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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굴 Feb 15. 2024

치매여행

이라 쓰고 엄마와 함께라고 읽는다.


예산에 도착한 건 점심 무렵이었다. 흐렸던 날씨가 부슬비로 변했지만 다행히 동선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보다 나는 모두의 입맛을 맞출 맛집 정보가 없다는 게 더 난감했다. 아쉬운 대로 네이버를 검색했다. 예산엔 한우거리라는 곳이 있었다. 식당만 즐비한 거리는 도시풍도 읍내풍도 아닌 어정쩡하고 촌스러운 간판들로 도배를 이루었다. 촌스러움이 나름의 특색이라면 특색이랄까? 우리가 간 곳은 포스팅 리뷰가 가장 많은 식당이었다.

 

엄마 여기 서 봐. 아휴 이뻐 이뻐, 세상에서 젤 이쁜 울 엄마. 내가 사랑하는 우리 엄마.


나는 수덕사 소나무를 병풍 삼아, 진분홍 벚꽃 속에, 대웅전 앞 색색 연등 아래 엄마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 기록한 엄마의 현재는 훗날 돌아본 오늘을 더 선명한 기억으로 이끌어 줄 것이었다. 아직은 새 잎을 올리지 못해 뿌리처럼 보이는 거대한 가지를 하늘로 펼친 수령 몇 백 년이라는 느티나무 아래 엄마를 세울 땐 우리의 지킴이가 되어 준 엄마에게 진심 애틋하고 뭉클한 마음이었다.


엄마와 한 화면에 들어가 셀카를 찍으며 내가 물었다.

엄마 다 같이 나오니까 좋지? 그럼 좋지, 좋고 말고.



애교는 막내의 전매라 생각한다. 나는 친정 식구들과 함께할 때 내 나름의 방식으로 분위기를 만든다. 이를테면 위로가 필요한 사람과 주인공이 되어야 할 사람을 판단해 그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야시랑을 떠는 식이다. 엄마는 비위를 맞추며 야시랑 떠는 나를 싹싹하다며 좋아했다. 가끔은 내키지 않을 때도 있지만 내 야시랑으로 엄마 말년 생이 배시시 해진다면 얼마든지 야시랑을 연출할 수 있다.


치매 여행이라는 명분으로 떠나왔지만 아직까지 치매를 예측할 수 있는 특이점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오랜만에 나온 바깥나들이 때문인지 내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우리 일행은 수덕사를 나와 예당 저수지 둘레길을 일렬로 걸었다. 드론 샷이면 그림으로 보였을 데크길은 너무 낭만적이었다. 발 밑에는 호숫물이 백색 소음으로 찰방 대고 상기된 얼굴 위로 기분 좋은 물바람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맹그로브처럼 버드나무가 물속을 버티는 중이고 갈대류 식물들이 곁에서 운치를 더하는 길. 이 길이 치매여행이라니



어머 어머 어머, 여기 좀 봐요 엄마.

치매여행 명분조차 잊게 해주는 풍경 앞에서 나는 습관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엔간히 좀 해라~. 셋째 언니가 호들갑에 제동을 걸었다. 맨날 가게에 틀어 박혀 있다 밖에 나오니 좋아 그러지 뭐냐. 역시나 엄마는 내 편을 든다. 나는 반사적으로 언니를 돌아봤고 언니는 샐쭉해지는 입술을 들켰다.


여우 같은 년. 뚱하고 진득한 셋째 언니는 예전부터 나의 지나친 야시랑이 불만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럼 언니한테는 야시랑 빼고 언니처럼 뚱하게 말한다.라는 얄미운 말로 언니를 이겨 먹곤 했다. 하지만 언니는 모를 거다. 야시랑 떠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쓰이는지,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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