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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필적 글쓰기 Apr 22. 2016

자소서를 공유합니다

취업에의 단상, 작위소개서



 1. 성장과정 [800자 이내]

 만灣을 품은 그림자 섬, 저는 부산 영도影島에서 태어났습니다. 만은 곶과 달라서 물을 쫓지 않고 다만 받아낼 뿐입니다. 파도가 움푹 파낸 홈 주위로 집집이 모여 마을을 꾸렸습니다. 저는 마을을 받치고 있는 백사로 가짜 밥을 지어 먹고, 성을 쌓으며 어린 시절을 지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도시 노동자 반, 어업 종사자 반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냄새를 풍겼지만, 자주 모여 화합했습니다. 의견 충돌시, 서로의 다름 사이의 절충점을 찾으려는 마을 어른들의 노력을 직접 체득했습니다. 동리의 일이라면 컴퓨터 자판과 생선 그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기업의 일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회사란 저마다의 터전에서 묻히고 온 제가끔의 개성을 한 데 뭉쳐 재량을 발휘해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향으로부터 배운 '타인과의 융화'를 토대로 a기업의 역량 있는 인재로 성장할 것입니다.



 2.  지원동기 [800자 이내]

 혁신은 제 몸을 추동하는 강력한 낱말입니다. 대학교 광고 동아리 시절, 임원을 역임하여 동아리 커리큘럼을 쇄신했습니다. 10년여동안 유지돼온 '마케팅 이론 세미나'를 폐강하고 그 빈 자리에 마케팅 실습을 넣었습니다. 다채로운 실습 과정과 '현장에 강한 동아리'라는 포지셔닝을 토대로, 저희 동아리는 교내 행사 홍보를 전임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의 작은 혁신은, 이토록 큰 그림의 단초가 됩니다. 이런 저의 경험은 a기업의 창의적 인재상과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이 프로기사를 상대로 불계승을 거두는 오늘날, 기업의 혁신은 곧 존멸을 말합니다. 저는 광고학적 렉쳐와 실무 경험, 그리고 다년간 다져온 혁신 정신을 토대로 a기업의 홍보를 새로운 지능의 장으로 이끌 것입니다.





내 얘기냐고? 아니다. 내게 부산은, 고등학교 졸업식 중간에 친구들과 빠져나와 기차 타고 3시간을 질러 간 지역이다. 내 고향 청사와 부산 청사에 점을 찍고 직선을 이으면 250키로, 멀다. 내가 참여했던 동아리는 광고완 다른 종목이었다. 광고학 수업도 들은 적 없다. (광고학 수업을 듣는 친구를 기다려 본 일은 있다.) 이에 더해, 나는 나 자신도 제대로 서포트 하지 못하는 주제라, 나보다 큰 덩어리인 집단의 서포터가 될 수 없었다. 상기 자소서는 단지 막 지어낸 순 거짓부렁이다. 그러나 대충해도 지어낼 수 있다. 누구나! 취업 컨설트의 조언과 온라인서 눈동냥 한 단어들을 지지고 볶아 망상의 감미료만 치면 이정돈 쓸 수 있다. 도대체가 자기를 소개하는건지 작위를 소개하는건지 모를 일이라는게 쓰는 내내의 불만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건 작위소개서다



 융화보단 반목이 잦았고, 혁신 보단 안정에 급급했던 일생이라도 자소서 출력값은 달라야 한다. 그래야 먹히니까. 정말 잡아 먹히기 위한 자소서인 것 같다. 그리고 대다수의 준비생들은 '서류 필합 공식'을 얻기 위해 '자소서 특강 프리패스'를 끊는다. 저 프리패스를 들으면 정말 취업문을 free하게 pass 할 수 있으려나, 하는 의문은 필요 없다. 일단은 믿는다는게 중요한거지. "이게 바로 합격하는 자소서에요." 자신을 소개하는 데 대해 남에게 정도正道를 묻고, 또 이를 남이 가르치는 상황은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이건 자기 이름을 옆사람한테 묻는 꽁트다. "저에 대해 좀 알려주세요, 사례는 할게요." 대놓고 주체와 객체가 저촉되는 이 꽁트는 청년을 볼모로 오픈런 중이다. 하지만 도리가 있나. 씹을 수 있어야 비로소 음식이듯, 인사팀이 받아줘야 자소서로서 합격의 효용이 생기니까. 오늘도 뚝딱뚝딱 키보드 공정은 진행된다.



 대기업 면접관, 인사팀 출신의 회사원들의 사직서는 강사 증명서로 변모한다. 업무 일선을 누빌 적 경험에 ₩ 꼬리 달고 장사를 시작한다. '전직'의 어드밴티지는 꽤 쏠쏠하다. 코 묻어 축축한 휴지도 '스칼렛 요한슨'의 어드밴티지를 받으면 624만원의 값어치를 부여받는다. 준비생은 '전직'이 말하는 '현직의 마인드'가 궁금하다. 그들은 기업의 인재상에 어떻게 일신을 구겨 넣을지 알려준다. 인재상의 찍기틀 안에 꼭 차는 반죽이 되는 법을 말해준다. "그래도 첫문장은 특이하게^^"라는 격언도 잊지 않고 챙겨준다. 이를 받들어 매구句가 절절한 개인사로 운을 떼봤자 모든 개성의 귀결은 결국 또 고 뻔한 '인재상'일텐데...



 취업就業, 즉 '직업에 나아감'은 사실 전략일 수밖에 없다. 이제 곧 전장에 떨어질 무장 군인에게 개성 존중을 이유랍시고 총 쥐는 법도 안 알려주고 "멋대로 갈겨!"라고 말하는 짓은 곧 죽으라는 명령이다. 특정 업무를 하는 데엔 특정 성격이 유리할 수 있다. 영업사원 뽑는데 대인기피 증세가 있는 사람을 뽑을 순 없는 노릇이니. 그러나 16만 취준생을 기껏해야 10개 정도의 인재상에 고정시키는 건 가혹하게 느껴진다. 10명을 만나도 10명이 제 각기인 세상에서 말이다. 기업은 정말 그런 사람들을 원하는 걸까. 각색된 10종種의 인재로 혁신을 확신하는 건가. 하도 재미가 없어서 입맛이 떨어진다.



 면접관 앞에서라면 재채기도 꾸밀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콧구멍으로 분무되려는 것들의 반은 아래로 삼키고, 반만 위로 올려 조심스레 취,취, 취. 현실이 이렇다보니 취업하려면 일단은 넙죽 엎드려 비슷한 얼굴을 내미는 수 밖에. 화합을 좋아하며 혁신적이고 끈기가 있는데다 리더십까지 출중한 1등 인재의 짙은 화장을 하고. '첨삭' 없는 개성짙은 민낯은 입사 후에야 한 꺼풀씩 개봉된다. 눈화장 지우고 피부화장 지우듯이 차례로. 속았다 억울해 마시길. 지원자 탓 마시길. 원하시는 인재상에 순종하여 반영한 초상이니. 오히려 합격자 모두의 실제 성정이 같지 않은걸 다행으로 여겨야. 딱 그 다원과 다채의 힘이 그토록 찬양하는 혁신의 동력이리니. 그리고 아무리 작위소개서라 할지라도, 지원자가 사력을 담은 자소서는 좀, 진력을 기해 꼼꼼히 읽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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