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여행

이라 쓰고 엄마와 함께라고 읽는다.

by 떼굴


우리가 예산에 도착 한 시간은 점심 무렵이었다. 그 사이 흐렸던 날씨는 부슬비로 바뀌었다. 비가 동선을 방해할 정도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날씨보다 성가신 건 맛집 정보가 없다는 거였다. 네이버를 검색하니 가까운 곳에 한우거리가 있었다. 식당이 모여있는 한우거리는 마치 간판 전시장처럼 보였다. 디자인을 고민하지 않은 간판들이 누웠거나 선 채로 전시된 거리. 거대한 크기의 직사각형 안에 원조라던가 최상 한우라던가 하는 문구가 호객행위의 최종 목적을 대변했다. 지방 관광지의 획일화 된 속성은 더 튀기 위해서라면 어떤 촌스러움도 차용한다는 데 있다. 리뷰를 믿지 않지만 리뷰가 제일 많은 집으로 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루틴에 합류해야 하는 건 관광지가 바라는 노림 수일 것이다.


엄마 여기 서 봐. 이뻐 이뻐, 세상에서 젤 이쁜 울 엄마. 내가 사랑하는 우리 엄마.


수덕사 경내를 돌며 곳곳에 엄마를 세웠다. 벚꽃과 철쭉이 흐드러진 꽃속에 엄마를 끼워넣고 수령 몇 백 년을 자랑하는 소나무 아래도 세우고, 비비드한 연등을 배경으로 열심히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어디서든 초점은 엄마였다. 엄마가 떠나고 없는 가깝거나 먼 날을 떠 올렸다. 내가 누른 버튼은 회상에 선명한 기억을 얻혀줄 아련한 동작이었다.


카메라를 셀카모드로 바꾸고 엄마와 한 화면에 들어갔다.

다 같이 오니까 좋지? 그럼 좋지, 좋고 말고. 내가 묻고 엄마가 답했다.



밑으로 남동생 둘이 있지만 엄마는 언제나 나를 막내딸이라 부른다. 엄마의 기준을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막내딸인 나는 막내의 전매를 애교라 생각한다. 친정 식구들이 모일 때면 나는 내 나름의 기준을 정한다. 위로가 필요하거나 그날의 주인공에게 집중적으로 야시랑을 떤다. 엄마는 내 야시랑을 싹싹하다며 좋아하셨다. 가끔 야시랑이 내키지 않을 때도 있지만 상대의 기분이 배시시 해진다면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집을 나선 지 한참인데 치매로 보일만한 특이점이 발견할 수가 없다. 내 기분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우리들은 수덕사를 나와 예당 저수지 둘레길을 걸었다. 드론 샷이면 그림일 텐데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비에 젖은 데크길은 그만큼 낭만적이었다. 호숫물이 발 밑에서 백색 소음처럼 찰방 대고 상기된 얼굴 위로는 물바람이 기분 좋게 지나간다. 버드나무가 물속을 버티고 곁에서 갈대류 식물들이 운치를 더하는 길. 이 길이 치매여행이라니 말도 안 된다.



어머 어머 어머, 여기 봐 봐 엄마.

치매 따윈 쉽게 잊게 만든 풍경 앞에서 습관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엔간히 좀 해라~. 셋째 언니가 내 호들갑에 제동을 걸었다. 맨날 가게에 틀어 박혀 있다 밖에 나오니 좋아 그러지 뭐냐. 엄마가 내 편을 들 때 나는 반사적으로 언니를 돌아봤다. 언니 입술이 샐쭉했다.


여우 같은 년. 셋째 언니 성격은 뚱한 편이다. 그래서 자신과 대조적인 내 야시랑이 늘 불만이었다. 언니가 불만을 보일 때마다 나는 언니 말을 돼 받는다. 그럼 앞으로 언니한테는 특별히 야시랑 빼고 뚱하게 말할게. 얄미운 말로 언니를 이겨 먹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마 언니는 모를 거다. 야시랑에도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쓰이는지, 고점처럼 보이기 위한 야시랑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나면 얼마나 많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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