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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굴 Mar 07. 2024

없는 걸 달라는 언니

사랑이 필요해

나는 결혼 후 일 년 만에 첫 째를 낳았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다는 건 신기하면서 힘이 든 시소 놀이 같았다. 천사를 낳았다는 착각은 비현실적인 기분이었고 그 천사가 내 몸을 송두리째 구속할 수 있다는 사실은 위로 올라간 시소에서 갑자기 퍽 하고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제일 힘든 건 잠이었다. 유독 잠이 많은 나는 한 시간만 부족해도 헤롱거릴 때였다. 밀린 일이야 또 미루면 되지만 쏟아지는 잠은 어떤 비밀도 실토할 만큼 정신을 흐리게 만들었다. 잠 부족으로 몸무게가 인생 최저치를 기록했다. 체력도 떨어져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직접적인 육아 외에 다른 살림은 대충 넘길 수밖에 없었다. 2시간을 내리 자면 소원이 없을 것 같던 시절이었다.

그때 결혼 전 다니던 직장에서 호출이 왔다. 귀가 번쩍 뜨이는 호출이었다. 나는 시부모와 한 동네에 살았다. 남편과 준하는 월급도 탐나고 감시 없는 감옥도 탈출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이한테 묶인 족쇄를 풀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할 찬스였다. 나는 셋째 언니를 찾아갔다.


힘들기는 뭐가 힘들어. 이런 순둥이는 열명도 키우겠다. 언니는 내 아이를 사랑했다. 나를 대신해 알뜰살뜰 보살핀 아기의 포동한 살에선 부숭부숭한 냄새가 났다. 길에서 마주친 누구나 뒤 돌아보게 하는 뽀얀 박꽃으로 매일 새롭게 피어나던 아기.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이 나보다 훨씬 더 어울렸던 셋째 언니.


독박 육아 탈출과 사회로부터 도태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은 2년 만에 끝이 났다. 늦은 퇴근을 이유로 니 월급 내가 줄 테니 아이나 잘 키우라는 시아버지의 명령 때문이었다. 우리의 2년은 워킹 맘에 취했던 나의 자유로움과 나를 대리했던 셋째 언니가 엄마를 경험했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언니의 결혼은 나 보다 3년이나 빠른데도 아이는 없었다. 기다리던 아기는 안 생기고 주변의 재촉은 언니를 향하자 언니의 조급함이 스트레스로 변질됐다. 원인은 형부였다. 형부는 부부의 연을 맺기 전에 미리 밝혀야 할 사실을 언니와 공유하지 않았다. 절을 찾아 치성을 드리고 용하다는 점쟁이에게 닫기 위해 지방을 헤멜 때야 형부는 비로소 중요한 사실을 털어놨다. 자신이 무정자라고.


형부의 고백을 들었을 때 언니의 서러움을 곁에서 보았다. 가족들은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울다가 삶의 의지를 놓친 사람처럼 침묵하는 언니를 누구도 제대로 위로할 수 없었다. 언니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언니가 드디어 일어났다. 하지만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오랜 시간 자기 안의 실체와 싸우던 언니가 찾은 결론은 입양이었다. 그런데 형부가 동의하지 않았다. 끝까지 책임 질 자신이 없다는 이유였다. 


언니에게 간절한 건 아이였다. 형부의 따뜻한 위로와 포옹이었다. 그러나 형부의 감성은 이성을 넘어서지 못했다. 언니는 형부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남의 시선에선 미래의 변수까지 걱정한 형부 판단이 더 현명한 건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언니의 간절함이 남편에 의해 두 번  밟힌 것이다.  


그 뒤부터 언니는 그야말로 제 맘대로 살았다. 꽃집을 하겠다고 우겨 일 년 만에 망해 먹었고 대청마루 딸린 시골집에서 살고 싶다며 아파트를 팔았다. 오늘만 살 것 같은 언니의 행보에 가족들이 또다시 숨을 죽였다. 행여 걱정을 입에 올리면, 물려줄 자식도 없는데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사는 게 뭐가 어때서?라고 받아치는 통에 모두는 입을 닫아야 했다. 다만 형부만 그 상황을 거역 없이 따랐다. 친정 식구들은 형부의 아픔도 동정했다. 겉으로만 보면 과장스러운 건 언니였고 형부는 대가를 치르는 모습이었다.


언니의 태도는 점점 더 과감하고 용감해졌다. 주량도 세지고 성격도 드세진 언니, 언니는 형부의 원죄를 사랑으로 받길 원했던 것 같다. 가슴으로 느껴지는 사랑을 요구하고 그걸로 부족하다 떼를 썼으며 시도 때도 없이 확인하고 시험했다. 아이를 빌미로 언니의 과한 시험은 형부의 자격지심을 흔들었다. 둘 사이에 틈이 생겼고 극복하지 못한 둘은 이혼했다. 언니는 잡아 달라는 요구였고 형부는 떼 내려는 요구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골 깊은 부부의 다른 해석은 각자에게 정당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정당해 보이지 않았다. 둘의 이혼은 애정이 식은 게 아니라 감정이 지친 결과로 보기 때문이다. 형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언니는 분명, 형부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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