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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 IV

슈퍼? 시칠리안

by 진원재 Willie Chin




어렸을 때는 몰랐다. 사람들은 다 비슷한 줄 알았다. 그래서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약속 시간에 늦을까? 왜 한여름에 붐비는 해운대나 경포대를 갈까?

우리 집 벽지는 항상 하얀색이었고 소파와 가구심플했다. 구두는 검은색, 옷은 웬만하면 추동복으로 샀다. 차를 탈 때 막히는 길을 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다.


우리 집안과 180도 다른 패밀리의 둘째 딸과 결혼하고서야 깨달았다. 모든 것은 나의 편견이었고, 세상에 일반적 정답이란 건 없다는 것을.


나의 신혼집 벽지는 분홍색이었고. 소파는 바로크 양식의 금장이 들어간 페이즐리 문양의 천으로 만든 것이었다. 결혼하고 새로 산 구두는 짙은 주황색이었고, 옷은 여름, 겨울용 위주로 샀다. 바캉스는 항상 차가 꽉 막히는 8월 초에 가야 제맛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가 막혀도 차 안에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면 10시간을 가도 지루하지 않고, 차가 안 막혀도 대화하지 않으면 2시간도 지루하다는 것을.


30년 가까이 심플하게 살아왔는데, 결혼 후 나의 삶은 복잡해졌다. 삶이 복잡해지면 피곤할 줄 알았다. 처음엔 적응이 필요하긴 했다. 그러나 복잡함은 피곤이 아닌 재미가 되었다. 나는 훨씬 에너제틱해졌고, 심플은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는 더 발전하여 심플은 심플대로, 화려함은 화려함대로 의미가 있고 아름답다고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난 과거에 일반적이란 고정관념의 틀에서 세상을 평가했고, 판단했다. 잘못된 것이었다. 나의 아이들에게 이 고정관념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지금도 다짐을 하고 또 한다. 있는 그대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다행히 아이들은 나의 반쪽과 아내의 반쪽이 섞여 또 다른 개성이 되었다. 세상을 느끼고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즐길 줄 아는 듯하다.


이처럼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일가견이 있다. 지난번 슈퍼 투스칸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시칠리아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외래 품종을 자신의 땅에서 키워내 뛰어난 와인을 만들고 있다. 열린 마음의 시칠리아 땅과 우수하고 건강한 외래 품종이 만나 최고로 아름다운 와인을 만들어냈다.


프랑스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 품종인 샤르도네 포도로 만든 플라나타 샤르도네 Planata Chardonnay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게르만 아빠와 라틴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미인 같은 존재다. 아주 부드럽고 섬세한 맛을 지니고 있으며, 적절한 페트롤 향, 배, 예쁜 화원 냄새가 난다. 여운이 긴 산미가 느껴진다.


돈나푸가타의 앙겔리 Angheli라는 와인도 시칠리아 서부에서 키운 프랑스의 메를로와 카베르네소비뇽 포도로 만든다. 프랑스 보르도 스타일의 이 와인 또한 일반 테이블 와인이라고 하기엔 품질이 매우 뛰어나다. 웬만한 10만원대 보르도 와인과 대적할 만한 풍미와 향기를 갖고 있다.


이처럼 시칠리아는 뛰어난 외래품종의 와인을 생산해낸다. 이것은 다양성 융합의 결과이다. 전통을 고수하는 것도 좋지만 다양성이 서로 만나 시너지를 내는 것이 세상에 더 이롭다고 나는 생각한다. 메디치 가문의 르네상스도, 토스카나의 슈퍼 투스칸도, 시칠리아의 프랑스 품종 와인도 다양성 결합의 결과다. 나와 아내가 만나 만들어낸 아이들도 슈퍼 땡땡땡은 아니더라도 더 개성 있는 존재들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칠리아 와인을 접해서 다양성의 매력을 느끼고 더욱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Planata

Chardonnay

샤르도네

옅은 황금색

페트롤향, 배향, 하얀꽃향

진하기 3.0

산도 3.0

당도. 1.0

3~4만원대


Donnafugata

Angheli

메를로, 카베르네소비뇽

진한 붉은색

검은과일향, 후추향, 담배향

진하기 4.0

산도 3.0

탄닌. 3.5

당도. 0.5

4~5만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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