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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필적 글쓰기 Apr 15. 2016

4등

이렇게까지 1등이 되고 싶지는 않다.



 



 맞으면 아프다. 묵직한 충격이 피부에 가해진다. 신경세포가 깜짝 놀란다. 고통을 호소한다. 자극이 있으면 반응이 있는 법이다. 매질에 대한 반응은 고통이요, 이에 대한 호소다. 맞으면 아픈 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즉, 인지상정이다. 



 준호(유재상)도 필연 아팠을 것이다. 김광수(박해준)는 “정신 차리라”고 윽박지르며 매질한다. 준호를 엎드려 뻗쳐 시킨 뒤 대걸레로 엉덩이를 친다. 준호의 등과 엉덩이엔 피멍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진다. 그의 피부세포는 증상으로써 고통을 호소한다. 대걸레가 엉덩이에 닿을 때마다 “악” 소리가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다. 묵직한 대걸레가 피부를 강타할 때마다 준호는 아프다.




 1등이 뭐기에? 준호가 맞는 이유는 하나다. 1등이 되기 위해서. 김광수는 1등이 되는 데 ‘매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준호를 매질하며 “1등을 하기 위해서”라고 합리화한다. 같은 이유로 준호의 엄마 역시 그 같은 폭력을 방관한다. 자는 아이의 등에 찍힌 선명한 피멍 자국이 쓰라리게 느껴지긴 한다. 그렇지만 그 같은 상처는 1등으로 가기 위해선 불가피한 상처다. 어떻게 보면 영광스럽다고 볼 수 있다. 준호의 엄마는 폭력 이후 준호가 거머쥔 ‘2등’이란 성적에 만족하며 애써 ‘상처’의 존재를 합리화한다.



 맞는 준호를 보면 1등이 꼭 될 필요가 있나 거듭 회의하게 된다. 준호의 등에 선명한 피멍 자국은 우리들에게 묻는다. “그렇게까지 해서 1등이될 필요가 있는가?” 상처는 쓰라리다. 쓰라림은 우리의 양심에 채찍질을 가한다. 얻어맞는 1등이 되느니 안 얻어맞는 4등이 되는 게 낫다. 맞으면서까지 1등이 되고 싶지는 않다. 영화는 폭력을 통해 ‘1등’에 매몰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더욱이 영화는 1등에 매몰된 우리 사회가 당사자로 하여금 1등에서 멀어지게 할 수있다고 암시한다. “1등이 되고 싶다.”며 자신을 찾은 준호에게 김광수는 말한다. “혼자 해봐라. 그러면 1등 한다.” 준호는 혼자 연습에 매진한다. 대회 당일 현장에는 늘 찾던 엄마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그랬더니 준호는 정말 1등을 한다. 어쩌면 1등에 매몰되어 ‘1등’만 강요하는 이 사회야 말로 진짜 1등을 4등으로 만드는 요인일 수 있다. 준호로 치면 그의 손을 이끌고 감 놔라 배 놔라 했던 엄마가 4등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4등이 1등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매질이 아닌 편안하게 그의 손을 놔주는 것이다. 4등이 자기 자신을 위한 4등이 될 때 진짜 1등으로 거듭난다. 



 마지막대회 당일. 준호가 심호흡을 한다. 스타트 신호에 맞춰 물속에 뛰어든다. 그는 그 어떤 때보다 자유롭게 물 속을 거닌다. 햇살을 좇아 앞으로 나아간다. 이날 준호가 거머쥔 ‘1등’의 의미는 여느 때의 그것과는 다르다. 거기엔 한 치의 ‘타의’도 없다. 1등을 하고 현장을 빠져나가는 준호의 모습은 그 어떤 승자보다 찬란하게 빛이 난다. 영화를 보면 거듭 1등에 매몰된 우리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어쩌면 1등만 좇는 우리의 모습이야 말로 가장 4등에 가까운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나슬기의 오층석탑]의 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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