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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I

네로 다볼라

by 진원재 Willie Chin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발가락 끝에는 삼각형 돌부리처럼 생긴 시칠리아가 있다. 동쪽에는 3천 미터가 넘는 에트나 화산이 있어서 서늘한 고산 기후이고, 점점 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면서 무더운 아열대 기후를 나타낸다. 지형도 기후도 다양한 아주 큰 섬이다.


다양한 자연환경만큼이나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복잡하다. 기원전 포에니 전쟁으로 시칠리아를 점령 한 로마제국 이후에 아랍인, 노르만(바이킹)족, 아라곤, 스페인, 오스트리아 등 여러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19세기 중반부터는 이탈리아를 통일한 북부 피에몬테 왕국의 지배를 받았고, 20세기에는 이탈리아 공화국 체제 아래 들어오게 된다. 같은 민족의 통치였지만, 이탈리아 남과 북의 지역감정은 어마어마하게 커서 시칠리아에는 마피아 조직이 활동하게 된다.


이렇듯 시칠리아는 복잡, 그 자체이다. 지형과 기후, 역사와 문화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그러나 이런 복잡성 안에서도 시칠리아만의 독특하고 강렬한 이미지가 있다.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주인공 토토의 고향이 시칠리아다. 가난하고 힘이 없지만 그들만의 끈끈한 가족애, 열정, 순박함이 어우러져 있다. 다양한 환경과 변화에도 자신들의 섬을 지키고 살아남게 해주는 그들만의 분명한 DNA가 있다.


와인도 마찬가지이다. 시칠리아는 3천 년 전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고, 토착 품종도 너무나 다양하지만 시칠리아 하면 떠올려지는 포도가 있다.


네로 다볼라 Nero d’Abola


어디서나 잘 자라서 적응력 뛰어난 품종으로 알려져 있고, 당도가 높아 알코올 도수를 쉽게 높일 수 있는 포도이다. 또한 아주 진한 바디감(진하기)을 갖고 있어서 영화 시네마 천국이나 대부에서 느낄 수 있는 강렬한 태양, 옅은 노랑 회색의 오래된 건물들, 진한 머리색과 눈동자. 땀에 젖은 듯한 까무잡잡한 피부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네로 다볼라는 내가 와린이 시절, 처음 접한 시칠리아의 포도였다. 그동안 마셔왔던 중북부 이탈리아 와인과는 완전히 달랐다. 남부 이탈리아의 햇살을 듬뿍 받은 진하디 진한 와인. 단맛도 느껴졌고, 과일향과 함께 알코올 기운도 강하고, 탄닌도 꽤 있는 와인이었다.


앞에서 설명한 중북부(토스카나, 피에몬테) 와인들은 여리여리 하면서도 고집이 쌘 범생이 같은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이 네로 다볼라는 카리스마 그 자체이다. 키는 크지 않지만 멋진 구리색 피부를 갖고 있는 멋진 남성의 향기가 뽐뽐이다. 이탈리아의 중북부 사람들은 시칠리아의 이 와인을 가난하고 볼품없고 거칠다고 폄하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부모님께는 피에몬테 사람(와인) 만난 다고 하고, 비밀연애는 시칠리아 사람(네로 다볼라)과 할 것 같다. 사실 나도 사람들에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와인은 키안티 클라시코라고 말하지만, 살짝살짝 네로 다볼라가 생각난다. 특히 추운 겨울에 즐기는 네로 다볼라는 시칠리아의 따뜻한 기운으로 추위로부터 나를 지켜준다.


탄탄한 카리스마와 열정에 몸을 맡기고 싶다면 몰래 네로 다볼라 한 병 사서 집에서 혼자 조용히 마셔라. 시칠리아의 강렬함과 열정 몸이 움찔움찔할 것이다.



Donnafugata

Sedara

네로 다볼라

진한 루비

체리향, 검붉은과일향, 오크향

진하기 4.5

당도 2.0

산도 2.0

탄닌 2.5

2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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