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법인 동료와 저녁 식사를 했다. 이 지역 전문가인 회사 동료는 저녁 요리를 다양하게 주문했다. 산지오베제 와인이 너무 맛있다고 얘기를 하니 그가 와인을 한 병 시켜주었다. 나는 어떤 와인인지, 이건 무슨 품종으로 만들었는지, 어느 지역인지 이것저것 물었다. 그는 씨익 웃으며 느긋하게 말했다.
"와인은 머리가 아니고, 가슴으로 마시는 거예요."
이 한마디에 나는 차분해졌다. 자세를 고쳐 앉고 와인 오픈을 지켜보았다.
'그렇구나, 와인은 느끼는 거지. 알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즐겨야지.’
잔에 담긴 와인의 색과 향에 집중했다. 맑은 루비빛 그리고 체리가 연상되는 과일향. 이전에 마셨던 산지오베제와 같은 느낌이었지만 더 향이 강했다. 맛 또한 경쾌한 신맛과 아주 약간이지만 부드러운 떫은 맛이 느껴졌다. 30분 정도 지나니 통나무, 커피 같은 냄새도 났다. 통나무는 오크통향인듯했다. 시간이 갈수록 오크통 냄새가 더 진해지고 다채로운 향들이 어우러졌다. 와인은 물처럼 찰랑거렸고 춤을 추듯 나의 목 안으로 넘어 들어왔다.
충분히 즐기는 모습을 본 동료가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키안티 클라시코’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정통 키안티 지역이 있다고 한다. 이 지역을 키안티 클라시코라고 부른다. 이 지역에서 검은 수탉 라벨의 와인을 생산한다. 검은 수탉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도시 국가였던 피렌체와 시에나는 계속해서 국경 다툼이 있었는데, 이 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재미있는 방법에 합의했다. 각자 수탉을 준비해서 새벽의 첫 울음소리에 각각의 기수들이 말을 타고 달려 만나는 지점을 경계선으로 정하자고 합의했다. 피렌체는 작지만 튼튼한 검은 수탉을 준비하여 전날 쫄쫄 굶겼다. 시에나는 크고 우렁찬 수탉을 준비해 전날 아주 잘 먹이고 편안하게 해 주었다. 당연히 배고픈 피렌체 닭이 일찍부터 울어 댔고 피렌체 기수가 12km를 더 달렸다고 한다. 피렌체가 더 지혜로웠다. 키안티 클라시코 사람들은 이 지혜로움에 대한 자부심의 상징으로 자신들의 정성과 혼이 담긴 와인에 검은 수탉 마크를 붙여 만들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이날 마신 와인은 안티노리사의 키안티 클라시코, 페폴리.
안티노리는 와인너리(메이커) 이름이며, 페폴리는 와인의 이름이다. 안티노리는 또 언급하겠지만 티냐넬로, 솔라이아라는 슈퍼 투스칸 와인과 각종 고급 토스카나 와인을 생산하는 이탈리아 최고의 와이너리이다. 정말 다양하고 품질도 천차만별인 와인의 세계에서 나를 끝까지 지켜준 고마운 와이너리이다. 내가 이것저것 다른 나라의 와인들을 시도하면서 실망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안티노리의 와인을 마시면 '그래 와인은 이래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와인의 세계로 다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적어도 나에겐 안티노리 와인은 절대 배신한 적이 없다. 아직 안티노리 하이앤드 와인을 다 마셔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안 마셔봐도 안다. 또 나를 지켜줄 거라는 것을.
아직까지도 이 기억을 잊지 못해 1년에 한 번씩은 페폴리를 마신다. 배달 피자나 칼국수, 만두와 같이 마신다. 밀가루 음식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