는 사이 언니가 이상한 마음을 먹을까 봐 너무 겁이 났다. 생각이 겁에 미칠 때마다 나는 언니에게 달려갔다. 내 생업도 엉망이었으나 그걸 따질 겨를이 아니었다. 어쩌면 언니를 살리러 달리는 그 길이 내게 더 큰 의미라고 스스로를 위로한 건 지도 몰랐다. 그렇게 수년 같은 수개월의 시간이 흘러 언니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날도 가게 문을 닫고 언니에게 가는 길이었다. 마음이 콩닥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려 진정이 되지 않았다. 언니의 임시 거처엔 언니가 없었다. 여기저기 찾아다니다 근처 카페에서 발견한 언니는 넋이 나가 세상 근심이 사라진 표정이었다. 언니를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그 지경에 놓인 언니가 절절히 이해되었고 찢어질 듯 마음이 아팠다. 그러지 말아 언니, 언니가 죽을까 봐 나 무서워. 꺽꺽 대며 통곡하는 날 보며 언니가 표정 없이 말했다. 울지 마.


그게 시작이었다. 다시 말을 시작한 언니는 마치 신이 된 것처럼 거짓과 위선을 정확히 구별해 반응했다. 벼랑 끝에 서면 그게 환히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언니를 대할 때 더 순수한 마음이 되려고 노력했다. 나를 보듯 언니를 보자 언니의 아픔이 선명하게 느껴졌고 내가 듣고 싶은 말로 언니를 위로하니 굳게 닫혔던 언니의 마음 빗장이 풀렸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나는 언니를 통해 온전히 이해한다는 의미를 새로 알았다. 자기 관점을 배제하고 오직 상대방이 되는 것, 그게 역지사지다. 진정한 이해는 그 사람으로 빙의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깊은 체득이었다.


그때는 내가 언니 마음을 제대로 알아봐 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하니 봐준 건 내가 아니라 언니라는 새로운 사실도 깨닫는다. 역류하지 못하는 물처럼 내가 아니라 언니가 동생인 나를 봐준 거다. 언니에겐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언니는 나를 통해 우리에게 오고 싶었을 것이다.   


살면서 언니가 나를 봐준 일은 셀 수 없이 많다. 힘들지. 이거 보태. 정부에서 코로나 지침으로 영업 정지를 내렸을 때 나를 찾아온 언니는 백만 원을 내밀었다. 언니의 전 재산과 다름없을 백만 원. 형제들이 건넨 돈을 쓰지 않고 모아 내게 준 천금 같은 마음.


언니가 건넨 돈은 밑 빠진 독을 막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 돈의 가치를 아는 나는 언니 앞에서 또 한 번 펑펑 울고 말았다. 반가움과 고마움이 교차된 서러운 눈물이었다. 그런 행동을 보이는 언니가 정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게 반가웠고 내 생업을 걱정해 주는 언니 마음이 고마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실제로 위협받고 있는 내 생업이 서러웠다. 언니는 이제 주체할 수 없이 뻗치는 힘으로 일을 벌이지도 않았고 말문을 꽉 닫고 잠만 자면서 벙어리처럼 살지도 않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허리를 삐끗해 자리 보존했을 때도 셋째 언니는 내 수발을 들었다. 괜찮아 치우면 돼. 걱정 말고 싸. 언니는 용변을 참고 있는 내 엉덩이 밑에 기저귀를 대주며 말했다. 멀쩡한 정신으로 요양병원에 있으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던 사건 앞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그 순간 나는 곁에서 나를 봐주는 언니가 누구보다 편했다.


 

이전 07화 없는 걸 달라는 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