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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필적 글쓰기 Mar 18. 2016

"쟤는 저렇게 때렸대요!"

아동 학대 범죄 보도의 비상식에 대해


 눈에 넣으면 아프긴 할 거다. 눈에 담으면 오죽잖게 예쁘다. 조카 이야기다. 아직 세 치도 자라지 못한 다섯 살 난 아이여도, 장난 삼은 일격의 할큄은 피부에 기다랗고 발간 조흔을 일으킨다. 순간 스친 따가움에 짜증이 밀려 "이모 아프잖아!"라고 소리치더라도 이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이모 미안해"라며 제 입으로 만든 조그만 바람을 상처 위로 '호~' 불어주는 그 아이를 어찌 더 나무랄 수 있을까. 이렇다고 해도 나는 아이들 박애주의자가 아니다. 내게 그들은 오히려 어려운 대상이지 덮어놓고 애정 할 대상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내가 내 조카를 사랑하는 이유는 '언니의 딸'이라는 명징한 혈연관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감히 소파 방정환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나에게도, 아니 '최소한'의 인륜만을 지니고 사는 그 누구에게라도, 이번 원영이 사건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나의 언니는 잊고 지낸 건지, 평소 자중한 건지 모를 상욕을 잔뜩 늘어놨다. 종편 뉴스 채널에서는 [속보] 말머리를 달아 놓고 아동 학대 전문가, 범죄 심리 전문가 등을 불러 장시간 좌담을 방송했다. 방송 진행자들은 친부와 계모가 아이에 행한 악행을 악센트 넣어가며 발음했다. 강세가 거세질수록 주목도는 높아진다. 포털의 사정도 같았다. 기사들은 부모가 행한 강제 금식, 폭행, 감금, 폭언 등 범죄 행위를 세세히 적었다. 행위의 타임라인까지 내건 기사도 있었다. '락스 세례'라는 구체적인 학대 방법도 여과 없이 적혔다. 학대 당시 원영이가 보였던 처절한 반응까지, 가해 부모 자백이 곧 기사였다. 



 그러던 중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을 보게 됐다. "사진 보니 엄청 귀엽게 생겼던데..." 순간 놀랐다. 도대체 어디서 피해 아동의 사진을 본거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의구심의 출구는 싱겁게 찾아졌다. 포털에 대충 '원영이'만 검색해도 아이의 사진이 떠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가해 부모의 얼굴은 광대뼈도 아끼며 감춰주는 우리 사회의 '관용'에 반해, 원영이 사진은 싸구려 전단처럼 기사 이곳저곳에 나붙었다. "아이 사진을 써도 되겠습니까?"라는 물음에, 회답의 주인이 없던 것은 인정한다. 이미 금수가 된 부모에게도, 안타깝게 주검이 된 아이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렇기에 "주인이 없으니 사진을 쓰자!"가 아니라, 그렇기에 "쓰지 말자!"가 되었어야 했다. 원영이 사진이 없다고 해서 기사의 완성도가 침식되지 않음은 기자 자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이 특수 상황일까. 전례만 나열해도 가쁘다. 조두순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나영이 사건의 경우엔 그 선정성이 더했다. 가해자의 범죄 수법은 고작 인터넷에 떠도는 요리 레시피보다도 더 자세하게 열거됐다. 더불어 나영이의 수술 경과와 장래에 닥칠 신체장애는 몇 년이 지나서도 회자되었다. 정작 조두순이 받은 실형과 아연할 감형 이유(만취 상태...)는 쉽게 잊혔다. 이렇듯 현 범죄 보도는 복합 골절된 아동 성범죄, 아동 학대에 대한 사법 체계에는 느슨한 보도 태도를 보이면서, 잔인한 범죄 수법만 앞다퉈 알린다.  



한국 신문 위원회 <신문윤리실천요강>


-제3조 보도준칙

(3) 선정보도의 금지 : 기자는 성범죄, 폭력 등 기타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 행위를 보도할 때 음란하거나 잔인한 내용을 포함하는 등 선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되며 또한 저속하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
-제7조 범죄 보도와 인권존중

(3) 미성년 피의자 신원 보호 :  기자나 편집자는 미성년(18세 이하)의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사진 및 기타 신원자료를 밝혀선 안된다.



 

 기사엔 팩트가 중요하다. 팩트를 전달하는 것이 기사다. 하지만 이 명제에 기대기엔 범죄 보도로 둔갑한 선정 보도가 과다하다. 아동 학대 범죄 보도에서 '피해 아동 사진'을 사용하면 부모의 형량이 늘어나나? '락스 학대'의 구체적 묘사가 범죄 예방 효과를 가질까? 주검이 된 아이의 넋은 사진 없이도 위할 수 있다. 언론이 진정으로 사후약방문을 경계하고 사전 예방을 위한다면, 허술한 사법 체계에 대한 경각심을 중론으로 만들 수 있는 기사가 필요하다. 도끼를 바늘로 가는 노력으로 범죄 보도 지침指針을 쇄신해야 한다. 겨우 abc나 익혔을 법한 일곱 살 어린아이에 대한 '도의'를 말하는 것이다. 사후에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전단처럼 이 손, 저 손에 쥐어져 떠도는 아이의 얼굴을 가려줘야 한다. 그것이 진짜 아이를 위하는 일 아닐까. 1분의 동정을 위해 7년의 인생을 희생시키는 일이, 언론에 의해 자행되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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