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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필적 글쓰기 Apr 29. 2016

우학대 게이트

픽션이니까 찔리지 말고.





 더움이 훅훅 전신을 치받는 날이면 애들끼리 피서 궁책으로 몰려가는 곳이 있다. 교실 양 날개에 달린 두 대의 선풍기는 고여있는 열기를 흐르는 열기로 바꿔 놓을 뿐이었지, 팔월의 불볕을 다스린다기엔 우스웠다. 예열된 오븐기에 갇혀 익고 부풀던 우리는, 수업이 파하는 종이 울리자 교과서도 그대로 열어두고 1층 냉장실로 내달렸다. 교내 인기 피서지, 바로 교장실이다. 교장실의 냉각된 기운은 서른 평 남짓의 실내를 꼼꼼히 메우고도 설 자리가 없어 문의 가는 틈새로 삐져나왔다. 우린 냉기가 스며나오는 나무문 틈 사이에 각각 가장 더운 부위를 대고 오줌을 참으며 십 분을 보냈다. 내부로부터 탈출해 나온 냉기엔 커피의 까만 향과 행운목의 향도 잠겨 있었다. 오후 방문 땐 그 잠긴 냄새의 중간에 짜장 냄새도 자주 섞여 끼쳐왔다. 살지고 윤택한 냄새였다. 




 철 맞은 더위보다 우릴 더 끓게 한 사건이 열사를 앓던 학교를 뒤엎었다. 발원은 대승이의 입이었다. "꾺영이가 우학대 애들한테 용돈 주는 거 봤다니까는." 꾺영이는 각 학년 국어 국사 영어 선생들이 한데 뭉쳐 휩쓸려 다니는 걸 보곤 아이들이 과목명 국 국 영을 따서 지어낸 '단체명'이다. 우학대는 우수학생연대라고 해서, 교원들 중 실권을 틀어쥔 꾺영이들한테 잘 보인 아이들이 괸 모임이다. 대승이는 우리한테 전하는 말로는 제 성에 못 미쳤는지 생수물에게도 알리겠다고 괜한 엄포를 놨다. 아, 생수물은 꾺영이와 대척에 선 선생 집단으로 생물, 수학, 물리 선생들의 모임이었다. 학교 운동회 날짜 못 박을 힘도 없는 인물들이었지만 마음 씀씀이는 넉넉한 편이었다.




 생수물들은 이름 마따나 간 없는 맹탕들인 줄 알았더니, 그래도 정의 앞에선 열 오른 끓는물들이었다. 그들은 꾺영이와 우학대가 맺은 미지의 관계를 열렬히 천착하기 시작했고, 막후에 짜장이나 먹는 교장이 있을 거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껍데기만 의혹이었지 속알은 확신이었다. 아이들은 급식으로 나온 고기 없는 비지국을 먹다 분노했다. 


 "어쩐지 우학대 새끼들 아가리 언저리는 항상 짜장 냄새가 풍겼다"

 "급식에 말간 뭇국이 나온 날이었는데 그 녀석들 하복 셔츠엔 빨간 국물이 튀어 있었다. 그건 분명 교장한테 볶음밥 얻어먹고 곁다리로 떠먹은 짬뽕 국물이 튀어 적신 자국이다."




 이런 가파른 오르막 감정이 아니고서도, 우학대 녀석들은 뒤가 께름한 냄새를 자꾸 흘렸다. 곧 대승이가 탄로 낸 꾺영이와 우학대 간 모종의 유대는 풍문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우학대 연대장을 맡은 현수의 책가방에서 3학년 국어 선생의 친서가 고스란한 돈봉투가 발견된 것이다. 아이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로 증거 제 2호를 반겼다. (*제 1호:대승이의 목격담) 발각된 봉투 안엔 넉 장의 만원과 함께 국어 선생의 제자 사랑이 담겨 있었다.


 

[애정 하는 우수학생연대 아이들아, 師弟同行 이라지 않느냐. 서로 보태며 같이 가자.] 



 스승이 제자에 보탠 것이 가르침일지 깨달음 일지 서너 푼 돈일지 몰라도, 그들의 관계는 긴 해 보였다. 보통의 아이들은 그간 오갔을 사례가 돈뿐이었겠냐, 주관이 판을 치는 수행 평가 점수나 중간, 기말고사 시험지가 몰래 우학대 녀석들 음습한 옆구리로 흘러간 것 아니냐 하며 관자놀이 핏대를 울끈 세웠다. 우학대의 '우수'는 사제 간 뒷문 거래의 부산물이 새긴 명패가 아닐까, 조용히 생각해봤다. 불현듯 얼마 전 2학년 국어 선생의 자질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불만을 늘어놓던 우리 사이에 잽싸게 비집고 들어온 현수 생각이 났다. 그는 제가 욕받이가 돼가면서도 갖은 방편으로 국어 선생을 싸고돌았다. 우린 공부 잘하는 새끼들은 원래 저렇게 선생 편인가, 가재는 게 편 이라더니 현수는 지가 게인 줄 안다느니 하는 순진한 퉁명만 부렸다.




  교내에는 귀 따가운 여론이 통통히 여물었다. 아이들은 수업에 들어오는 꾺영이들에게 보란 듯이 무례한 태도를 날렸다. 꾺영이들은 사지 매인 망아지처럼 분노로 온 몸을 발발 떨었다. 백묵 쥔 손이 얼마나 진동하던지 글씨의 기본 사각틀마저 무너져서 삐뚤빼뚤 어지러웠다. 그러나 신체의 어찌할 바 없는 반사작용 이외엔 어떠한 구체적인 해명도 없었다. 설명도 없었다. 선생들은 우학대 게이트를 입 안에 꽁꽁 가뒀다. 선생을 채근할 수 없는 아이들은 우학대 구성원들을 조준했다. 현수는 처음엔 멍청한 자동응답기처럼 "아니야"만 거듭하다, 더 이상 제 안의 분화구를 막아내기 어려웠는지 이성의 틈새로 분노를 흘리기 시작했다. 꼭 교장실 문 밖으로 질질 새는 에어컨 냉기처럼.



 "정말 깨끗하고 순수한 데가 우수학생연대다."

 "우리 거지야."

 "그간 선생들을 커버 친 건 우수 학생인 우리의 자발적 행위다."

 "3학년 국어가 준 돈은 급식비 못 낸 애들에게 빵 베푸는 데 썼다."



  나는 현수의 입에서 나는 중화요리의 냄새를 봤다. 계절의 변화에도 배변되지 못한 그 누린내는 거짓말하는 현수의 입귀에 걸려 떨어질 줄을 몰랐다. 삼복의 통과와 함께 우학대 게이트에 대한 아이들의 관여도 사위었다. 그도 그럴 것이 끓는물은 끓는점을 잃고 도로 생수물이 되었고, 쿰쿰한 걸 끌어안고 있으면 그 군내가 내 몸에 옮을까 두려운 게 얄팍한 인심이었고, 애매한 정치보단 짝사랑하는 여자애가 바꿔 꽂는 머리핀이 가져다주는 확실한 사랑 감정의 화력이 더 강할 터였다. 아이들이 교장실 문 앞에서 녹은 몸을 다시 얼리지 않아도 될 만큼 바람에도 한기가 서렸다. 나는 종종 미술 실습실로 향하기 위해 교장실 문전을 지나야 했는데, 그곳에서 혹서기 나를 식힌 고마운 냉기 대신 나를 삭힐 납량을 느꼈다. 더위의 늑장이 물러서고 처서가 닥쳐서만은 아니었다. 만사가 역전된 뒤에도 그 억척스러운 짜장 냄새만은 질긴 생명력으로 그곳이 교장실 언저리임을 암시했다. 




주의. 이백 퍼센트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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