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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몬테 II

바르바레스코

by 진원재 Willie Chin




사람들에게 와인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거의 대부분 ‘좋아는 하는데 잘은 모른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절대 속으면 안 된다. 와인을 대하는 데 있어서 '좋아한다.'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와인은 사랑하게 되거나 혹은 아니거나 둘 중 하나다. 와인을 그냥 적당히 좋아할 순 없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늪이다. 적당히 발 넣고 있을 순 없다.


여기서 헷갈리지 말아야 할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와인을 술(알콜보충)로 마시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와인을 정말 많이 마시지만, 와인을 사랑하진 않는다. 와인의 향이 열리기도 전에 한 병을 다 비운다. 이들이 원하는 건 알콜이다. 와인이 꼭꼭 숨겨놓은 속마음과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이 없다. 아주 비매너들이다. 와인은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변하고 다양한 향과 맛을 보여주면서 대체로 1~2시간 전후로 절정을 이룬다. 물론 몇 시간이 지나도 안 열리거나 따자마자 강렬하게 다가오는 와인도 있지만, 어쨌든 꼭 와인과 대화해야 한다. 그것이 와인에 대한 예의다.


또 다른 부류가 있다. 이들이 거의 대부분인데, 와인은 그냥 분위기 있는 술일뿐이다. 색과 병이 예쁜 술 정도다. 이런 사람들에게 와인에 대한 사랑을 강요해선 안된다. 겉으로 좋다고는 하지만 아무 생각이 없거나 스트레스는다. 이들에게 와인을 권하는 것도 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와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와인러버 후보들이다. 이들은 질문을 한다. '이걸 왜 마시지?', '무슨 와인이지?', '무슨 포도지?'

이 정도는 되어야 와린이로 성장할 기미가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잘만 크면 드디어 와인에 빠지게 된다. 와인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안다. 우리 모두 사랑에 빠져있다는 것을.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는 것을.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언어로 살고 있는 포도당 당원이라는 것을.


같은 회사에 당원 두 분과 이탈리아 와인의 여왕으로 불리는 바르바레스코 Barbaresco를 처음 마셨다. 우리는 여왕님을 모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생각에 들떠 있었다. 당원들과 와인을 함께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와인을 혼자 마시는 것도 좋지만, 여러 당원들이 함께 하면 일단 여러 병을 마실 수 있고, 내가 느끼지 못했던 것들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피에몬테 최고 와인을 꼽으라고 하면 남성적인 바롤로 Barolo와 여성적인 바르바레스코를 꼽는다. 둘 다 네비올로 품종으로 만든다. 그런데 바롤로 지역의 와인은 중후하고, 바르바레스코 지역의 와인은 우아하다고 한다.


'네비올로는 입안을 조이는 탄닌이 강한데 어떻게 우아할 수 있지?'


색과 향은 일반 네비올로와 비슷했다. 브라운색이 느껴지는 젖은 숲과 가죽 향기, 꽃향기, 과일향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첫 모금을 마셨을 때, 분명 탄닌은 강한데, 그것은 부드러운 강함이었다. 여운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바닥에 끌리는 치맛자락의 우아함이었다.


바르바레스코는 대비마마였다. 할머니 같은 대왕대비마마도 아니고, 새댁 이미지의 중전도 아니었다. 세상을 품고 있는 중년의 경험과 지혜로움이 느껴지는 왕의 엄마, 자연의 엄마.


당원들과 3시간을 함께 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대비마마와 헤어질 시간을 아쉬워하며,

마지막 작별의 인사와 함께


'꿀꺽'



Produttori del Barbaresco

Barbaresco

네비올로

옅은 루비색

체리향, 담배향, 가죽향, 젖은 낙엽 향

진하기 2.5

탄닌 4.0

당도 0.5

산도 3.0

7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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