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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굴 Feb 08. 2024

팔팔한 나이에

치매라니요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아직 한기가 남아 있는 4월 첫째 주 화요일  아침은 날이 흐렸다.

엄마 집 앞으로 가니 셋째 언니가 엄마와 함께 내려왔다. 셋째 언니의 엄마 걱정이 도를 넘어선다. 그래서 걱정을 본인 선에게 멈추지 않고 부풀려 형제들에게 전달한다. 이미 정답으로 규정한 언니의 판단이 대부분이다. 본인 걱정을 엄마에게 덧 입혀야 우리가 반응한다는 걸 아는 언니다. 그런 언니를 이해한다. 그러나 언니가 이해받고 싶은 사람은 형제들이 아니라 엄마다. 그래서 안타깝다. 엄마는 아직도 언니의 관심을 선별해서 받고 그런 행동이 언니에게 상처가 된다는 모르는 눈치다.


빨간색 파카에 망사로 된 흰색 장갑, 주황색 끈으로 포인트를 준 운동화를 신은 엄마. 대충 입은 셋째 언니와 달리 엄마의 여행복은 이른 봄에 핀 철쭉처럼 화사하다.


아휴. 울 엄마 이쁜 것 좀 봐. 여배우가 따로 없네. 메릴린 먼로가 울고 가겠어.


20년 전 엄마는 위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 이후부터 염색을 피하고 파마만 해오고 있다. 엄마의 파마머리는 내가 봐도 기가 막히다. 엄마의 은발 머리는 파마기가 풀려 다시 해야 할 때가 되면 지하철 환풍기에서 치마를 누르던 메릴린 먼로가 떠오를 만큼 멋지다.


배우는 무슨, 지네 엄마니까 이쁜 거지.  엄마 컨디션은 최상이다. 거거에 큰 조카 합류 소식을 전했다. 목소리 톤이 한 톤 더 상승한다. 큰 조카는 엄마의 첫 째 손주다. 마흔 중반에 첫 손주라니. 지금 40대들은 얼핏 30대로 보일만큼 팽팽한 얼굴과 체형을 갖추고 있다. 손주는커녕 미혼도 허다하다. 손주까지 대동할 행차에 흥이 오를 대로 오른 엄마는 차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머리 이야기를 이었다.


어르신! 머리가 어쩜 그렇게 멋있어요. 너무 근사하고 너~어무 잘 어울리세요. 일전에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이가 들려준 칭찬을 다시 한번 리바이블하는 엄마. 백 번은 더 들은 이야기다.    


엄마의 대화법은 이야기 흐름을 본인에게 집중시키는 날 좀 보소 화법이다. 언니들은 뒤에서 흉을 봤지만 나는 엄마의 화법이 싫지 않다. 연세에 비해 객관적으로 예뻤고 실제로 건강하시니 그 정도는 받아주는 게 자식 된 도리라 생각해서다. 부모 병시중을 이유로 주말이 묶이는 지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 엄마는 간병비는 물론 주말 휴식도 갈아 넣을 수 있는 병시중 도리를 면피시켜 주었다. 그걸 생각하면 더 고맙고 감사하다. 나는 암, 울 엄마 백 살도 끄떡없어!라는 말로 흥기를 보태 드린다. 그것 만으로는 부족한 마음인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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