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엄마

by 떼굴


엄마가 아무래도 치매 같아.


셋째 언니가 보낸 카톡은 고작 한 줄이었다. 하지만 우리를 혼란에 빠트리기에 충분한 문장이었다.


내게 치매라는 병에 근접 경험이 없다. 가끔 멀거나 가까운 지인에게 치매환자에 대한 직접 경험을 듣긴 했지만 지인의 입을 통한 말들은 지인의 관점이었으므로 대중매체에서 얻은 정보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적인 사실은 치매는 다들 비켜가고 싶은 병이라는 것, 나도 그렇다.


오래전 친구로부터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라는 소설책을 선물 받았다. 딱 내 얘긴 줄 알았잖아. 건망증이 심해졌다고 걱정을 달고 살던 친구가 건넨 책의 저자는 리사 제노바다. 뇌과학을 연구하는 신경학 박사인 그녀는 치매에 걸린 자기 할머니가 모티브다.


만약 엄마가 치매라면이라는 가정이 생기니 스틸 앨리스’를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았다.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는 치매 환자 시점에서 쓴 소설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때 실체가 제대로 보이기 마련이다. 대중매체 소식의 일부였던 치매가 내 이야기가 된다면 좀 더 실제적인 정보가 필요하다.


치매는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숨어버리려는 기제라 보는 측면도 있다. 그걸 전제로 어떤 충격이 있었는지 알아보려면 환자 당사자의 행동양상을 세심히 관찰해야 할 것이다. 이미 벌어졌다면 치료 접근성을 좁혀야 하는 건 그다음이 될 테니까


언니, 우리도 처음엔 전혀 몰랐어. 친정 가까이 살며 엄마를 챙겨 오던 후배의 말이었다. 후배 오빠는 사업부도로 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다. 승승장구하던 사업의 부도는 가족파탄에 이어 구속으로 이어진 것이다. 장남의 현실은 엄마에겐 큰 충격이었다. 한동안 쉬쉬했으나 결국 알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형무를 마치고 교도소에서 나온 뒤였다. 가족 파탄으로 오 갈 데가 없어진 아들이 엄마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게 되었는데 치매가 그 이후에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장남을 향한 엄마의 끔찍한 숭배와 현실. 그 괴리 안에서 매일을 견뎌야 했던 엄마의 정신. 후배가 들여다보는 일주일 간격에선 전혀 티를 내지 않다가 이웃의 증언?을 통해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판정 이후부터는 밀린 숙제 토하듯 치매 본색을 드러냈다.


후배 소식을 들으니 더럭 겁이 났다. 후배 소식을 형제들과 공유했다. 우린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다 '엄마와 치매 여행' 다소 낭만적인 합의를 도출시켰다.


치매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건 셋째 언니의 입을 통해서다. 셋째 언니는 종종 말을 부풀려 시선을 집중시킨다. 조울증을 겪으며 생긴, 전에는 없던 버릇이었다. 버릇이 반복되자 형제들은 셋째 언니를 믿어 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이구동성 과장일 거라 치부했다. 하지만 엄마 나이가 변수였다. 엄마는 뭐든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다.


셋째 언니 입에서 나온 말의 가벼움과 여든여덟이라는 연령의 무거움이 절충한 여행이라는 결과. 종일 같이 보내며 각자 치매 증세가 느끼는지 살펴보자는 합의다.


여행지를 예산으로 정했다. 자동차 여행으로 멀지 않은 거리다. 나는 자기 감흥이 섞였을 때 여행 흥이 더해진다는 사실에 기초해 각자의 관심사와 모두의 공통분모를 얼개로 코스를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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