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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필적 글쓰기 May 15. 2016

곡성

악마는 시험하고, 우리는 흔들린다.

 


* 스포가 다분합니다. 영화를 본 사람만 읽으세요!!


 악마는 낚싯대에 미끼를 꿴다. 종구(곽도원)는 미끼를 덥썩 문다. 악마는 종구를 상대로 시험한다. 의심에 흔들리느냐 하는 시험이 그렇다. 악마는 의심하며 무너지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며 조롱한다. 막판에 무너진 종구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건 한 인간은 인간이어서 그렇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첫 시험은 '외지인(쿠니무라 준)'이다. 의문의 사건이 터지던 중 마을엔 소문이 돈다. "외지인이 귀신"이란 소문이 그렇다. 여기에 일광(황정민)이 거든다. 일광은 종구에게 "일본놈이 귀신이야."고 말한다. 악마는 미끼를 던진 것이다. 악마는 종구가 어떤 반응을 보이질 기다리고 있다. 종구가 의심하여 동료 경찰과 자신의 집을 찾았을 적 외지인이 보이는 건 의미심장한 표정이다. 


 두 번째 시험은 '무명(천우희)'이다. 외지인이 죽기 무섭게 일광은 종구에게 전화를 한다. 다급하게 말한다. "진짜 귀신은 무명이다." 악마는 의심의 두 번째 미끼를 던졌다. 의심하여 종구가 판단을 그르치길 기대한다. 실제로 결과는 그렇게 된다. 무명과 마주한 중에 종구는 갈팡질팡한다. "일광과 외지인은 한 패"란 말을 듣고도 마음 속에 자리잡은 '의심'의 벽을 허물지 못한다. 결국 그 의심은 갖은 정황들, 요컨대, 무명의 손, 머리핀, 옷 등과 결부되어 하나의 확신이 된다. 종구는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집에 가선 안 된다는 무명의 말을 무시하고는 집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종구는 의심을 뿌리치지 못하고 무명을 귀신이라 단정 지었다. 



 묘하게 닮았다. 종구의 처지 말이다. 신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건들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그럼에도 아담은 악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선악과에 손을 대고 만다. 악마가 유혹했을 무렵 아담은 끊임없이 의심했을 것이다. 물론, 악마는 그 의심을 부추겼을 것이다. 신과 악마 사이에서 아담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무명과 일광 사이에서 난처해하는 종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종구는 시험받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종구의 모습에 아담이란 이미지가 얹히며 도출되는 메시지는 종구의 이 같은 '흔들림'이 보편적인 인간의 '흔들림'이란 사실이다. 


 의심과 그로 인한 흔들림은 실로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양이삼(김도윤)을 보라. 그는 '외지인은 악마다'는 의심을 품고서 그를 찾아 동굴로 떠난다. 양이삼과 마주한 외지인은 말한다. "네가 나를 찾은 건 네가 마음 속에 품은 그 의심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곡성 마을에선 숱한 사람들이 죽었다. 의심해서다. 종구가 무명에게 묻는다. "하필, 왜 내 딸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야" 무명은 답한다. "의심하여 남을 죽였기 때문이다." 양이삼의 의심을 확인한 악마는 그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그것은 한 인간의 영혼을 갈취하는 작업이다. 아마도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희생당했을 것이다. 외지인의 집에 쌓여 있는 마을 사람들의 사진들은 마을 사람들이 양이삼과 마찬가지로 '의심'을 품어 희생당했음을 방증한다. 마을 사람들은 악마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피해자가 된 셈이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는 우리 자신도 흔들린다. 영화는 숱한 맥거핀을 동원한다. 갖은 장치들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종구처럼 끊임없이 의심하도록 만든다. 외지인을 묘사한 영화의 모습을 보라. 분명, 영화 초중반까지 외지인은 무고한 희생양처럼 나온다. 그 모습엔 '악마적 모습'이 담겨 있지 않다. 앞서 남은 외지인에 대한 이미지 잔상들은 막판 결말에 다다르고도 그것이 과연 사실인지 의심하도록 만든다. 무명의 앞에서 종구가 갈팡질팡할 때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갈팡질팡한다. 우리가 종구요, 종구가 곧 우리다. 무명에 대한 의심이 남아 있기는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악마가 미끼를 던졌을 때 그것이 월척하길 바라는 대상엔 영화를 보는 우리들도 포함된다. 악마가 양이삼의 사진을 찍을 때 함께 사진에 찍히는 건 영화를 보는 우리들이다. 즉, 영화 막판 악마는 의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관객들의 영혼도 갈취한다. 



 우리는 의심하고 끊임없이 흔들린다. 별수없는 인간이어서다. 만일, 누군가 딸이 미쳤고, 그 딸을 저주한 게 외부에서 온 외지인이란 소문을 듣는다면 그 사람은 필연 외지인을 악의 주범으로 여기고선 한 방 먹이길 계획할 테다. 종구가 효진(김환희)의 실내화를 보고서 외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건 결코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다. 종구가 유별난 성격을 지닌 인간이라 그러는 건 더더욱 아니다. 영화가 그리는 건 의심에 흔들리고 악마에 놀아나는 보편적인 인간의 군상이다. 영화를 본 직후 우리는 이렇게 물어봐야 한다. 나와 종구는 과연 다른가? 악마의 미소는 음흉하기만 하다. 






[나슬기의 오층석탑]의 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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