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석혜나 Sep 08. 2023

2022.03.27

일상은 단편이고 인생은 단편집이야. 그리고 난 네 편이야.

이쯤이 되면 뭔가 될 줄 알았지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 없는 셀프 가스라이팅이다. 그래도 전과 다른 것은 그게 사는 것이려니 하면서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면 이제 나는 사는 것 자체부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사는 건 연명이고 죽는 건 순간이며, 그 찰나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애쓰고 있다. 정말로 ‘애를 쓰고 있다’.

이리 애먹으며 살아가는 인생이라는 건 그때도 지금도 알지 못했지, 원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말이다. 애라는 건 창자를 말하는데 애를 쓴다는 건 정말 좆빠지는 게 아니라 창자 끊어질 정도로 빡시게 산다는 말이다. 좆이야 빠져도 살겠지만 창자 끊어지면 어디 살겠나. 자식을 떠나보내다 단장한 어미 원숭이는 그렇게 창자를 ‘계속’ 끓이다 끊어지는 ‘찰나’를 마주한 것이다.

이름을 ‘석혜나’로 바꾸고 싶었던 적이 있는데, 이는 이름을 거꾸로 하면 ‘나혜석’이 되어서 그랬다. 별 시답잖은 삶에서 그나마 이름은 멋쟁이 모단걸이 되고 싶었었나 보다. 이제는 그마저도 욕심이 없지만.

그렇다면 시답잖은 건 무엇을 말하는가. 의미 없이 주고받는 농담 따위를 시답잖다 할 텐데, 그렇다면 내 인생은 의미가 없는 거라고 하겠다. 혹자는 꼭 삶에 의미가 있어야 하나, 없어도 사는 것 자체가 훌륭하다고 하겠으나 그 또한 나와는 썩 관련이 없는 얘기다. 사는 것은 그저 고리타분한 고통이 지리하게 나열된 필름이고 인간이란 그저 지리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사기일 뿐이다.

이 글도 제법 시답잖은 것이나 시답잖은 삶에서 안데르센 동화가 나올 순 없지 않은가. 결국 나는 이 일련의 모든 행위, 상황, 시간, 감정들을 보여주는 재미 없고 상투적인 영사기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2.04.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