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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필적 글쓰기 Sep 10. 2016

여자의 냉장고를 부탁해

냉장고의 유성성有性性



 예능이 초야다 시가다 해외다 가다 가다 냉장고 속까지 진출했다. 냉장고가 가정으로부터 뜯겨져 나온다. MC들은 스튜디오에 재배치된 스타의 냉장고 속을 뒤진다. 냉동 사골국과 냉동 조기엔 스타 개개인의 서사가 따라붙는다. 냉장고에서 나온 의심스런 물품들은 싱글 게스트의 숨겨진 연인에 대한 추궁의 근거가 된다. 대중들은 화려한 스타들의 수수한 밑반찬과 부패한 식료품이 피력하는 '서민성' 대해 친밀을 느낀다. 이를 내적 친목이라고도 한다. MC들의 합도 좋다. 수문장처럼 냉장고 좌우에 선 그들은 한 평짜리 좁은 냉장고 안에서 재치를 찾아낸다. 김성주와 정형돈이 그랬고, 김성주와 안정환이 그러고 있다. 매주 새로운 게스트와 여덟 명의 셰프를 버무려 '요리'하는 능력이 그들에겐 있다. 보고있으면 배고프면서 유쾌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 셰프의 음식을 먹지 못해 약오른 심정을 제외하고도 말이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종종 '젠더 스테레오타입'의 전형을 보인다. 노총각 게스트는 혼잡한 냉장고 질서를 MC에게 들키고 결혼을 독촉받는다. 결혼을 하면 파장 직전의 냉장고에 새 장이라도 들어선다는건가. 기혼 게스트의 경우에는 더욱 노골적인 성 편견이 부여된다. 부부 모두가 연예인인 경우에는 대중이 출연자의 배우자를 알고 있기에, 그 관음적 시선이 더욱 노골화된다. 가령 기혼 여성 게스트의 냉장고에서 곰팡이 자란 식료품이 나왔을 경우, MC들은 이구동성으로 여성 게스트의 살림 솜씨에 대해 야유를 보낸다. 한 여성 게스트의 경우에는 시부모님에게 혼날 일까지 걱정하기도 했다.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야유를 한 것이 아니라, 스튜디오에 있는 게스트가 마침 여성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조롱적 야유가 해당 게스트에게 가해졌다면 뭐, 언뜻 이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부정된다. 기혼 남성 게스트 냉장고 속의 정연한 반찬 놓임새와 정갈한 찬솜씨는 곧바로 스튜디오 '밖'의 여성 배우자에 대한 상찬으로 직결된다. 같은 맥락으로, 기혼 남성 게스트의 냉장고에 유통기한 지난 식료품이 발견되면, 해당 남성 게스트는 얼굴을 쓸며 머쓱해하고 MC들은 그의 '와이프'가 입을 이미지 타격을 걱정한다. 음식을 잘 하면 여자가 칭찬을 받고, 음식을 못 하면 여자가 창피를 당한다.
 

 왜냐하면 냉장고는 여성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냉장고는 남자의 것이 아니다. 냉장고의 소재는 '남성적 서재'가 아닌 '여성적 주방'이다. 우리 대다수는 여전히 주방을 여성적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남자가 주방에 들어가면 어디가 떨어진다더라,는 구전되는 성역할의 아포리즘이다. 세끼는 여자인 엄마가 차리는 것이었고, 엄마가 밥상을 완성하면 서재나 마루에 있던 아빠는 상을 받는 형식. 이것이 우리가 겪어온 사회적 맥락이다. 부계중심사회를 위해 밥이 차려지는 주방은 모계 중심으로 보존되고 상속된다. 냉장고는 인류 전반의 소유가 아니라 여성 특수의 소유처럼 비친다. 냉장고는 음식을 저장하고, 이를 관할하는 여성은 음식을 관장하는 주체이다. 이렇긋 요리와 여성 간의 불가분의 관계는 오래도록 깨지지 않는 성역할의 궤도였다. 여성적 공간에 머물던 냉장고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그리고 그 속이 드러났을 때, 냉장고는 여성에 대한 판단의 장이 된다. 냉장고의 관리자는 필연 여자일 것이라는 사고틀의 발현이다. 난장인 냉장고는 여자의 수치이고, 정돈된 냉장고는 여자의 긍지라는 생각엔 여성과 냉장고가 이원일체란 인식이 각인되어 있다. 냉장고에 대한 한 남녀는 비등한 지분을 공유하지 않는다. 소유권은 여성에 과중돼 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이러한 맥락에서 <여자의 냉장고를 부탁해>가 된다. 결국 이 프로그램에선 '어머니'와 '아내'가 살림해 놓은 냉장고를 참고해 셰프가 훌륭한 요리를 해낸다는 게 주요 맥락이다.


여성의 탈脫냉장고는 여전히 멀었다. 가정이란 소집단이 형성되면 일반적으로 여성은 주방에 예속된 존재로 전락한다. 정작 스튜디오의 주방엔 남성이 전부인 프로그램에서, 겨우 냉장고로부터 도출해낸다는 특징이 '여성'인 이 빈곤한 상상력이 끝내 아쉽다. 원해 낚시로 잡아온 신선한 도미를 곧바로 냉동고에 얼리는 모습이랄까. 참신한 기획과 구성이 구태에 의해 닳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쩐지 냉장고의 무성번식은 멀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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