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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혜나 Sep 08. 2023

2022.04.11

일상은 단편이고 인생은 단편집이야. 그리고 난 네 편이야.

목표가 있어야만 ‘진정한 삶’도 아니거니와 그저 하루하루 이어나간다고 해서 ‘삶’이라는 단어와 동떨어진 것도 아닌데-사실 하루하루 이어가는 게 살아가는 것이니 ‘살다’의 명사형인 ‘삶’이 맞지- 요즘 미시감이 든다.

그냥 어떻게든 연명해볼까? 연명 그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하나 ‘어떻게’ 연명할지의 방법에 의미를 두어야 하나, 이도 아니면 ‘연명’이 아니라 ‘도전’이나 ‘어드벤처’ 따위의 거창한 제목을 붙여서 페이지를 엮어나가야 하나. 여태껏 살면서 이런 고민은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확실하지 않으니 ‘-던 것 같다’고 표현하겠다-

뭔가 다 놓은 기분이기도 하고, 이 공허함은 뭔지 잘 이해를 못하겠다. 지금까지 나는 우울감 아니면 권태감, 분노, 이름 모를 감정들로 찬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나는 무얼로 채워졌는지 모르겠다. 비휘발성의 무거운 감정들이 안개처럼 차곡차곡 쌓여서 가끔 가슴을 먹먹하게도, 황홀하게끔 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소독용 알코올처럼 휙 사라져서 허한 느낌만 남았다. 휘발성이어서 금세 날아간 건지, 애초에 무언가가 채워졌던 것이긴 했나 하는 당혹감도 있다.

친구들이랑 카톡으로 ‘왜 살아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우울해서 죽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냥 잘 모르겠어. 그냥 아무 느낌이 안 나. 그냥 내일 정리해도 아무 아쉬울 것도 없겠다는 느낌? 기대할 것도 없고.’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빵이 먹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빵을 먹을 기대에 내일을 기다리고 싶지는 않아. 내일 빵을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오늘을 꼭 보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냥 뭐 그런 느낌이다. 고양이들 때문에라도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했는데 나 없어도 지낼 거 같으니 굳이… 그런 기분이다. 여전히 맛있는 걸 먹어도 기분이 좋고 날씨가 좋으면 ‘날씨가 좋네요’ 하며 스몰토크를 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신소리를 주고받으며 웃기도 하고, 추운 것보다는 따뜻한 것을 좋아하고, 요가를 하면서 땀을 빼고, 고구마를 먹는 걸 좋아하지만, 우울하지 않지만 굳이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요즘따라 생겨난다. 한때는 우울해서 죽고 싶었는데 요즘은 ‘굳이 살아야 할 거 같지는 않아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감정이니 참 우스운 일이다. 죽고 싶은 건 아니고 그냥 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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