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단편이고 인생은 단편집이야. 그리고 난 네 편이야.
익숙해지는 건 지루함이라고 썼던 기억이 난다.
아픈 것에 익숙해지는 건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딱할 일이다. 딱하고 애석할 일이다.
자주 아프면 우울해지는 것에 둔감해진다-나는 이걸 구덩이를 파고 들어간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아픈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구덩이를 파기 위해 우당탕탕, 제대로 구덩이를 파는지도 의문이다. 구덩이 하나 잘 판다고 으스대는 것은 아니나-으스댈 것도 없는 게 안 파는 게 훨씬 나은 것 아닌가, 어랍쇼, 생각해보면 아프다고 꼭 구덩이를 파야 하나? 구덩이를 다들 파는 건가? 너무나도 당연해지면 이게 맞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되어버린다-
저번에 판 구덩이를 다시 묻을 새도 없이 그곳에 다시 들어가버리거나 원래 있던 것처럼 뻥 하니 토양층 표피에 구멍을 오래 전부터 뚫어두고 있다는 것은 지루하다 못해 지겹다.
익숙함에서 비롯되는 타성은 내 목숨을 질질 끌고 나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인생에서도 구덩이에서도 자유롭지 못하지. 자유를 찾으려 노력한 적은 없으나 그렇다고 타성에 젖지 못할 일은 아니지.
자주 아프면 구덩이를 팔 시간도 노력도 그만큼 절약될 일이나 그만큼 먼저 파인 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구덩이 저 속으로 침잠하는 것이다.
아직도 나는 내 구덩이들을 메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