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을 범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홍길동(이제훈)은 탐정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율도국을 세운 서자 홍길동은 잠깐 머리에서 지워버리자. 대신 현장의 족적을 보고서 범인의 키와 몸무게를 유추하는 셜록 홈즈를 기억 속으로 끌어들이자. 영화 속 홍길동은 제법 탐정다운 티가 난다. 홍길동은 김병덕(박근형)의 집을 살짝 훑어내는 것만으로도 김병덕과 그 가족의 신상을 단번에 꿰뚫는다. 홍길동이 그려내는 '빅 픽처' 역시 남다른 그의 추리력 덕이다.
무엇을 추리하는지가 중요하다. 홍길동은 내내 추리한다. "어머니를 죽인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 그렇다. 겉보기엔 김병덕인 듯보인다. 홍길동도 그렇게 믿고서 김병덕을 찾아 나선다. 영화는 홍길동이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김병덕을 찾으러 떠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한데 실상은 다르다. 배후에 더 큰 뭔가가 있다. 홍길동이 추리 끝에 내리는 결론은 김병덕 역시 자신의 어머니와 다를 바 없는 피해자란 사실이다. 홍길동이 보기에 김병덕의 손녀들은 다른 누구보다 자신의 처지와 닮은 듯보인다.
광은회. 김병덕이 홍길동의 어머니를 쏘아 죽인 이유는 하나다. 그렇게 하지 않고선 자신이 살지 못했을 테니까. 광은회는 김병덕으로 하여금 홍길동의 어머니를 쏘아 죽이게 한다. '소중한 무언가를 지킨다'는 생각에 김병덕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총을 탕 쏜다. 홍길동의 어머니를 죽인 진짜 범인이 있었으니 바로 광은회였던 것이다. 홍길동과 마주한 순간 김병덕은 끝내 '사죄의 마음'을 전하지 않는다. '거짓된 말'이라도 하라며 눈물을 흘리는 홍길동에게 김병덕은 오히려 "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자신은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디까지나 김병덕 역시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김병덕은 그럼으로써 자신을 가해자로 내모는 현실에 저항하는 거다. 그러한 행동이 '신념'의 발로임은 동이(노정의)의 대사에서 엿보인다. 동이는 "할아버지가 악몽으로 잠을 설쳤다"고 홍길동에게 말해준다.
광은회가 어머니를 죽인 진짜 범인이란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 광은회란 조직은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논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마을은 왜 사라졌나? 혹은 사라질 뻔했나? 강성일(김성균)은 말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계속 이어나간다. "그 중 한 부류의 희생은 정당한 일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 희생이 정당한 종류의 사람들로 여겨졌다. 광은회가 마을 사람들을 소멸시키는 계획을 짠 것은 "필요에 따라 소수의 희생은 정당하다"는 신념이 그들 마음 속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소모품 취급당했다. 결국 홍길동의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광은회란 사실은 그로 대변되는 사회적 논리야 말로 홍길동이 심판해야 할 대상임을 시사한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죽음이 강요된 것도, 김병덕이 양자택일의 상황에 직면한 것도 이런 무자비한 논리가 그들을 사지로 떠민 것과 무관하지 않다.
"진짜 범인을 범인이라 말하지 못하고" 홍길동은 이 사회를 보며 그렇게 읊조릴지 모르겠다. 결코 낯선 논리가 아니다. 대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논리는 지금도 이 사회에 만연하다. 용공 조작 사건은 그렇게 터지는 거다. 영화에서 광은회가 꾀하는 '마을 소멸' 계획은 어딘가 기시감이 짙다. 비슷한 일이 과거에도 벌어졌다. 광은회의 무자비한 계획을 보며 제주 4.3 사건을 떠올린 건 비단 나만이 아닐 테다. 홍길동은 진짜 범인을 찾았다. 추리 끝에 명쾌한 결론에 당도했다. 홍길동은 진짜 범인과 싸우기로 다짐한다. 악몽에서 해방된 홍길동은 먹던 약을 끊고는 캐러멜을 입에 넣는다. 나는 홍길동의 싸움을 응원한다. '광은회'는 허구의 존재이나 그 본질은 실존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무자비한 논리는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돈다. 영화 속 홍길동이 세우는 '율도국'은 조작된 피해자가 없는 그런 세상일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