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팔한 나이에

치매라니요

by 떼굴


여행 당일이었다. 4월 첫째 주 화요일 아침은 날이 흐렸다. 겨울 한기는 곳곳에 남아 대기를 맴돌았다. 주차장에 도착해 전화하니 셋째 언니가 엄마를 데리고 내려왔다. 언니는 어젯밤에 엄마와 함께 잤다고 했다. 엄마를 향한 언니 걱정이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애정의 다른 표현이지만 정확히는 애정결핍에 의한 행동이다. 언니는 준 만큼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준 만큼 회수가 되지 않자 걱정을 추가했다. 나아가 걱정을 본인 선에서 멈추지 않고 형제들에게 전달한다. 부풀려진 언니의 판단은 이미 정답으로 규정된 뒤여서 토가 달리면 불같이 화를 냈다.


아버지가 그립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리움이 된 건 오래된 일이 아니다. 어느 나이에 이르면 모든 것이 아쉽다. 원망이 희석된 자리엔 아쉬움이 서운함이 가득했던 자리엔 미안함이 들어앉게 된다.


노모를 둔 자식들도 이미 노인이 되었다. 엄마 걱정은 셋째 언니만 하지 않는다. 본인 관점을 엄마에게 덧 입혀야 반응한다는 걸 아는 셋째 언니를 이해한다. 내 이해는 소용이 되지 않는다. 언니가 이해받고 싶은 사람은 엄마니까. 그러나 엄마는 셋째 언니의 관심을 선별해서 받는다. 어떨 땐 효고 어떨 땐 혹인 셋째 딸의 관심. 달고 쓴 것을 가리는 게 읽히는 딸은 번번이 상처받는데 그걸 모르는 엄마.


빨간색 파카에 망사로 된 흰 장갑, 주황색 끈으로 포인트를 준 운동화를 신고 내려온 엄마. 대충 입은 셋째 언니와 나란히 있으니 엄마 행장이 이른 봄 철쭉처럼 화사했다.


아휴. 울 엄마 이쁜 것 좀 봐. 여배우가 따로 없네. 메릴린 먼로가 울고 가겠어.


엄마는 20여년 전 위암 수술을 받았다. 수술 뒤로는 염색을 끊었다. 서너달에 한번씩 뽀글이 파마를 하는데 파마가 풀려 굽실해질수록 기가 막히다. 마침 파마할 때가 되었다는데 오히려 지하철 환풍기에서 치마를 누르던 메릴린 먼로를 연상시킬 만큼 멋져 보였다.


배우는 무슨, 지네 엄마니까 이쁜 거지. 엄마 컨디션이 최상이다. 큰 조카 합류 소식을 덧댔더니 목소리 톤이 더 쾌활해진다. 마흔 중반에 본 첫 손주가 대동한다니 엄마의 흥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차에 오른 엄마가 머리 이야기를 이었다.


어르신! 머리가 어쩜 그렇게 멋있어요. 너무 근사해요. 너~어무 잘 어울리세요. 버스나 지하철, 우연히 옆에 앉은 이들이 들려준 칭찬을 전달하는 엄마. 족히 백 번은 들은 이야기다. 이야기 흐름을 본인에게 집중시키는 날 좀 보소 화법. 언니들은 뒤에서 비죽대지만 나는 엄마 화법이 싫지 않다. 연세 대비 건강하시고 그 건강 본인이 관리하시니 예쁜 노인의 공치사 쯤이야.


부모 병시중으로 시간이 묶이는 지인이 많고 많다. 그런 반면 우리 엄마는 간병비도 보존해주고 주말 휴식도 지켜주니 고맙기 그지없지 않은가.


암, 울 엄마 백 살도 끄떡없지! 엄마가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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