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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필적 글쓰기 Apr 01. 2016

한 폭의 장국영

감히 제가 당신에 대해




90s

그가 붉게 작열하던 시대에 나는 고작 눈이나 비비며 젖이나 찾아 물던 갓난애였다.



2003

그 당시의 나는 동네 변죽이나 전전하던 철 모르는 초등학생이었다. 짝꿍이 좋아 학교에 갔으며, 계란이 좋아 교회에 갔다. 누리끼리한 보리차 보단 투명한 생수가 달아서 도서관에 갔다. 고작 물이나 마시러 갔다. 걸음도 대충 걸었다. 그렇게 대강 걷다가 넘어지면 소독도 귀찮아 바람에 상처를 말렸다. 싱겁고 느슨한 일상이었다. 그렇게 비 맞은 빨랫줄처럼 늘어져있던 일상도, 팽팽하게 당겨질 때가 있었다.

 비. 디. 오. 테. 이. 프. 들. 어. 오. 는. 날.

티브이 관람은 너무 수동적이었고, 책을 탐구하며 읽기엔 앞서 적었듯 당시 나는 너무 느슨했다. 적당히 능동적일 수 있는 행위가 비디오를 빌려다가 플레이어에 꽂아 넣고 play 버튼을 찾아 누르는 것이었다.


 대여 아저씨완 꽤 친근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눈치 보지 않고 신작 비디오들을 하나하나 뽑아 훑어봤다. <이도공간>. 장국영? 얼마간 티브이에서 어렴풋이 들었던 이름. 입 안에서 삼음절로 알맞게 발음되는 이름 때문에 한국 사람으로 착각했던 것도 같다. 나는 내가 훑은 모든 비디오 영화 제목을 기억할 만큼 명석하지 못하다. 여러 번 밝히지만 나는 나른하게 살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제목이 잊히질 않았다. 포스터 속 슬픈 남자의 눈빛과 어둡고 파란 배경까지. 빌리지 못할 테이프여서 그랬나. 아니면 나도 모르게 위니종정(첫 눈에 반하다!) 되어 버렸던 걸까.




2014

보통화를 배우러 상하이에 간다. 실은 광둥어를 배우고 싶었다. 내가 사는 현실에선 보통화가 실한 살코기라면, 광둥어는 살코기 다 뜯어진 빈약한 갈빗대였다. 나는 꿈만 좇느냐고 현실감을, 잃을 순 없었다. 그럴 깜냥이 없어 젓가락은 살코기, 실용지학인 보통화로 향했다. 내심 아쉬움에 광둥어 클래스를 신청해서 들었다. 나는 살코기도 먹고, 갈빗대도 들고 뜯는 인간이다. 허허.





 2015

맥없이 이완돼 살았던 초등학생은 긴장이 습관이 된 졸아붙은 대학 졸업반이 되었다. 없던 맥도 추스르고 가꿔서 살아야 하는 아이 아닌 어른이 된 거다. <이도공간>과 장국영을 어렴풋이 알던 아이는 이미 그의 열렬한 팬이다.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오랜만에 맥을 탁 풀어놓고 싶었다. 내 본연의 해이한 리듬을 되타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을 가기로 한다. 벼르고만 있던 홍콩에 그렇게 떠났다.



함께 간 친구는 평소 내 장단을 알고 곧잘 호응해주는 친구다. 그러나 부러 호들갑을 떨진 않았다. 우리가 서로 떨어져 따로 여행하기로 한 날, 나는 온전히 장국영을 만나기 위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어렸을 적처럼 대충 걷는 걸음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애초의 내 느슨한 리듬 같았다. 일신이 처음 딛는 홍콩에서 그렇게나 편안을 느꼈다.



 믿는 구석은 있었다. 주성철 기자의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과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을 한 팔에 두껍게 끼고 거리로 나섰다. 그 책들은 간이 손난로처럼 온기가 돌았다. 작가가 책에 녹인 열렬함의 정도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조용한 가이드와 팔짱을 끼고 체온을 나누며 함께 걷는 기분을 느꼈다.



 홍콩은 도심 처처가 결국 촬영지다. 내딛으면 '수 백 편의 홍콩 영화에 한 번쯤 담겼음 직한 바로 그곳'이었다. 우향우, 하면 영웅본색(1986), 좌향좌, 하면 아비정전(1990), 뒤로 돌아하면 금지옥엽(1994), 앞으로 가 하면 유성어(1999), 뭐 이런 식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이 있다.




 옥석으로 다져놓은 그 호텔에 들어가 봤다. 그리고 책에 적혀 있는 대로 그가 좋아했던 애프터눈 티 세트를 파는 그곳에도. 나는 먹을 주제도 못됐다. 단지 무작정 가보고 싶었다. 말간 대리석 바닥이 은은한 조명을 받아 턱 밑을 밝혔다. 이완된 걸음이 점점 조여옴을 느꼈다. 나는 비디오 대여점에서처럼 열심히 내부를 훑었다. 말소리는 작았고, 이따금씩 포크와 쟁반이 만나 튕기는 '팅' 소리가 고요를 간섭하는 정도였다. 그는 그 곳 창가자리는 좋아했노라고, 책은 전한다. 나는 


 나는 그가 죽기 직전까지 묵었다던 마카오스위트를 머리 위에 지고 숨이 가빴다. 꼭 두 팔이 달달 떨리도록 무거운 짐이 정수리를 내리 누르는 느낌, 24층을 향해 한 걸음에 두 계단씩 뛰어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그런 노역의 틈에서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기로 했다. 어떤 모습을 떠올려야 할까, 사진첩 뒤지듯 머릿속에서 그의 모습을 고르고 골랐다. 내가 선 당시의 현장에서 그의 어떤 얼굴을 데려와야 할지 몰랐다. 관뒀다. 호텔을 나올 땐 발목에 무거운 추 하나를 달고 나왔다. 24층은 1층에 선 사람의 시야에 잘 담기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나는 <금지옥엽>에서 장국영이 연기한 '샘'을 좋아한다. 좌우로 줏대 없이 갈라진 오대오 가르마와 대충 꿴 셔츠 단추, 콧등에 올라탄 노른자 크기의 둥근 알 선글라스, 피아노 위에서 사뿐히 무릎을 세우고 부르는  Twist & Shout, 멜로디만 듣고 대충 노랫말을 붙여도 탄생하는 마스터피스 追. 샘은 이렇듯 다듬지 않고 멋대로 휘갈긴 멋을 영화 내내 방사한다. 이 멋에 한 꺼풀 더해, 금지옥엽의 샘은 장국영이 연기한 밝고 유쾌한 몇 안 되는 캐릭터 중 하나기도 하다. 동성서취, 금옥만당, 가유희사에서 날 간질이던 그 쾌활함이 이 영화에도 있다(물론 다크함도 있다). 마음 놓고 밝은 그의 미소를 볼 수 있어서 더없이 소중한, 제목 마따나 금지옥엽 같은 영화다.



 Duddell St. 에 위치한 이 '가스등 계단'은 금지옥엽 초반에 등장한다. 샘이 시상식에 참여하는 대신, 작고한 아버지의 밴드 친구들과 바에서 공연을 하고 귀가하는 장면이다. 그는 이 계단을 내려와 아름드리 장미꽃이 실린 차에 탑승한다. 그는 한 사람 몫의 좌석을 차지하고도 넘쳐흐르는 장미를 극 중 연인(유가령)에게 데려갈 것이다. 나는 실제로 계단을 보고 정확히 다섯번 오르내렸다. 그러고도 성에 안 차 이 곳에 얼마간을 붙박여 있었는지. 나는 이런 사소한 답습으로 과거의 그를 현재로 착각하고 싶었다. 망상은 착각을 낳나. 나는 홍콩 도심의 맵고 싸한 분진 냄새 사이에서 장미꽃 향을 맡은 듯 했다.



 냄새도 맡았으니 이명도 들려야지. 이쯤에서 Twist & Shout를 터져라 부르는 장국영이 떠오른다면, 그때가 발을 뗄 적시다. 가스등 계단을 올라 왼 허리에 홍콩의 열대 숲을 끼고 Ice House St.로 뻗은 오른쪽 길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금지옥엽에서 샘의 기획사 건물로 나온 프린지 클럽이 나온다. 원영이는 남장을 하고서 넋이 나간 귀여운 표정으로 오디션을 기다린다. 아마 내 모습도 그와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귀여움 x 넋 나감 o). 나는 적색 벽돌로 칠갑을 하고 낮게 늘어진 그 건물에 회심을 느꼈다. 눈을 치뜨고 벽에 있는 세월의 잔금까지 새겨가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봤다. 탐사나 조사의 수준이었다. 현지인이 봤을 땐 벽에 금이라도 박혔나 싶었을 것이다. 홍콩 사람들에겐 이 특별난 건물과 거리가 예삿것이라는 생각에 질투가 일었다. '나 같으면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날 텐데. 흥!'하는 치기도 동했다.






 Aberdeen St. 를 타고 Castle Rd. 에 올랐다. <아비정전>에서 끝내 수리첸(장만옥)을 수신할 수 없었던 경찰(유덕화)의 상사想思가 남은 공중전화가 있는 곳이어서였다. 물론, 공중전화는 이제 없다(촬영을 위해 임시 설치해 놓은 것이기 때문). 게다가 나는 과거 공중전화가 있었다는 그 장소를 찾지도 못했다. 낮 27도의 정점이 끓이는 오르막 길의 뜨거운 맛만 보고 내려와야 했다. 내 방향감각이 문제였을지, 지도 지각 능력이 달려서였을지. 하지만 더위에 데면 좀 어떻고, 어두컴컴한 터널쯤 못 찾으면 어떤가. 아비정전의 장면을 되뇌며 찾아가는 길 자체가 내겐 판타지 픽션이었다.   


 아비정전의 아비는 감정에 가감이 없다. 말 그대로 감정에 과감하다.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으면 이내 자신의 옆구리에 그녀를 찰 수 있는 남자다. 병콜라 주둥이를 굳게 문 병뚜껑을 판매대에 내리 찍어 치지직- 탄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목을 축이는 모습이나, 그 유명한 '1분' 드립을 치거나, 유가령에게 귀걸이 한 짝을 던지곤 나머지 한 짝을 손가락 사이에 달랑달랑 끼워 흔드는 깜찍한 모습, 그러나 이내 '친어머니' 이야기엔 낯색을 어둡게 드리우며 우울에 몸을 담그는 모습, 다부지게 필리핀으로 향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날개를 다친 여린 새의 외양, 그 슬픈 내양까지. 그가 연기한 아비 캐릭터는 미답의 모성의 경지로 나를 이끌었다. 그는 그런 연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없던 감정을 배우게 하는. 




영화 <유성어>1999  극 중 장국영의 집이 있던 Mee Lun St.




 다시 머리 방향을 왼쪽으로 조타한다. <아비정전>의 퀸즈 카페를 찾기로 했다. 실제 촬영지였던 카페는 2008년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이후 홍콩에만 4개의 지점이 새로 개점했는데, 나는 원조 퀸즈 카페의 위치였다던 코즈웨이베이점으로 갔다. 차도를 양분하며 달리는 나무 골재 트램을 타면 센트럴에서 코즈웨이베이까지 넉넉히 도착할 수 있다. 달리는 트램의 2층 창가에서 온 몸에 찾아드는 12월의 훈풍을 맞는 일은 오직, 홍콩, 센트럴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 Forever, Ai Ni

♪ A Thousand Dreams Of You

♪ American Pie

를 들으며 달리면 트램의 속도를 한층 가속할 수 있다. 물론 심리 속도 말이다. 손가락으로 리듬을 다지면서!




 퀸즈 카페는 생각만큼 정연했다. 사실 리모델링 이후의 모습이라 영화 속 장면을 그대로 대하리란 기대는 접고 들어갔다. 창가 자리가 넉넉했다. 영화에서 본 옥색 유리잔과 탁한 밀크 커피를 생각했지만, 그냥 아이스크림 소다를 시켰다. 탄산 특유의 감렬甘烈한 느낌에 뭔가 더 Being Wild 한 느낌이 들었다. 음료가 더운 김을 식히자 여유가 돌았다. 종업원에게도 눈을 뒀다가, 벽에 걸린 아비정전 액자에도 시선을 뒀다가, 영화 속 탁자와 내가 앉은 테이블의 색도 맞춰봤다. 어쩐지 못하는 담배도 한 대 태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신 음악을 틀기로 했다. 아비정전 OST 중 가장 즐겨 듣는  Maria Elena, Perfidia, Always In My Heart ♪ 何去何從之阿飛正傳을 재생했다. 순간 어찌나 꿈결 같은지. 그 속에서 홍콩의 7월과 필리핀의 우림을 떠올렸다. 그 안을 부유하던 장국영도 떠올렸다. 취한 감상 덕에 스스로 소파 위로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정말 딱! 그랬다.




 퀸즈 카페. 그 곳에서 아비는 어땠을까. 옆엔 장학우를, 앞엔 유가령을 앉혀 두고, 측면에서 건너오는 왕가위의 눈빛을 받으며 그는 어땠을까. 발 없는 새를 연기한 그는, 사실 촬영을 겸한 생을 살았던 건 아니었을까.



♪Dreaming



 발광하는 셔터와 인위적인 홍콩 불빛 아래로만 다녀야 했을 짙은 음영같던 그는, 과연 어떤 불편을 감내하며 살았을까. 네온을 입은 어둠, 양광 아래 선 그늘. 그 불편한 동거가 그를 옭은 우울의 늪이 아니었을까 감히 생각했다. 정말 감히, 얕은 내가 깊은 그를 넘겨짚어봤다. 홍콩의 밝은 사진만 메모리 무겁게 담아온 나 자신이 미워졌다. 나도 겨우 밝음만 좇다 온 것 같아서 그에게 미안해졌다.



 ♪ Qian Nu You Hun (Live!!!!ver.)




 의지와 바람만 충분했던 여행을 그렇게 일단락 맺었다. 사실 꽉 맺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느슨하게 맺었다. 언제든 맺어진 매듭을 다시 끌러 볼 수 있도록. 시간도 돈도 모두 여의찮은 여행이었다. 덕분에 다음에 들러볼 곳을 많이 남겨 둘 수 있었다. 나는 미답의 아쉬움을 담보로 걸어두고 귀국했다. 발목 두 쪽에 한 움큼씩의 추를 달고 무거운 걸음을 걸어서. 하루에 다 담을 수 없는 장국영의 홍콩. 하지만 홍콩은 그 찰나로도 내게 한 폭의 장국영이었다. 더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 미완의, 미답의 홍콩을 언제쯤 다시 갈 수 있을까. 연중이면 참 좋겠는데.



 억지로 맺은 여행의 끝에서, 날 마중한 건 21도의 낮이 아닌 -11도의 밤이었다. 나는 고작 닷새 멀어져 있었다고 한국의 한파를 잊었나 보다. 내 속도 모르고 온 몸을 갈겨대는 한국의 찬바람이 미웠다. 그렇게 또 별거 아닌 이유로 홍콩에 대한 그리움이 부풀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결국 사진을 새김질하거나 홍콩 영화를 보는 일이었다.






2016.4.1

 진진방, 제임스, 풍, 찬, 송자걸, 아비, 영채신, 데이, 샘, 보영, 아성, 구양봉, 탁일항. 나는 그가 이따금씩 던져주는 영화를 배곯은 아귀처럼 열심히, 그리고 아껴 볼 뿐이다. 이가 닳고 해지도록 씹고 씹으며 감미하는 수밖에. 항상 포만보단 기갈뿐이지만. 그 허기가 궁극에 달할 13주기, 4월 1일. 날래게 뜀 뛰던 맥이 가지런히 일직선으로 정돈된 때, 나는 그 차분한 획을 뒤범벅 엉킨 심정으로 느끼고 있다. 오늘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종횡사해와 성월동화를 위해 극장엘 가는 일이면 충분할까. 온전히 기릴 길 없는 기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갚을 길 없는 감정의 부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고마운 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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