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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몬테 VI

바롤로

by 진원재 Willie Chin



바롤로 Barolo를 최근에야 마셨다.


이탈리아 와인의 왕으로 불리는 고가의 와인. 그동안 너무도 마시고 싶었지만, 내가 느낄 감동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아껴두고 싶었다. 네플릭스에서 재미있는 시리즈를 발견하면, 정주행을 하다가 남은 회차가 점점 적어질 때 마지막편의 시청을 미루는 경향이 있는데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끼고 아끼던 바롤로 한 병을 나도 모르게 따버렸다.


모두 잠든 집, 새벽에 혼자 일어나 몽유병 환자처럼 부엌으로 걸어 나와 일어난 일이었다.


아주 깨끗한 물에 석류과즙을 떨어뜨린 듯한 살짝 갈색 기운도 띠는 옅은 레드 컬러. 너무도 아름다웠다. 겉모습은 라이트 해 보였지만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는 아주 강렬했다. 어릴 적 친숙했던 달고나향과 흡사했는데 고급스러웠다. 5성급 호텔 로비에서 달고나를 만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 모금 마시니 엄청난 산도와 탄닌, 그리고 체리, 초코향이 듬뿍 올라왔다.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알코올 느낌이 훅 치고 들어오는데 마치 달콤한 위스키 초코바를 먹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고급 호텔에서의 달고나,

달콤한 위스키 초코바.



대학시절 난생처음 이탈리아인을 만난 적이 있다. 같은 학교 어학당에 온 친구였는데, 토리노에서 왔다고 했다. 생긴 건 하얀 피부에 말끔하고 건장했는데 굉장한 수다쟁이였다. 토리노는 피에몬테주의 주도이고, 이탈리아는 자신들, 피에몬테 사람들이 통일했다면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 친구는 어릴 적 내가 갖고 있었던 '이탈리아 사람들은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라틴계에 가깝다.'라는 고정관념과는 차이가 있었다. 외모는 콧대 높은 프랑스 느낌이 있는데 정겨운 친근함도 함께 갖고 있는 독특한 캐릭터였다.


고급 호텔과 달고나,

위스키와 초코바


이게 피에몬테인가 보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친근한, 중후하면서도 위트가 있다. 바롤로에서 찾은 이탈리아 북서부의 모습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 세시. 반 병 남은 바롤로를 코르크로 막았다. 하루라도 더 즐기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또 훌륭한 이탈리아 와인 한 병을 만나 나의 행복지수는 또 상한가를 쳤다.



Prunotto

Barolo

바롤로

옅은 체리색

붉은과일향, 허브향, 가죽향, 꽃향

진하기 2.5

탄닌 4.5

당도 0.5

산도 4.5

6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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