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베라
무난無難
내가 나 자신을 평가할 때 떠오르는 단어다. 내 삶에서 몇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무난은 나에게 너무도 친숙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난 무난한 게 너무 싫다. 변화무쌍하게 돌아가는 이 세상에서 무난하다는 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일반, 평균이란 탈을 쓰고 마치 정답인양 행세하는 게 맘에 안 들었다. 한 번밖에 없는 세상, 멋지게 살다 죽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무난하게 살다 죽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무의식은 반대였던 것 같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인데 굳이 아웅다웅 간지 나게 살 필요 있나? 굳이 튈 필요 없잖아? 비겁하게도 나는 나의 무의식을 따랐다.
다들 대학가니 대학에 갔고, 2학년 마치고 군대 갔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얘 둘 낳고. 정말 무난한 삶을 살아왔다. 보통 삶을 살면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뭐라고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았다. 이도 저도 아니었다. 내 삶은 무난 그 자체였다.
작년 무더운 여름날 우연히 성북동 한 와인샵에서 레이블이 예쁜 이탈리아 와인 한 병을 샀다. 어떤 품종인지 확인도 못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산 와인이었다. 집에 와서 오픈했다.
보랏빛 포도색, 과일향도 있고 탄닌도 살짝, 산미도 적당, 중간 진하기. 적당히 무난하고 편안한 와인이었다. 복잡하거나 화려하지도 않은 어디서나 어떤 음식이든 어울릴 것 같은 평범한 와인.
나를 닮은 와인이었다. 무난 와인. 바르베라.
심플하면서도 있을 건 다 있는 그러나 과하지 않은 그런 와인이었다. 마음이 편해졌다. 홀짝 거리다 보니 어느새 한 병을 다 마셨다. 뒷자리에 앉아 미소 지으며, 절대 나서지 않는 편안한 친구처럼 바르베라의 빈병은 다소곳하게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잔에 조금 남아있는 마지막 한 모금 바르베라에게 물었다.
‘너는 행복하니?’
‘응. 난 행복해.’
‘어떤 게 행복해?’
‘니가 즐기고 있잖아. 그걸로 만족해.’
어디든 다 맞출 수 있는,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궁극의 적절함.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중용의 도인가 보다. 중용의 도를 따라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텔레스형은 말했다. 적절이야 말로 우리가 다다르기 힘든 경지라고.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적절함이 가장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취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다. 적절하려고 노력해도 잘 안 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원래 목소리가 큰 사람은 목소리를 적절하게 내려고 하면 소곤거리게 된다. 원래 소심한 사람이 크게 쏘려고 하면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계속 소심해서 끙끙 앓다가 스트레스받아서 죽는다. 열 받으면 폭발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항상 극단의 사람들은 적절함이 어려워 곤란을 겪기 쉽다.
적절하지 못함은 문제를 동반하고 많은 것들을 수용하지 못한다. 반대로 적절은 문제없이 양극단을 포용한다. 어디든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준다. 어느 쪽이든 맞출 수 있다. 그것이 포용이며 사랑이다.
바르베라는 세상을 포용하는 사랑이다. 자신의 적절함으로 극단을 포함한 모든 영혼들을 감싸 안는다. 적절치 못하거나 부족한 우리들은 바르베라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다.
Scagliola
Frem
바르베라
중간 보라색
검붉은 과일향, 허브향
진하기 3.0
당도 1.0
산도 2.5
3만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