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남 밑에 서 보는 것
난 키가 무척 컸다. 초등 6학년에 대략 지금 키에 도달했다. 그때만 해도 반에서 키순서로 뒤에서 열 번째 안에 들었다.
중3이 되고 내가 작다는 걸 첨 인지 했다. 부반장이었을 거다. 시력도 나빠서 앞자리에 앉았다. 반에서 키 순서로 앞에서 여섯 번째에 들었다. 하루는, 뒤에서 자습시간에 두 녀석이 싸우면서 떠든다.
"조용히 해!"
라고 소리쳤다. 말을 안 듣는다.
가서 말렸다. 협박도 했다. 그러자 싸우던 녀석이 내 머리를 주먹으로 쥐어박으며 한마디 했다.
"쪼그만게 까불어!"
순간, 버럭 화가 났다. 이 넘이 분명히 몇 년 전만 해도 나한테 찍소리도 못하던 넘이었다. 한 대 치려고 맘먹는데, 주먹이 아래로 내리 치는 게 아니라 한 참 위로 어퍼 컷을 날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 넘이 이제 내 머리 위에서 논다. 아니 내가 작아진 거다. 조용히 자리로 왔다.
"쪼그만게 까불어!"
소리 없이 울었다. '아 나 이제 쪼그만 놈이구나!'
한 2주 후, 그 넘과 같이 집에 가는 길에 물었다.
"너 예전에 나한테 찍소리도 못했는데..... 기억나냐?" / "응 기억나"/ "기분 어땠어?"/ "더러웠지!"/ "근데 왜 암말 안 했어?"/ "맞을까 봐"
'아! 이런 거구나. 쬐그만 놈의 삶은!'
중학 2학년 동생이 먼저 안경을 꼈다. 내게 닦달을 했다. 안경 끼라고. 난 내가 눈이 나쁘다고 생각조차 못했다. 그땐 안경이 유행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안경을 끼곤 했다. 심지어 알이 없는 안경을 끼는 애들도 나왔다. 그래서 난 반작용으로, 안경을 안 꼈다. 그렇게 버티다가 버티다가, 중3 때 어머니께 끌려, 안과에서 검안하고, 안경점에서 안경을 맞추었다.
처음 안경 낀 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는데 새로운 안경이니 어질 어질 했다. 어? 그런데... 이게 웬일? 세상이 밝아졌다! 버스 번호가 보인다! 버스 형체 , 번호의 형체 보고 탔었는데 버스 번호 숫자가 명확하게 보인다! 세상에! 완전 딴 세상이다. 멀리서 다가오는 여학생의 얼굴이 보인다! 완전 신세계였다!
그제야 깨달았다. 남들은 이런 세상을 이미 보고 있었다는 것을. 나만 못 보고 있었는데 이제야 보게 된 것이었다.
이해라는 것은 under + stand, 남 밑에 서는 것이다.
덕분에 나는 지금 내가 키 작음이 오히려 감사하다. 계속 공부 잘하고, 키 크고 그렇게만 살았으면 "쬐그만 놈"의 삶이 어떤지 모르고 살아갔을 거기 때문이다.
안경 낀 날의 그 충격을 기억한다. 난 세상이 그렇게 안 보이는 건 줄 알았다. 그동안 나만 못 보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도 그걸 모르고 살았다.
그럼 아직도 내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고 사는 것은 또 뭐가 더 있을까?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밑에 서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알기 위해서, 책도 보고, 듣기도 하고, 페이스북도 읽는다. 다큐멘터리도 보고 영화도 본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있다. 그들의 밑에 서보지 않아서 우리는 그들의 삶이 어떤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주변에는 북쪽에서 탈출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삶이 어떤지 이해하지 못한다.
밑에서 설 기회가 없다면 다가가서 듣기라도 해야 한다. 이해는 밑에 설 때 가장 잘할 수 있다.
2016. 7. CC#6 vocal variety을 준비하며,
2015.09.01. 11:46 썼던 http://blog.naver.com/wonhyukc/220468239472을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