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책은..
1. 아직도 가야 할 길, 스캇 펙
2. 도쿠가와 이에야스, 야마오카 소하치
1번 책으로 사랑을 배웠고,
2번 책으로 인내를 배웠다.
두 책의 공통점이 있다. 스캇은 세상은 넓은 고해라고 했고, 이에야스는 기나긴 고행이라고 했다. 둘 다 이렇게 세상을 어려운 것으로 얘기하면서 이해하고 인정하면 더 이상 세상을 어렵게 느끼지 않고 품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 방법론으로 스캇은 사랑을, 이에야스는 인내를 이야기했다.
두 사람을 알게 된 것은 나로선 행운이었다.
어렸을 때 항상 마음속에 세상에 대한 두려움, 불만, 분노, 슬픔 같은 것들이 문득문득 나타나곤 했다. 이 것들에게서 자유롭게 해 준 사람들이었다.
이번 주에 스케줄이 비어 짬이 났다. 일본 비행기표를 알아보던 중, 시즈오카 항공권이 제일 저렴했다. 갑자기 이에야스가 생각났다. 구매 완료.
시즈오카는 이에야스가 6살 때 볼모로 잡혀간 이마가와라는 가문의 지역이었다. 이 지역 귀족 딸과 결혼한 이에야스는 청년이 된 이후 이 지역을 떠나 가문을 부흥시키고 끝내 전국을 거머쥐게 된다. 노년에 아들에게 정권을 물려주고 다시 시즈오카의 슨푸 성에 머물며 여생을 보낸 도시였다.
일단, 이에야스 어렸을 때 이름이 다케치요 인데, 다케치요 동상이 시즈오카역에 있었다. 다케치요를 만나고, 노년의 슨푸성을 가고, 분명 이에야스도 근처에 있는 후지산을 갔을 테니 후지산을 가는 것으로 크게 계획을 세웠다.
그 밖에 시즈오카에 뭐가 유명한지 찾아보았다.
녹차, 와사비, 참치, 잔새우잔멸치 그리고 오뎅
1. 다케치요
시즈오카역 북쪽 출구 밖에 동상이 있다. 일본 전국시대에는 배신이 난무해서 인질을 주고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6살부터 14살까지 인질로 당시 스루가(옛 시즈오카 이름)에 머물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 튀지 않고 평범하게 지냈으며 바둑을 좋아하고 방콕했던 것 같다. 예민했을 소년시절 눈칫밥을 먹으며 인내를 배웠겠지. 다양하고 복잡한 일들을 겪을 때마다 인내심으로 버티고 버텨 결국 전국 패권을 차지하게 된다.
세상은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기나긴 여정
인내가 이 여정을 버틸 수 있게 해 주고
끝내는 평화와 풍요를 안겨준다.
시즈오카역 다케치요상
2. 후지산
시즈오카에서 1시간 전철 타고 후지노미야 마을에서 후지산을 만났다.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웅장했다. 정말 하나의 분화구가 만든 거대한 산 하나가 눈앞에 펼쳐졌다. 혼슈(일본 본토 중 가장 큰 섬)는 후지산이 낳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릴 적 부모와 떨어진 다케치요는 후지산을 엄마처럼 여기고 버티지 않았을까?
'후지산은 도쿠가와의 엄마. 엄마의 품에서 평온함과 평정심을 배운 다케치요는 14세 때 이 지역을 떠나 전국을 평정하고, 다시 노년에 이곳으로 돌아와서 부근함을 느꼈갰지.'라는 상상을 하면서 다시 시즈오카로 돌아왔다.
삶은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화내거나 불만을 가질 일이 없다. 분노는 적이며,
평정심을 유지하면 매사 명료하고 최적의 판단을 하게 된다.
후지노미야역에서 본 후지산
3. 슨푸성터
시즈오카 현청 바로 옆에 이마가와 가문의 슨푸성이 있다. 원래 주인은 전국시대 초창기 가장 잘 나가던 이마가와 가문이었다. 시즈오카뿐만 아니라 하마마쓰 지역까지 큰 세력이었지만 오다 노부나가에게 패해 한순간 몰락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에야스도 가문을 제대로 일으킬 기회를 잡게 된다.
이마가와 가문에 인질로 있었지만 교육도 받았고 또 풀려나면서 자유롭게 되었다. 안 좋은 것 같은데 좋기도 하고. 인생은 정답이 없는 걸 몸소 느끼게 된다. 오다의 잘 나감도 끝내 배신으로 뒤집히고, 도요토미의 욕심도 끝내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을 경험한다.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것을 모르면 반드시 해를 입는다. 승리와 패배를 모두 안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두루 안다는 것. 성장과 번영의 기반은 지는 교훈으로 더 얻을 수 있다.
슨푸성터와 저 멀리 가운데 후지산
4. 그 밖에
오뎅 최고다. 오뎅 모리와세(모듬)과 오차와리(녹차소주)를 시켰다. 특히 오래 끓인 무와 한펜(넙적오뎅)이 제일 맛있다. 오뎅 거리보다 시즈오카역 남쪽 출구 부근 왼쪽 1층에 식당가가 있는데 그곳에 이자카야들이 더 깨끗하고 여유가 있다. 점심때부터 오픈을 하니까 좋았다.
참치를 먹으러 시미즈 어시장. 관광지 같은 느낌. 마구로동을 먹었다. 개인적으로 더 싸고 지방이 적은 아카미(속살)를 좋아하는데 등살이나 도로 위주의 참치가 많았다.
와사비는 최고. 와사비와 관련된 과자, 음식은 맛있었다. 특히 와사비 츠케는 어디에나 잘 어울렸다. 시내에서 와사비동 이라는 음식을 먹었는데 와사비와 참치의 조화였다. 시즈오카 특산 점심. 가장 맘에 든 점심식사였다.
녹차. 일본 녹차는 너무 직설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싼 녹차 가루 위주로 먹어서 그런지.. 은은함이 아니고 빡이다. 샛푸른 진한 녹색. 그리고 진한 맛. 전혀 일본스럽지 않은 것 중 하나.
잔새우, 잔멸치. 모양이 이쁠 뿐 큰 감동은 없었다.
시즈오카역 전철 2번 플랫폼에 가면 서서 먹는 아주 작은 우동 소바 가게가 있다. 출근하는 현지인에 섞여서 500엔짜리 따뜻한 소바 한 그릇 먹는 것도 즐거웠다.
처음 갔던 시즈오카.
오랜만에 이에야스에게 빠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인내, 차분, 중도, 경험, 건강 등 나 나름대로 다시 이에야스와 나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