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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굴 Feb 22. 2024

역시 울 엄마

엄마는 건재하다.

아무 데나 가서 대충 먹지 뭘 이렇게 멀리 가.

어둠을 가르는 내 뒤통수에  말 화살이 꽂혔다. 점심에 들어간 식당에서는 주인이 요구하는 조건을 과하게 넘겨 호기롭게 주문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건 수많은 포스팅에 사실과 다르네요라는 댓글을 달고 싶을 만큼 실망스러운 밥상이었다. 관광지를 대하는 일관된 습성처럼 식사 한끼로 여행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도 선심 쓰듯 조용히 실망스러운 감정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엄마는 대충 먹자는 말로 점심식사가 별로였다고 돌려 깎는 중이다. 좋은 시작을 알리려던 시도가 어긋나 내 기분도  영 깨끗하지 않았다. 그래서 만회할 저녁밥을 위해 긴장하며 달리는 중이었다. 내 기분을 정확히 짚은 영리한 엄마가 신경 쓰였다.


내 엄마는 불만을 감추지 않고 즉시에 표시하는 사람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표시를 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엄마의 재촉을 들으니 조급함이 밀려왔다. 불만을 만회할 식사가 한 끼뿐이라는 사실이 주는 조급 함이다. 메뉴는 쏘가리 매운탕이다. 민물 매운탕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한 메뉴였고 혹여 점심 메뉴가 실패를 대비한 계획이었다. 그만큼 실패할 확률은 낮았다. 이마저 실패한다면 엄마는 이번 여행 후일담을 두고두고 별로였어라고 회상하실 게 분명하다.  


여긴 우리 큰 딸, 여긴 큰 손주. 식사를 마친 엄마가 매운탕 집 여사장을 붙들고 난데없는 가족 소개를 하고 있다. 얘들이 엄마 바람 쐬준다고 해서 나왔어요. 이 집 매운탕이 아주 맛있네. 맛나게 끓여 주셔서 잘 먹었어요. 고맙습니다.


맛이 없을 거 같아. 식당으로 이동하는 삼십여분이 지나는 짧은 시간에도 엄마는 운전하는 나 들으라는 듯, 너를 배려해서 옆에 앉은 큰 언니만 듣게 말하는 거야 를 표시 내며 귓속말처럼 나지막이, 도착 직전까지 몇 차례에 걸쳐 내 기분에 초를 쳤었다. 그랬던 엄마가 매운탕집주인을 붙잡고 말 사례를 한다. 엄마는 불필요한 정보에 싫증난 주인이 행여 주방으로 들어가 버릴 까봐 조바심까지 내고 있다. 우리가 보낸 시간을 급히 설명하느라 쉼표 없이 말을 잇는다. 그런 엄마를 지켜보던 나는 눈이 마주친 큰 언니와 어이없는 웃음을 나눴다. 여행의 고마움을 동행해 준 자식이 아닌 처음 본 매운탕 여사장에게 표하는 엄마였지만 그럼에도 매운탕을 좋아하실 거라는 예상이 맞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여행의 기본기는 맛집과 날씨다. 그다음이 구성원.


막내 힘들어서 어떡해. 저녁식사로 기분을 회복한 엄마 눈에 그제야 내가 들어온 모양이다. 하나도 안 힘들어, 엄마 기분만 좋다면 이까짓 운전쯤이야 얼마든지 하지. 엄마는 어둠이 깔린 고속도로에서 몇 번이고 내 걱정을 했다.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걱정을 섞은 관심이 마치 늦은 보답이라고 확신한 듯 휴무에 쉬지도 못하고, 밤 운전이 얼마나 힘들겠냐. 등의 이유를 붙여 치하에 최선을 다했다.


엄마 나는 요새 너무 깜박거려. 치매 아닐까 겁난다니까. 치매. 생각만 해도 무섭다. 우리는 제발 치매만은 걸리지 말아야 해. 그럴 게 아니라 말 나온 김에 다 같이 치매검사나 받으러 갈까요? 왜 치매는 나이와 상관없이 온다 잖아.


엄마의 가볍고 반복젓인 관심이 부담스러운 내가 화재를 돌렸다. 치매 여행이었고 엄마를 향한 발견이든 셋째 언니의 오해를 벗기든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타이밍이 필요했다. 이야기를 꺼낸 건 화장실 가고 싶다는 셋째 언니 요청으로 휴게소에 잠시 멈췄을 때였다. 셋째 언니는 아직 의심을 풀지 않은 눈치다. 언니 앞에서 이야길 꺼내면 보자기 묶듯 지레 치매로 결론을 묶을 것 같아 화장실 가고 없을 때를 맞춘 거다.


치매라는 단어를 직접 들은 엄마 기분을 살폈다. 이 역시 관찰 포인트 중 하나다. 치매가 아니라고 짐작되지만 완전히 확신할 순 없었기에 단어를 직접 듣는 엄마 마음이 어떠려나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밑자락을 깔았다.


 내가 넌지시 말을 꺼냈고 노련한 큰 언니가 치매 검사받아 본 적 있냐며 자연스럽게 내 말을 이어받았다.

.

치매검사 많이 해 봤지. 해마다 복지관으로 사람들이 와서 검사해 줘. 난 매년 정상으로 나와. 그러면서 엄마는 치매 진단 검사 문제 유형을 줄줄이 꿰었다. 그리고 말미에는 검사 때 보니 복지관 노인들 대부분이 어리바리하더라는 험담도 빼놓지 않았다.


아닌 거 같아.

생생하게 살아있는 자뻑도 불만을 참지 않는 배설도 여전히 건재한 엄마와 보낸 하루. 큰 언니와 나는 엄마가 치매에 걸린 게 아니라는 쪽으로 완전한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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