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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필적 글쓰기 Mar 27. 2016

헤일, 시저!

헐리우드의 진실된 고해성사

 


에디(조슈 브롤린)는 신부 앞에 선다. 고해성사를 한다. "오늘 담배 두 대를 피웠습니다."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을 때렸습니다;." 에디의 얼굴은 착잡하기만 하다.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보면 너무나도 가벼운 죄목이 아닐 수 없다. 신부도 귀찮아하는 듯보인다. 신부는 말한다. "당신은 너무나도 빈번하게 죄를 저지르는군요."


 헐리우드의 고해성사다. 에디의 위치를 보자. 영화 제작을 총괄한다. 그는 헐리우드 작품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입장에 있다. 에디는 스스로 예수가 되고자 한다. 예수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졌듯 그 역시 헐리우드 영화인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진다. 그 죄를 모두 모아 무게를 재면 결코 가볍지 않다. '헐리우드'의 고해성사라 치면 에디의 고해성사에 담긴 그 엄숙하고 진지한 분위기는 전혀 납득하지 못할 바가 아니다.



 어떤 죄? '자본의 개'가 되었다. 헐리우드는 문화적 권력을 재생산하는 데 일조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베어드 휘트록에게 말한다. "영화는 도구에 불과하다." 베어드 휘트록은 그 말에 심취한다. 헐리우드 배우가 공연히 그 말에 심취하는 것은 아닐 테다. 헐리우드는 예술혼 따위를 저버린 지 오래다. 로렌츠(랄프 파인즈) 감독은 액션 배우 호비 도일(엘든 이렐리치)이 드라마 배우론 적합하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에디도 안다. 그 역시 호비 도일의 기용을 꺼렸다. 그럼에도 그가 호비 도일을 드라마 배우로 기용한 건 투자자들이 그걸 원해서다. 헐리우드는 자본이란 권력에 종속되어 있는 위치에 있다. 자본은 끊임없이 헐리우드를 유혹한다. 유혹에 굴복해 예술혼을 저버리는 행위야 말로 헐리우드가 저버린 가장 큰 죄악이다.


 호비 도일은 고단하다. 감독의 면박에 시달린다. 반기를 들 법하나 호비 도일은 그런 시도를 하지 않는다. '영화'가 도구로 이용된 결과다. 일상으로 돌아온 호비 도일은 코믹한 영화를 보며 박장대소한다. 코믹한 장면과 함께 그는 일상의 고단함을 잊는다. 사람들의 웃음이 한 방에 터지는 그 장면이 역설적이게도 내게는 더 없이 안타깝게 와닿았다. 바보 같은 배우의 연기는, 기타 치는 호비 도일의 연기는 사람들이 마음 속에 간직한 불만에 대해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잊도록 한다. 현실에 안주하도록 만든다. 공산주의자의 말마따나 영화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었다. 찬란했던 그 당시 헐리우드에 드리워진 어둑한 그림자다.



 진실된 고해성사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며 웃고 떠들고 즐긴 것이 사실이다. 그와 함께 중요한 무언가를 망각하고 있던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헐리우드 영화가 담는 코믹한 장면 속에 전 세계가 마주한 부익부 빈익빈이란 중요한 문제가 감춰졌다. 슈퍼 히어로의 등장에 '미국은 절대적인 선'이란 그릇된 관념이 심어졌다. 헐리우드는 막강한 문화 권력이었다. 에디의 고해성사와 함께 헐리우드 영화인들의 뼈저린 반성이 전해진다. 에디는 옳은 길을 걷기로 한다. 그것은 헐리우드가 옳은 길을 걷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들의 진실된 고해성사는 아름답다. 옳은 길을 걸어가는 그들의 현실, 그리고 그 미래가 궁금하다. 


 






[나슬기의 오층석탑]의 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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